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번째 선수’ 2009년 1월 핸드볼대표팀을 격려하기 위해 태릉선수촌을 찾은 최태원 대한핸드볼협회장이 선수들과 함께 패스를 하며 친분을 다졌다. 뉴시스 |
최 회장은 1998년 부친인 최종현 선대회장 타계로 38세에 SK㈜ 회장에 올랐다. 아직 경영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젊은 총수를 향한 재계의 시선은 싸늘했다. 그러나 최 회장은 국내 이동통신 시장과 에너지 시장을 장악하며 SK의 고속 성장을 이끌었고, 이사회 중심의 독립 체제를 구축해 경영 효율성을 높여갔다. 그룹 회장을 맡은 최 회장이 내건 키워드는 ‘행복 경영’. 나 혼자만의 행복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행복지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최태원식 행복경영’은 스포츠 비인기종목을 향한 지원으로 이어졌고, 숨겨졌던 그의 ‘스포츠애(愛)’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국제무대에서의 화려한 성적으로 인한 관심도 잠깐, 연습할 공간조차 마땅치 않은 열악한 환경. ‘설움의 종목’ 핸드볼에도 마침내 따뜻한 봄이 찾아온다. 등번호 22번, ‘T.W.CHEY’라고 새겨진 붉은 유니폼을 입은 ‘8번째 선수’가 코트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핸드볼협회장으로 취임한 ‘든든한 후원자’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바로 그 8번째 선수다. 등번호 22번은 그의 ‘행복경영’과 맥이 닿아 있다. 행복(幸福)의 한자 획수가 22, 최 회장 유니폼의 등번호가 22번인 이유다.
지난 2007년 핸드볼큰잔치를 후원하면서 핸드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SK는 협회장이 된 최 회장을 필두로 ‘통큰 투자’를 시작했다. 최 회장은 20년 넘게 핸드볼계 숙원사업으로 꼽히던 핸드볼전용경기장 건립을 위해 300억 원을 내놓았다. 대회 때마다 경기장 대관에 애를 먹었던 핸드볼 관계자들은 오는 9월 전용경기장이 완공된다는 소식에 “SK가 본격적으로 지원을 시작하면서부터 핸드볼계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재벌총수가 직접 나서 후원을 주도하다보니 지원 규모가 다른 종목과 차원이 다르다”면서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중학교 때 핸드볼을 배우면서 그 매력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당시 각 학교마다 핸드볼 골대가 구비될 정도로 핸드볼 열풍이 대단했다더군요. 학교 대항 핸드볼 대회도 자주 열렸다죠. 어릴 때부터 핸드볼을 가까이 접하면서 자연스레 애정이 생겨난 듯합니다.”
SK텔레콤 관계자가 털어놓은 최 회장과 핸드볼의 인연이다. 최 회장이 협회장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인 것도 그러한 애정이 밑바탕이 됐다.
“사실 핸드볼협회에서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내왔습니다. 검토해보니 핸드볼 환경이 생각보다 굉장히 열악하더군요. 지원을 하려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갈 것이 자명했습니다. 회장님께 말씀드렸더니 ‘국제무대에서 핸드볼만큼 남녀대표팀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둔 종목은 없다. 기업을 경영하는 것처럼 핸드볼 지원을 제대로 시작해보자’며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여자대표팀과 러시아의 조별예선 첫 경기를 응원하러 갔다가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시합을 관전하게 된 것. 게임 종료 후 이 대통령은 유인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최 회장의 즉석 만남을 주선했다. ‘정부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부지를 지원할 테니 SK그룹이 전용경기장을 짓고 핸드볼 종목을 직접 후원하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베이징에서 돌아온 최 회장은 협회장 취임과 동시에 핸드볼 후원에 팔을 걷어붙였다.
선수들은 최 회장의 소탈함에 또 한 번 놀랐다. 한국 여자 핸드볼 차세대 스타 이은비 선수(부산시설관리공단)는 2009년 세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가 마무리되던 12월 초 최 회장과 대표팀이 함께한 만찬 당시를 떠올렸다.
