윤 ‘전략적 선택’ 기대하지만 거부감도 여전…홍 ‘적자’ 자처하지만 ‘조국수홍’ 이미지 타격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을 호남이 좌지우지한다면, 국민의힘 경선의 핵심 지역은 뭐니 뭐니 해도 TK다. 보수정당이 청와대로 보냈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TK의 압도적 투표율와 지지율을 기반으로 대권 도전에 성공했다. 양강 구도로 평가받으며 선두를 다투고 있는 윤석열 전 총장과 홍준표 의원은 TK 맹주로 올라서야 경선 최종 승자가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사활을 건 TK 전투를 벌이고 있다.
#TK의 전략적 투표?
윤석열 전 총장 측은 TK가 이번만큼은 순혈주의를 고집하지 않고 전략적 투표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과거 호남이 '호남의 아들' 대신 PK(부산·울산·경남) 출신인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해 본선 경쟁력을 최우선 선택 잣대로 삼았듯이, TK도 이번 대선에서 같은 길을 가리라 예측하고 있는 것이다.
TK의 전략적 선택은 지난 6월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도 나타났다. 좀처럼 낯선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TK지만 이준석이라는 젊은 당대표가 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대구의 ‘정치1번지’라 할 수 있는 대구 수성갑 국회의원이자 국민의힘 원대대표까지 지낸 주호영 의원은 ‘TK 대표주자’로 당대표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셔야 했다. TK가 순혈주의를 벗어나 정권교체에 도움이 될 후보를 찾았고, 그 결과로 이준석이라는 젊은 후보를 선택했다.
윤 전 총장은 이번 추석이 자신의 대세론을 굳히는데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추석 연휴 직전 대부분 일정을 TK 방문에 할애하면서 총력전을 폈다. 이어 윤 전 총장 측은 이 과정에서 “대세론을 확실히 느꼈다”고 성과를 자평했다. 하지만 불안감도 여전히 떨치지 못하는 모양새다. 지지율이 강한 것은 확인됐지만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정도의 압도적 지지율까지는 아직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윤 전 총장에 대한 ‘TK의 거부감’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윤 전 총장은 9월 17일 경북 구미 상모동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았다가 봉변을 당했다. 차에서 내린 윤 전 총장이 추모관으로 향하자 수행원과 경찰, 보수단체 회원과 우리공화당 관계자 등 수백 명이 뒤엉켜 몸싸움이 벌어졌다. 윤 전 총장은 소란 속에서 약 50m를 걸어 추모관에 도착, 박 전 대통령 내외 영정에 헌화·분향했다.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윤 전 총장이 준비된 차량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 험난했다. 보수단체 회원 등의 거센 항의에 윤 전 총장은 굵은 빗줄기 속에 우산조차 쓰지 못했고, 차에 탈 때 얼굴과 양복은 빗물과 땀으로 뒤범벅됐다.
윤 전 총장은 같은 날 오후 포항을 찾은 자리에서 “제가 검찰에 재직할 때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 처리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제가 그 부분은 감내해야 할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스스로 극복해야 할 부분이라는 취지의 언급이었지만, TK에서 일부 목격된 그에 대한 반감은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윤 전 총장은 자신에 대한 일부 거부감은 TK의 전략적 선택만 작동하면 쉽게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 당원이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TK가 전략적 선택만 해주면 당원 투표 비율이 2차 컷오프에서 30%, 마지막 본경선에서는 50%가 반영되기에 경선 승리는 무난할 것으로 윤 후보 측은 점친다.
정치권 관계자들도 당원 투표에서 가장 유리한 후보로 윤석열 전 총장을 지목한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힘 당원의 핵심축인 60대 이상과 영남권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만큼, 당원 비율이 가장 높은 TK 표가 윤 전 총장에 몰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고발사주’ 사건 논란으로 잠시 곤경에 처하기도 했지만, 여권의 유력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장동 개발 의혹’이 터진 점은 현 집권세력에 대한 최전방 공격수로 활동해온 윤 전 총장 대세론 확산 기폭제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추석 연휴 기간 지역구 민심 탐방을 했던 국민의힘 TK 한 초선 의원은 “TK 민심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오로지 정권교체였다. 그러니까 굳이 고향 사람 아니어도 정권교체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전했다.
#TK, 팔은 안으로 굽나
“윤석열과 홍준표 둘 중에 누구를 지지하나. 누가 더 나은가. 이런 것을 많이 묻더라. 대선 본선에서 경쟁력이 누가 더 있다고 생각하나. 이런 질문도 쏟아졌다. 지역구 주민들이 이번 추석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부분이었다.”
