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포에서는 주민들이 어로활동을 하기도 한다. 특히 우포와 인접한 목포는 담수량이 많아 고기가 풍부하다. 왼쪽 아래 사진은 황홀한 우포늪 일출. |
사진에 빠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 중 하나, 봄가을 안개가 쏟아질 때면 지도상에서 지워지는 곳, 새와 풀과 나무와 물고기와 인간이 어울려 살아가는 공존지대…. 경남 창녕군에 자리한 우포늪은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발생 내륙 습지다. 늪이 만들어진 것은 약 6000년 전으로 추정되지만, 그 주변에는 1억 4000만 년 전에 살았던 공룡의 발자국화석과 곤충화석 등이 발견된다.
태고적 신비를 간직한 우포는 모두 4개의 늪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큰 것이 우포, 그 다음이 목포, 사지포, 쪽지벌 순이다. 그러니까 우포는 4개의 늪 중 하나이자, 4개의 늪을 대표하는 이름인 것이다. 이곳 창녕 사람들은 우포(牛浦)를 예부터 ‘소벌’이라고 불렀다. 우포의 지형이 주변보다 낮은 탓에 큰 비가 오면 여러 곳에서 유입되는 물들이 흘러들어 소용돌이를 만들어 낸다. 소벌은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벌(펄, 늪, 벌판 등의 의미로 쓰인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일부 주민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소를 많이 키웠던 벌’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목포(木浦)는 땔감 나무가 많이 떠내려와서, 사지포(砂旨浦)는 모래벌이 곱고 넓어서, 쪽지벌은 작은 종잇조각처럼 좁아서 그리 불린다고 했다.
이 4개의 늪이 모인 우포는 창녕군 유어면 대대리, 세진리, 이방면 안리, 대합면 주매리 일원에 걸쳐 있고, 그 넓이는 무려 8.54㎢로 여의도 면적과 비슷한 수준이다. 우포는 현재 국제습지조약보존습지와 생태계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나무들이 깨어나는 봄이면 우포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는다. 그러나 그것이 연하디 연한 이파리를 내미는 늪가장자리의 왕버들이나, 빛바랬던 풀더미에서 올라오는 푸른 풀, 잠에서 깨어난 개구리와 부지런히 먹이사냥을 나서는 쇠오리 따위를 보러 가는 것이 주된 이유가 아님은 안타깝다. 그들 대부분은 새벽의 안개와 그것을 뚫고 올라오는 우포의 해오름에 초점을 둔다. 물론 물안개 자욱한 우포는 신비롭고 아름답다.
하지만 어떤 것에 너무 집착하면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우포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새벽같이 달려갔다고 해도 그곳을 빠져나오는 시간은 최대한 늦추는 것이 좋다. 적어도 만족할 만큼 해오름과 안개를 사진이나 가슴에 담았다면, 그 후 반나절만 우포의 길에 투자하도록 하자.
예전부터 우포늪을 돌 수 있는 길이 있었지만, 정식으로 지난해 우포늪생명길이 개통됐다. 제주 올레길처럼 자연 속으로 걸어가는 산책로다. 생명길의 전체 길이는 8.4㎞다. 평지를 걷는 것이니만큼 힘에 부칠 정도는 아니다. 걸음의 속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3~4시간이면 충분하다. 우포늪생태체험관에서 출발해 대대제방-사지포제방-주매제방-소목마을-목포제방-사초군락을 지나 다시 우포늪생태체험관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사지포제방과 소목마을 사이에 우포자연학습원이 있는데, 그곳에서 시작해도 상관없다.
요즘의 우포늪생명길이 좋은 큰 이유 중 하나는 자운영 군락 때문이다. 슬슬 보라색 꽃을 피워내는 자운영이 우포늪 일대에 만발하는 것이다. 자운영은 홍화재, 쇄미제 등으로 불리는 꽃으로 논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이다. 본격적인 농사에 들어가기 전에 자운영 씨를 뿌려두었다가 갈아엎어서 지력을 좋게 하는 데 이용한다.
우포의 자운영은 우만리 쪽 그러니까 쪽지벌 부근이 좋다. 안개도 좋고, 그 끈끈한 안개를 헤치며 고기를 잡는 어부들도 볼 수 있는 곳이 쪽지벌 주변이다. 어부들은 미리 쳐 두었던 그물을 걷어 올리며 그 시간을 한 폭 그림 속에 가둔다. 그물에는 붕어와 가물치가 한가득이다. 왜 우포로 그토록 많은 사진가들이 달려오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명장면이다.
새벽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면 이곳에서부터 생명길 산책을 시작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랄 수 있겠다. 자운영은 이제 곧 더 진한 색으로 쪽지벌을 물들일 태세다. 요새 꽃 올라오는 속도가 붙었다. 자운영은 쪽지벌 늪가의 왕버들 아래에도 곱게 피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밟히고 쓰러져서 거름이 되는 게 이 꽃의 운명이라지만 우포에서는 함부로 밟아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일부러 꽃이 무리지어 핀 곳을 피해 지난다.
생명길이 시작되는 대대제방은 높은 곳에 위치해서 우포를 내려다보는 데 좋다. 이 둑방은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것으로 우측으로 마늘밭이 펼쳐져 있다.
대대제방을 지나면 곧 사지포제방으로 이어진다. 왕버들군락이 이곳에도 있다. 왕버들은 신록의 이파리들을 가지마다 피워내며 긴 머리를 수면 쪽으로 늘어뜨리고 있다. 그 아래는 역시 쪽지벌의 왕버들군락지처럼 자운영이 곱다.
사지포제방을 넘어서면 길은 두 갈래다. 주매제방을 따라 갈 것인가, 숲길탐방로를 이용할 것인가. 제방만 따라 걷는 것이 약간을 지루할 수도 있을 터, 숲길로 들자. 새해를 맞을 때, 연인들이 소원지를 매달아 기원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사랑나무가 이곳에 있다. 숲길탐방로는 소목마을에서 목포제방으로 가는 길에도 있다. 이곳의 숲은 소나무가 일품이다.
목포제방과 자운영이 만발한 쪽지벌을 지나면 사초군락이 나온다. 죽은 억새와 갈대들이 더미처럼 군데군데 뭉쳐 있는 곳이다. 마치 도롱이를 세워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생명길은 사초군락에서 우포늪생태체험관으로 이어지며 끝을 맺는다. 아직은 뜨겁지 않은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포근한 흙길이 걷는 내내 행복감을 선사하는 길. 그 우포늪생명길의 기억이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쉽게 잊히질 않는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길잡이: 중부내륙고속도로 창녕IC→창녕읍 방면 좌회전→1080번 지방도 방면 좌회전→우만마을에서 우포늪 이정표 따라 좌회전→우포늪
▲먹거리: 우포늪 주차장 앞에 논고동 국과 무침을 잘 하는 우포랑따오기랑(055-532-4968)이 있다. 근처에 붕어찜이 일품인 우포늪식당(055-532-8649)도 있다.
▲잠자리: 우포민박(055-532-9052) 소목마을 근처에 있다. 15분 거리의 창녕읍내에 숙박시설이 있다.
▲문의: 푸른우포사람들(http://www.woopoman.co.kr) 055-532-8989, 창녕군청 생태관광과 055-530-15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