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주장 아닌 주장역할 해요^^
반면에 포수인 카를로스 산타나가 개막 후 방망이가 매섭게 돌아가다가 요즘 잠시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성적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부분이 크다보니 좀 기가 죽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산타나와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팀이 이기면 모두가 잘해서 이기는 것이고, 팀이 진 경우엔 설령 내가 안타를 많이 쳤다고 해도 모두가 못해서 진 것이라고요. 네가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했다고 해도 팀이 이겼다면 그것 또한 잘한 것이라고 말해줬습니다.
솔직히 저도 힘들 때가 많아요. 더욱이 제가 한국처럼 공식적인 주장도 아니고, 팀에서 저한테 리더 역할을 맡겨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많은 선수들이 저한테 의지하고 있는 걸 알게 됐고, 저를 찾아와 상담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구단이나 코칭스태프한테 뭔가를 주문할 때도, 절 통해서 하는 게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참 많은 사람들이 절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저도 제가 해야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삼진 먹고, 도루사 당하고 들어왔는데 팀이 이기는 상황이라면, 겉으론 팀 승리를 기뻐하면서도 내심 속으론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게 사실입니다. 그 부아는 남이 아닌, 제 자신한테 생기는 거죠. 아마 산타나도 그런 심정이 아닐까 싶어요. 자신의 개인 성적은 저조하고, 팀은 연승을 달리고, 그러다보면 자꾸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게 사실이니까요.
LA에인절스전에서 2연패를 당했던 거 다 아시죠? 그런데 클리블랜드가 많이 달라지긴 한 것 같아요. 좋은 팀, 좋은 선수라면 슬럼프 탈출도 빠른 법인데, 클리블랜드가 이전과 달리 연패를 벗어나는 타이밍이 빠르더라고요.
LA에인절스전에서 한국인 포수 최현을 만났습니다. 비록 미국에선 행크 콩고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엄연히 최현은 100% 한국 사람입니다. 후배인 데다 성격도 좋고 붙임성이 있어서 친근하게 인사도 하고 서로 안부를 주고받기도 했는데, 최현이 한국말이 서툴다 보니까 속 깊은 얘기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서로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데, 제 영어가 아직 완전한 게 아니라서 더 많은 얘기를 나누진 못하겠더라고요. 마음같아선 경기 전후로 밖에서 만나 식사도 같이 하고 야구에 대한 대화를 갖고 싶은데 제 짧은 영어가 들통 날 것 같아서 몇 차례 생각만 하다가 결국 그냥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한국인 후배가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긴 했는데요, 경기장을 찾는 한국 팬들이 저와 함께 최현한테도 힘찬 박수와 응원을 해주셨음 하는 바람입니다. 미국 이름이긴 하지만 그는 분명 우리와 같은 핏줄이니까요.
지금 클리블랜드 집에는 저 혼자 있습니다. 아마 한 달 정도 지나면 온가족이 클리블랜드에 모여 살 것 같아요.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아내한테 부탁했어요. 임신 중인 데다, 아이들 학교와 유치원이 있는 애리조나를 떠나는 게 힘들겠지만, 그래도 날 위해서 클리블랜드로 모두 와 달라고요. 아내도 동의했고, 무빈이와 건우 또한 아빠와 함께 지낸다는 사실에 요즘 하루 하루 날짜를 꼽고 있다고 하네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저한테 큰 감동을 줍니다. 우리 가족들 위해서라도 야구 잘해야 되겠죠? 다음 주까지 모두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클리블랜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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