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닷바람에 성장하는 대보면 청보리밭. |
그 규모면에서 고창이나 안성에 비해 작기는 하지만 포항 대보면 구만리의 보리밭도 꽤 넓다. 게다가 바닷가에 있다는 점이 심리적 호응도를 높인다. 그 바다가 보통의 바다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호미곶이라는 점은 호응을 넘어 동경까지 불러일으킨다.
구만리는 호미곶이 자리한 대보리와 붙어있는 동네다. 포항시내에서 경주 방면으로 이어진 31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도구리에서 929번 지방도로 바꿔 탄 후 30분쯤 달리면 호미곶에 이르는데, 그 바로 옆 마을이 구만리다. 다른 계절이라면 호미곶 때문에 별 주목을 받지 못할 테지만, 일년 열두 달 중 딱 지금 이 때, 그러니까 5월만큼은 구만리의 존재가치가 빛나는 시기다. 물론 보리밭 덕이다.
구만리 보리밭은 호미곶 방향으로 볼 때, 929번 지방도 오른쪽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약 10만 평에 달하는 면적이다. 쌀보리가 주종이다. 구만리에서는 평야와 다름없이 넓게 펼쳐진 논에 보리를 파종해 수확한다. 보리농사가 끝나면 이곳에 모내기를 해서 벼농사를 짓는다.
보리는 5월이 되면서 완숙기로 접어들고 있다. 3월의 햇빛이 얼었던 흙을 부풀려 보리가 땅 위로 솟아나게 하고, 4월의 햇빛은 그것들이 쑥쑥 자라도록 조장한다. 5월의 햇빛은 보리를 황금으로 빛나게 한다. 그러나 그 변색의 시간까지는 멀었다. 아직은 푸르게 춤을 추도록 방관할 때다. 이파리도 춤을 추고, 보리수염들도 춤을 춘다. 해풍이 실어온 미네랄을 먹고 더욱 영양이 풍부해진 보리들은 그 고마운 바람이 불 때마다 마치 파도가 밀려드는 것처럼 일렁인다. 바람결에 누웠다가 바람이 지나가면 일어서기를 반복하는데, 그때마다 마치 댓잎이 부대끼는 것처럼 혹은 파도에 몽돌이 우는 것처럼 ‘사르르르’ 소리가 난다.
구만리 보리밭의 이정표이자 아이콘은 소나무들이다. 보리밭 한가운데 서 있는 여섯 그루의 소나무는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풍경에 신선함을 불어넣는다. 보리가 대부분이지만, 이곳에는 호밀도 간혹 재배된다. 두 종이 어떻게 다른지 찾아서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유채꽃도 보리밭 가장자리로 드문드문 보인다. 일부러 심었다기보다 씨앗이 바람에 날렸거나 섞이어 핀 것들이다.
구만리 보리밭은 중순을 넘어서면서부터 서서히 누렇게 익어갈 것이다. 지금의 푸른 물결 속에서 노니는 것도 즐겁고 인상적이지만, 그 황금색 들판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구만리 보리밭에서 바다 쪽으로 바라보면 대보항이 바로 내려다보인다. 이곳에서 호미곶까지는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호미곶은 우리나라 지형에서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영일만의 동남쪽 끝이라고 보면 된다. 이곳은 울산의 간절곶과 함께 대체 어디의 해오름이 빠르냐를 두고 끊임없는 논쟁이 붙는 곳이다. 겨울에는 간절곶이 다소 빠르고 여름에는 호미곶이 반대로 다소 빠르다는데 사실 그게 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호미곶 앞에는 제발 무의미한 다툼을 그만하라는 듯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손이 오롯이 서 있다. ‘상생의 손’, 그 이름을 알고 나면 더욱 토닥거림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물론 해오름의 시간에 맞출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호미곶이다. ‘상생의 손’이 멋진 배경이 되어 준다. 때로 갈매기들이 날아들어 손가락마다 하나씩 차지하고 앉는데, 그 풍경도 참 재미있다. 해오름에 못 맞추더라도 호미곶은 들러볼 만하다. 해가 가장 빨리 뜨는 곳 중 하나이자, 호랑이꼬리라는 상징성은 둘째치고라도 그 일대의 해안 풍경이 너무나 멋있다.
등대박물관도 호미곶을 찾게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우리나라 최대의 유인등대였던 곳을 이용해 박물관으로 꾸몄다. 1908년 12월 20일 건립한 높이 26.4m의 이 등대는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천정에 조선왕실 상징인 오얏꽃 문양 조각이 있고, 108개로 이뤄진 계단은 철제 주물로 만들었다. 이 등대는 건축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우리나라 등대로서는 처음으로 1982년 경북 지방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됐다. 등대박물관은 호미곶 새천년광장 위편에 자리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1985년 처음 연 것으로 우리나라 등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구만리 청보리밭 여행길에는 호미곶 말고도 둘러볼 거리들이 많다. 호미곶이 갈고리처럼 툭 튀어나온 형상이기 때문에 동해임에도 불구하고 멋진 해거름이 보이는데, 발산리에서 포항제철의 야경과 어우러진 해거름이 장관이다. 구항 낙서등대 옆에는 송도해수욕장이 있다. 해수욕장으로서 기능이 다 했지만, 야릇한 이끌림이 있는 곳이다. 갈매기들의 휴식처로 변해버린 다이빙대가 해수욕장의 현재를 말해준다.
포항 남구 쪽에도 찾아볼 만한 곳들이 있는데, 오어사와 주상절리는 빼놓지 말자.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때, 자장과 의상이 창건한 사찰로 원효대사가 썼던 삿갓과 양각된 관음이 예사롭지 않은 동종이 있다. 오어사 대웅전의 꽃창살과 처마의 단청은 색깔이 예쁘다. 주상절리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연일읍 달전리 산 19-3번지에 있다. 천연기념물 제415호로 지정돼 있는 이 주상절리는 손으로 빗어 내린 머릿결처럼 늘어뜨린 바위의 주름이 인상적이다.
내연산 보경사도 좋다. 오어사와 함께 포항을 대표하는 사찰로 이곳 역시 진평왕 때, 자명이 세웠다. 동종, 원진국사비와 부도 등 보물이 많다. 사찰 앞 솔숲이 일품이고, 뒤로 내연산 폭포길이 아주 좋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길잡이: 경부고속국도 포항IC→31번 국도→도구리→929번 지방도→호미곶→구룡포
▲먹거리: 호미곶보다는 구룡포 쪽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낫다. 대게와 회를 파는 집이 즐비한데, 특이한 국수집이 하나 있어 소개한다. 까꾸네모리국수(054-276-2298)이다. 국수라기보다 매운탕에 국수를 넣은 것으로 보면 된다. 홍합, 아귀, 콩나물, 국수가 어우러진 매콤한 맛이 일품이다. 구룡포 새마을금고 맞은편에 있다.
▲잠자리: 호미곶에 해오름민박(054-284-9790), 한나민박(054-284-9802), 해송장(054-284-8246) 등이 있다. 구룡포로 옮기면 자작나무호텔(054-276-5858), 아쿠아모텔(054-284-6900) 등이 있다.
▲문의: 포항시청 문화관광과 054-270-2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