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 강원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왼쪽)와 민주당 최문순 후보가 횡성과 태백지역을 각각 찾아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
치열한 선거운동의 개막을 알리던 지난 14일, 강원지사 선거유세에서는 눈길을 끄는 장면이 벌어졌다. 이광재 전 강원지사의 부인 이정숙 씨가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최문순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고 나선 것. 강원 춘천의 최문순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연 이 씨는 “이런 자리에 설 위치에 있지 않은 제가 오늘 이곳에 있는 이유는 어떤 자리에도 나설 수 없는 이 전 지사를 대신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 전 지사가 물러난 자리는 최 후보가 적임자”라고 호소했다.
그동안 강원지사 선거를 가를 주요 이슈 중 하나로 ‘이광재 동정론’이 거론돼 왔으나, 한나라당에서는 ‘지역발전론’을 내세우며 이를 무마시키려 애써왔다. 실제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통해 지역경제가 살아나기를 바라는 강원도민 가운데엔 이광재 전 지사에 대한 동정론보다 지역발전론을 내세운 엄기영 후보에 대한 지지를 나타냈던 이가 적지 않았다.
실제 지난 4월 12일 발표한 <강원도민일보>의 여론조사에서 유권자들 중 42.6%가 이 전 지사의 중도하차에 대해 ‘이광재 책임론’을 택했고, ‘이광재 전 지사의 대법원 판결은 현 정권의 정치적 탄압에 의한 것’이라고 답한 ‘동정론’ 지지자들은 40.6%로 상대적으로 다소 낮게 나타났다. 또한 이광재 동정론에 공감하는 유권자 중 25.8%는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를 지지했고, 이광재 책임론에 공감하면서 민주당 최문순 후보를 지지한 응답자는 17.1%에 그쳐, 이 전 지사에 대한 동정의식을 갖고 있는 도민들 중 엄기영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이에 대해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광재 전 지사를 동정하고는 있으나 동시에 현실적으로 강원지역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현재 응답하지 않은 부동층 중에서도 이러한 민심을 가진 이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선거전 막바지에 이광재 전 지사의 부인이 직접 나서 ‘눈물 호소’를 한 것이 ‘이광재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새로운 변수로 부상한 상황이다. 민주당 강원도당 관계자는 “이광재 전 지사 및 부인 이정숙 씨에 대한 도민의 지지가 높았던 만큼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선거전략가 역시 “최문순 후보로 정해지기 이전 민주당 내에서 실시한 자체 조사에서 이정숙 씨가 후보군 중 1위를 기록했던 만큼 이 씨의 지원이 여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광재 전 지사는 과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부인 이정숙 씨에 대해 “나보다 나은 점이 많은 사람이다. 정치를 해도 나보다 잘 할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었다.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이날, 눈에 띄는 장면은 또 있었다. 민주당 최문순 후보의 지원유세에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한명숙 전 총리, 민주당 정동영 전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 천정배 최고위원 등이 모두 나선 ‘3당 공동 선거지원’이 펼쳐진 것. 분당 을에 출마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당 지도부가 강원지사 선거에 집중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야당 합동 유세가 최문순 후보에게 얼마나 득이 될지도 관건이다. 만약 최 후보가 당선된다면 강원지사 선거의 승리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 연대에 긍정적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삼척 원전 유치 문제를 바라보는 여론도 중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처음부터 원전유치에 반대 입장을 밝혀온 민주당 최문순 후보와 달리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는 ‘찬성입장→신중론’ 돌아서 이에 대한 민심의 반응이 어떤 표심으로 나타날지가 관건. 일본 지진사태와 방사능에 대한 공포 분위기로 여론이 악화되자, 결국 엄 후보 측이 원전유치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찬성 주장을 할 수 없다는 판단에 신중론으로 방향을 틀게 된 것.
엄기영 후보 측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정부방침에 찬성하고 있으나 지역민들의 생각과 바람이 더 우선이다. 불안이 가라앉지 않는 상황에 원전 유치를 계속해 주장하는 것은 주민들을 위해서도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여론을 살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4일 코리아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삼척 원전 유치에 대해 ‘반대’가 44.0%, ‘찬성’이 31.7%로 반대 의견이 12.3%p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역별로는 영동권에서 반대여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 영서 출신인 두 후보가 대결하는 강원지사 선거에서 ‘영동권 민심’이 어떤 표심으로 이어질지 관심을 끌고 있다. 영동권은 원전 유치 후보예정지인 삼척시가 포함된 지역이기도 하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지역별 여론 중 강원지역 민심을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곳으로 꼽기도 한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당시 이광재 전 지사가 선거 직전까지 한나라당 이계진 후보에게 10%p 가까이 뒤졌으나 실제 선거에서 승리했던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이 전 지사는 특히 영동권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한나라당 이계진 후보를 이기는 결과를 얻은 바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광재 전 지사는 특히 영월과 태백에서 이계진 후보를 무려 2배 가까이 앞섰다. 결과적으로 이곳 표심이 승리의 견인차가 되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영동 표심이 중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