TK 출신 A 의원 말처럼 추석 민심 탐방을 하고 온 TK 의원들은 윤석열 대세론이 있긴 하지만, TK에서 홍준표 의원 선택지를 만지작거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의견도 연이어 내놨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홍 의원이 윤 전 총장을 맹렬하게 따라붙고 있다는 수치가 민심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역시 TK 출신인 B 의원의 설명이다.
“8월까지만 해도 윤석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이번 추석에는 확실히 줄었다. 정권교체에 대한 희망, 포부는 똑같지만 그 임무를 짊어져야 할 사람이 반드시 윤석열이란 얘기는 많이 줄었다. 윤석열 대세론에 틈이 생겼고 이 부분을 다른 후보가 메워줄 수 있다는 생각도 하는 것 같았다.”
홍 의원은 의리를 중시하는 TK 표심이 결국에는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더욱이 홍 의원은 자신이 TK 전문가인데, TK를 아예 모르는 윤 전 총장에게 TK가 표를 준다면 지역 발전은 엉망이 될 것이란 ‘지역개발 논리’를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홍 의원이 9월 13일 대구를 찾아 발표한 ‘TK 재도약 5대 공약’도 홍 의원이 직접 기획하고 공들여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홍 의원은 대구 동성로의 야외무대에서 TK 공약 발표식을 하고 “TK 신공항 이름을 박정희 공항으로 짓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또 초고층 개발과 대규모 쇼핑몰 유치로 현 대구국제공항 터를 24시간 잠들지 않은 도시 두바이 형태로 개발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신공항을 연계한 첨단 공항공단 조성, 구미공단 스마트 재구조화, 포항 수소경제단지 조성 등을 지역 공약을 내걸었다.
홍 의원은 이 자리에서 “TK는 대한민국 70년 성취의 역사 중심에 있었고, 선진국 시대 진입에는 TK의 땀과 노력이 뒷받침됐다”고 TK를 한껏 치켜세웠다.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이어받아 대구를 다시 풍패지향(새 왕조를 일으킨 제왕의 고향)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홍 의원의 여론조사 TK 지지율이 조금만 더 반등한다면 여론조사와 당원투표가 동조화되는 최근 추세를 감안할 때, 홍 의원이 선두로 뛰어오를 수 있다는 정치권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추석 밥상에 ‘무야홍(무조건 야당 후보는 홍준표)’ 대신 ‘조국수홍’이라는 메뉴가 올라가면서 홍 의원이 바랐던 ‘추석 대역전극’이 이뤄지지 못한 점은 그의 앞길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는 추석 직전이었던 9월 16일 TV토론에서 ‘조국 일가 수사는 과잉수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지지자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윤석열 전 총장을 견제하고자 꺼낸 말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조국 수호’가 된 셈이었다.
경선 경쟁자 유승민 전 의원은 자신의 SNS에 “조국 일가의 불법·특권·반칙·위선 때문에 온 국민이, 특히 청년들이 분노와 좌절에 빠졌는데 과잉수사라니요?”라고 따졌고, 하태경 의원도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나가 “경쟁자를 공격하려고 공정의 가치마저 버린 것”이라고 질타했다.
#토론회 이미지가 분수령
대선 후보 토론회가 본격화되면서 토론회 점수가 향후 윤 전 총장과 홍 의원에 대한 TK 민심 향방을 최종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은 9월 16일 국민의힘 대선주자 1차 토론회에서는 자신을 추격하는 홍 의원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9월 23일 진행된 2차 토론회에서는 윤 전 총장이 홍 의원을 상대로 적극적 질문 공세를 폈다.
윤 전 총장은 “홍 후보는 최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미국 대통령에게 ‘나토식 핵공유’를 요구하고 미국이 들어주지 않으면 자체 핵무장 카드를 고려할 수 있다고 하셨다”며 “이렇게 되면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해서 비핵화 외교협상은 포기하게 되고 핵군축 협상으로 갈 뿐만 아니라 자체 핵무장은 비확산체제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즉각 반격했다. 그는 “과거 구소련이 핵미사일을 동구권에 배치하자 독일의 슈미트 수상이 미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은 거절했다”며 “그러자 슈미트 수상이 그럼 우리도 프랑스 영국처럼 핵개발을 하겠다고 했다. 그 뒤에 나토의 5개국이 전술핵을 재배치하고 핵단추를 공유하게 된다. 저는 이런 나토식의 핵공유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홍 의원은 “지금 윤 후보 진영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건 문재인 정권의 이도훈이란 사람일 것”이라며 “윤 후보님이 발표한 대북정책을 보면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이다. 그 대북정책 때문에 국민들이 골병들고 있다”고 되받아쳤다. 윤석열 캠프의 대북전문가인 이도훈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겸 6자회담 한국 수석대표를 겨냥한 것이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정권교체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보수 후보는 안정감을 줘야 한다. 보수 지지층의 핵심인 TK 지지는 향후 TV토론에서 안정감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후보에게로 몰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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