“막내인 제가 회장님 옆자리에 앉는 걸로 정해져 있더라고요. 술잔에 맥주만 따르기에 ‘잠깐만요, 맥주만으론 섭섭하죠’라며 잔에 소주를 가득 담아드렸더니 껄껄 웃으며 ‘원샷’하셨어요. 그 이후로 제 잔이 비워지면 ‘왜 더 안 마시느냐’며 술을 계속 따라주셨어요. 그때 일로 절 확실히 기억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핸드볼전용경기장뿐만이 아니다. 지난 2009년 4월 출범한 한국핸드볼발전재단(이사장 박기흥)은 유소년 꿈나무 육성 등 다양한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이미 25억 원의 발전기금을 모았고, 핸드볼 꿈나무 138명에게 690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임원들 대부분이 최 회장의 오랜 지인들로 구성돼 있다. 최 회장은 스포츠외교에도 주력, 2010년 세계주니어여자선수권대회를 유치해 20년 만에 세계대회를 국내에서 여는 데 성공했다.
최 회장은 2012, 2016, 2020년 올림픽을 기준으로 세 단계로 나눠 핸드볼 발전 방향을 잡았다. 2012년까지 기반을 다진 뒤 핸드볼 프로리그를 육성하고, 이후 2020년 핸드볼을 3대 인기 스포츠 종목으로 만들겠다는 것. 이에 대해 핸드볼 국가대표로 뛰고 있는 한 선수는 “SK가 후원을 시작하면서 지원이 많아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경기장에 찾아오는 팬이 너무 적어 기운이 빠진다”면서 “핸드볼이 3대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기 위해선 관중을 끌어 모을 수 있는 획기적인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최 회장은 핸드볼 외에 그룹이 보유한 야구 농구 축구 종목에 대해선 열혈 팬의 모습으로 돌아가 경기를 즐긴다. 특히 최 회장은 야구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야구 모자를 쓰고 응원 수건을 양손에 든 최 회장의 모습이 문학경기장에서 종종 눈길을 사로잡는다. SK 와이번스 야구단 신영철 사장은 “본부석이나 VIP석에선 절대 응원하지 않는다. ‘일반석에서 팬들과 함께 응원해야 야구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신다. 회장님의 야구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출장이나 외부 일정 때문에 경기를 못 보게 되면 반드시 녹화해서 볼 정도다. 선수들은 물론 SK 역대 성적에 대해서도 줄줄 꿰고 계신다”며 야구에 대한 최 회장의 애정지수를 공개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SK 와이번스 축승연 자리에 함께한 최 회장은 선수들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폭탄주를 권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 함께했던 SK 와이번스 관계자는 “회장님이 2009년 KIA 타이거즈가 우승한 뒤 기아차가 K시리즈로 대박을 터뜨리며 승승장구한 사례를 들며 ‘이번 우승으로 SK그룹도 2011년 그에 맞는 경영 실적을 내지 않겠느냐’는 말로 기대감을 드러내셨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학창 시절 농구를 즐기던 최 회장은 바쁜 일정 중에도 경기장을 찾아 서울 SK나이츠를 응원한다. 서울 SK나이츠 관계자는 “워낙 형식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시는 터라 종종 편한 복장으로 나타나 선수들을 응원하고 가신다. 구단 운영에 개입하진 않으시지만 관심을 갖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전했다.
지난해 8월엔, SK이노베이션이 운영하는 제주유나이티드 축구팀을 응원하기 위해 휴가를 반납하기도 했다. 당시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광주 상무와의 경기를 관전한 최 회장은 제주의 새로운 도약에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주말에 최 회장은 테니스를 치며 여가를 즐긴다. 수준급 실력을 자랑하고 틈날 때마다 ‘테니스 예찬론’을 펼친단다. 반면 골프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1년에 필드에 나가는 날이 고작 3~4일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진다.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뺏긴다는 생각 때문이다. 최 회장은 명상 호흡 체조로 이뤄진 ‘심기신수련’(心氣身修鍊)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고 최종현 회장으로부터 비롯된 심기신수련은 최태원 회장에게까지 이어졌고, SK그룹 임직원들도 즐기는 사내 문화로 자리 잡았다.
‘통큰 후원’으로 비인기종목의 성장을 이끌고, 소탈한 리더십으로 선수들에게 격의 없이 다가간 최태원 회장. 최근 알려진 1000억 원대 선물투자 손실 후폭풍을 그가 어떤 리더십으로 이겨낼지 주목된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