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 18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도식에 손학규 대표,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이 참석한 모습.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이들 ‘2정’의 공동 목표는 ‘손학규 대세론’의 확산을 막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구체적 전략이나 노선은 판이하다. 손 대표를 향해 제각각 목소리를 키울 수는 있지만, 공동전선을 펼 만한 소재를 찾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이들을 한데 묶어낼 수 있는 당내 공통조직도 없는 상태다. 이에 따라 손 대표 체제에 대한 이들의 견제는 ‘따로 또 같이’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견제구의 시발점은 지난 4일 국회에서 처리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에 대한 처리문제였다. 손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한나라당과의 합의처리안을 가져왔지만, ‘담대한 진보’를 슬로건으로 ‘좌’측으로 전향한 정동영 최고위원과 협상과정의 문제를 지적해온 정세균 최고위원은 야권연대 정책합의문 준수를 주장하며 결국 본회의 불참 결정을 주도했다. 손 대표에 대항하는 자신들의 좌표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우선 정동영 최고위원은 당 정체성 논쟁을 화두로 손 대표에 대한 도전을 벼르고 있다. 그 내용은 한·EU FTA에 그치지 않는다. 올 정기국회 때까지 뜨거운 쟁점이 될 한·미 FTA 비준 동의, 노조법 재개정, 부유세 신설 등 정책 이슈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는 ‘기피 상임위’인 환경노동위를 자청해 그동안 노동 문제를 고리로 진보정당과 노동계와의 공감대를 넓혀왔고, 그의 노선은 이미 진보신당과 가장 유사해졌다. 한미 FTA 비준동의 반대도 그렇지만, 최근 개정안이 제출된 노조법 재개정에 대한 입장이 당내에서 가장 왼쪽이다. 진보정당이 요구하는 8가지 가운데 일단 5가지만 담아 개정안을 내려고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노조 전임자의 타임오프 자율화,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를 풀고 노조 설립 절차를 실질적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완전히 바꾸는 것 등이 그 내용이다.
그가 한·EU FTA 합의처리를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한나라당 의총과 민주당 의총에서 나오는 말이 똑같아서야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정당의 존재 이유는 수권이며, 수권을 위해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나라당과 다른 우리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야권 통합으로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취지에서 그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체결된 ‘4·13 야권연대 정책합의문’은 전략적으로 지켜야 하는 야권연대의 토대라고 주장한다.
결국 정동영 최고위원의 복안은 정체성을 차별화할 수 있는 이슈를 소재로 야권의 정책연대를 이뤄 야권통합의 길을 닦는 데 이니셔티브를 쥐겠다는 것이다. 통합야당의 건설, 이른바 ‘빅 텐트’(big tent)론의 밑그림인 셈이다. 그가 구상 중인 시나리오는 5월 중 원탁회의를 만들어 노조법, FTA 문제 등을 논의하고, 9월 정기국회가 본격화되기 전에 복지국가를 매개로 하는 단일정당 창당을 위한 협의체가 떠야 한다는 것이다.
정세균 최고위원이 정동영 최고위원과 달리 손 대표를 겨냥한 카드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전문성 부각과 친노(친노무현)그룹 중심의 전국 지지조직 건설이다. 전문성 강화는 기업 출신이라는 점과 산업자원부 장관 경력을 바탕으로 한 경제전문가의 역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차기 대선 역시 민생경제가 화두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고, 그런 흐름이라면 야권 대선주자 가운데 경제문제에 대한 이론과 현장경험을 가진 인물이 자신밖에 없다는 자신감이 들어 있다.
그는 대선 캠프 성격을 띤 싱크탱크 ‘국민시대’를 출범시키면서 내세웠던 ‘분수경제론’의 구체화 작업도 하고 있다. 분수경제는 ‘밑에서 물이 올라오는 분수처럼 중소기업과 서민·중산층에서부터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개념이다. 오는 16일쯤 분수경제론 관련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하고, 6월 안에 중소기업 활성화 방안 등 분수경제론의 세부 정책을 담은 보고서를 낼 계획이다. 또 ‘국민시대’를 통해 현안에 대한 정책논평도 꾸준히 낼 예정이다.
그의 조직 행보는 오는 18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과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으면서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적 지역조직 구성을 올해 안에 완료할 방침인데, 당내 친노 인사들과 가장 두터운 관계를 유지해온 만큼 당 외곽 친노 그룹들과의 연대에 가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사실상 손 대표 쪽의 손을 들어줬지만,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와 안희정 충남지사를 중심으로 우군을 형성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6·2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대표로서 야권 연대를 이뤄냈다는 점을 강조하며 야권 통합 주도권을 놓고 벌어지는 당내 경쟁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는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대표·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이재정 전 국민참여당 대표 등과 ‘전직 야당 대표 모임’도 운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당내 비주류 연합체인 ‘쇄신연대’는 지난 3일 8인 집행부 회의를 열어 진로를 논의한 결과, 모임을 해체하지 않고 존속시키기로 의견을 모았다. 5월 11일 전체회의를 열어 의견을 다시 수렴키로 했는데, 손 대표가 주도할 당 개혁에 맞서는 당내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 권력구조 개편, 공천개혁, 야권통합 등의 논의에서 비주류의 몫을 대변하는 일종의 ‘지분 사수’ 모임이다. 손 대표가 내건 ‘민주당의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주류와 비주류 간 전선도 당권파-비당권파라는 기존의 구도에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당내 세력 재편 국면이 손 대표뿐만 아니라, 정동영·정세균 최고위원에게도 자신들이 설정한 포지셔닝이 먹혀들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는 셈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