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재화재 신치용 감독(왼쪽)과 박철우. 신 감독이 제자이자 예비사위인 박철우와 함께 사진 찍는 걸 한사코 거부해 할 수 없이 각각 촬영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신치용(신): 난 이런 자리가 너무 부담스럽다.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써야 하고, 선수들이 오해할까 걱정되기도 한다. 물론 내 딸과 철우가 사귀고 있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한 팀의 감독이 선수와 개인적인 만남을 갖는다는 게 조심스럽기만 하다.
박철우(박): 솔직히 나도 어렵다. 혜인이와 함께 집에 찾아간 상황이라면 조금이라도 편할 것 같은데, 지금은 감독님이 무섭기만 하다(웃음).
신: 내가 무서운데 이 자리에 나왔단 말야?
박: 전 감독님이 허락하신 자리인 줄 알았죠.
신: 너 대신 가빈이 왔으면 내가 기분 좋게 인터뷰했겠지(웃음).
박: 기대에 못 미쳐서 항상 죄송했어요. 다음 시즌에는 많이 달라질 거예요. 삼성에 와서 배운 게 너무 많고, 지금도 계속 배우는 중이지만, 그걸 코트에서 꼭 보여드릴 겁니다.
신: 다음 시즌에도 이번처럼 하면, 넌 완전 아웃이야. 하여튼 휴가 보내고 5월부터는 설악산에서, 6월에는 한라산에서 훈련을 할 예정인데, 독하게 마음 먹고 와. 이번만큼은 널 제대로 훈련 시켜 ‘선수’로 만들어 줄 테니까.
박: 벌써부터 긴장하고 있습니다.
박: 전 이번에 삼성화재가 우승하는 걸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번 상승세를 타니까 정규리그 때와는 완전 다른 양상을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우승을 해 본 팀이 우승한다는 말이 있나 봐요. 이전에 현대캐피탈 시절 삼성화재를 상대했을 때, 삼성만의 단단한 문화가 궁금한 적이 있었거든요. 직접 와서 보니까 삼성 선수들은 결코 진다는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오늘 경기에서 져도, 내일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났어요.
신: 철우, 너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선수들한테 강조해서 하는 말이 있어. 나한테 욕 먹고 혼난다고 해서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대신 내가 너희 가족들, 부모, 아내, 자식들은 진심으로 아끼고 제대로 대우해준다고 약속했어. 선수들이 발전이 없는 건 모두 감독 탓이야. 가끔은 ‘야, 쟨 저 것도 못하냐?’라고 한탄할 때도 있지만, 그 또한 감독 탓이더라고. 선수들을 혹독하게 내몰기도 해야 하고, 진심으로 안아줄 때도 있어야 해. 삼성은 지금 그게 되고 있어. 선수와 감독 사이에 믿음과 신뢰가 형성된 거지. 그래서 아무리 위기에 처해도 쉽게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 것이고.
신: 철우는 우리 팀 에이스가 돼야 하는데, 아직 멀었어. 이경수, 문성민, 김요한 등 좋은 공격수들도 진정한 에이스로 성장하려면 수비가 돼야 해. 수비는 상대가 선택하고 공격은 우리가 정하는 거잖아. 상대에게 선택당하는 걸 잘해야 공격도 쉽게 풀어가는 거라고. 물론 공격수라면 폼 나고 눈에 띄는 공격만 하고 싶을 거야. 그러나 그런 선수들은 발전이 없어. 그렇게 고이면 썩기 마련이고. 그래서 너도 그 점을 더 신경 써서 준비해야 되는 거야.
박: 삼성에 와서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있어요. 이전에는 중요한 순간에 공격만 잘하면 제 역할은 끝난 거였거든요. 그런데 여기선 리시브를 잘해야 하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가빈도 얘길 해보니까 처음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하더라고요. 삼성에 들어와서 많이 배웠고 수비에 신경을 쓰다보니 공격을 하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말했어요.
박: 혜인이 어머님(전미애 씨)이 유명한 농구 선수 출신이시잖아요. 태릉선수촌에서 만나 연애하신 걸로 아는데, 어떻게 데이트 하셨어요?
신: 데이트는 무슨. 나를 많이 쫓아다녀서 어쩔 수 없이 응해준 거지 하하. 그땐 지금보다 20㎏이 덜 나간 상태라 나도 꽤 괜찮았다고. 선수촌에서 전미애를 쫓아다니는 선수들이 많다고 해서 바로 밀어붙였어. 결혼은 하되, 나랑 결혼하려면 농구를 그만두라고. 그랬더니 그만두더라고.
박: 운동 선수로 뛸 수 있는 기간이 짧잖아요. 그래서 선수들이 은퇴 후의 삶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재테크에 관심을 두는 것도 그렇고요.
신: 배구선수로 성공하면 돈은 따라오게 돼 있어. 돈을 쫓으려고 하다보면 배구를 그르치게 돼. 난 83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 매달 월급을 받으며 생활했어. 단 한 번도 안 잘리고 지금까지 기록을 경신하며 감독을 하고 있지. 내가 돈을 쫓아갔다면 지금까지 롱런하지 못했을 거야. 때론 무식하게, 바보처럼 배구만 생각했던 게 시간이 흘러 지금은 나한테 큰 도움을 주고 있어. 배구하는 놈이 재테크 생각하고 그러면 틀렸어. 혜인이가 걱정된다.
박: 제가 입단한 후 여러 가지로 불편하셨죠? 저 또한 항상 마음의 짐처럼 작용해요. 혜인이와의 관계로 인해 감독님한테 부담스럽게 다가가는 것 같아서요.
신: 지금 이 자리도 불편해(웃음). 기자들이 인터뷰 때마다 너랑 혜인이와의 결혼에 대해 묻는 것도 싫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잖아. 내 팔자지(웃음). 다른 건 걱정 안 하는데, 우리 선수들이 오해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많았어. 물론 날 믿고 따라오겠지만 행여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그 또한 내가 감당해야 하니까. 네가 운동이라도 잘했으면 올 시즌이 덜 힘들었을 거야.
박: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저도 더 잘하려고 했는데, 부상까지 당해서 팀을 힘들게 만들어 버렸네요. 시즌 중에는 감독님께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시즌이 끝나니까 백지 상태가 돼 버렸어요.
신: 사람은 돈을 받는 만큼 그 몫을 해야 돼. 못하는 놈은 돈 받을 자격이 없는 거야. 네가 섭섭하게 생각하면 안 되지. 네가 한 만큼 받으면 득이 되지만 더 받으면 독이 되는 거야. 그 독은 언젠가 네 몸 속으로 들어가서 널 죽일 수도 있다고.
박: 충분히 공감합니다. 제가 1억 받고 운동할 때랑 3억 받고 할 때랑은 부담이 하늘과 땅 차이였어요. ‘먹튀’란 단어가 제 이름 앞에 수식어로 쓰일 때는 정말 아침에 눈 뜨기가 싫더라고요.
신: 5000원짜리 밥은 가끔 맛이 없어도 괜찮아. 그런데 3만 원짜리 밥이 맛이 없으면 욕이 나온다고. 사람 사는 게 그리 간단치가 않아.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독한 사람이야. 내가 독하게 마음 먹으면 안 되는 일이 없었어. 그래서 5월부터 독하게 마음 먹고 널 제대로 훈련시켜 보려고 해.
신: 오늘 이 자리에 오면서 이 질문은 정말 안 해주길 바랐는데, 결국 나오네. 난 철우가 우리 딸이랑 결혼해도 팀에선 100% 감독과 선수 관계야. 공사 구별이 확실해야 서로한테 좋은 것이라고. 이 세상이 원하는 남자는 강한 남자야.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건 기본이고, 그 이상의 뭔가를 해줘야 한다고. 특히 운동선수 출신이라면.
박: 감독님을 닮아서인지, 혜인이가 저보다 정신력이 더 강한 것 같아요(웃음). 잘해보겠습니다. 선수로서도, 또 혜인이를 사랑하는 남자로서도요. 감독님한테 인정받는 남자가 되고 싶어요.
신: 그러려면 시간 꽤나 걸리겠다(웃음).
신치용 감독 특유의 독설이 인터뷰 내내 계속됐지만 그 말 속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박철우 또한 감독의 진심을 잘 헤아리고 있기 때문에 쏟아지는 ‘화살’들을 묵묵히 맞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사연을 안고 있는 두 사람. 소속팀 감독과 선수가 장인과 사위가 되는 상황에 직면하는 순간에도, 신 감독은 여전히 박철우에게 독설을 내뱉게 될까. 두 사람이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며 녹음기를 끄고 편히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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