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비주류·정치 신인이라 후일 담보 못하는데 범죄 혐의까지 받아…텃밭 지지층 확보 및 30·50대 공략이 ‘승부처’
전례가 없다. 여야 1위 대선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예비후보가 일제히 ‘피고발인’ 프레임에 묶였다. 상대를 향해 ‘구속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반명(반이재명)·반윤(반윤석열) 진영에선 이들의 중도 낙마 시나리오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의도치 않은 적대적 공생관계인 셈이다. 한쪽은 비주류, 다른 한쪽은 정치 신인이다. 대선 패배 땐 포스트를 담보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내년 3·9 대선은 양자의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하는 치킨게임의 백미가 될 전망이다.
이재명 후보도 윤석열 후보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선은 ‘패하면 안 되는 승부’다. 여의도에 통용되는 선거 3유형은 △패해도 남는 선거 △패해도 최악은 피하는 선거 △패하면 안 되는 선거다. 이 중 최악은 마지막 시나리오다. 이번 판에서 패해도 남는 선거를 한 이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다. 민주당 대선 경선 초반 하위권으로 분류된 추 전 장관은 9.01%(12만 9035표) 득표율로 최종 3위에 올랐다. 추 전 장관은 현재 서울 종로 보궐선거와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오르내린다.
패해도 최악은 피하는 선거를 한 인사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다. 그는 국민의힘 2차 컷오프(예비경선)에서 탈락했지만 이후 윤석열·홍준표 캠프로부터 동시에 러브콜을 받았다. 주가가 한껏 높아진 그는 홍준표 캠프에 합류했다.
이재명·윤석열 후보는 이들과 다르다. 여당 패배는 김대중(DJ)·노무현 전 대통령이 물꼬를 튼 진보정권 10년 주기설의 고리를 끊는 원흉이 된다는 뜻이다. 정치 입문 이래 단 한 번도 성골·진골이 아니었던 이재명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취약한 당내 기반이 재기를 짓누를 수도 있다. 선출직 권력을 한 번도 거머쥐지 못한 윤 후보도 마찬가지다. 최악 땐 민주정부 4기 출범과 동시에 ‘윤석열 상품성’이 끝난다. 여권에선 반명, 야권에선 반윤 그룹이 패배 책임론을 덧씌우며 내부 권력투쟁을 전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이들이 ‘패하면 안 되는 선거’ 이유 중 하나다.
이재명·윤석열 후보가 처한 상황은 최악이다. 초대형 의혹과 박스권 지지도 굴레에 갇혔다. 반대편에 공세 빌미를 줄 악재는 차고 넘친다. 이 약점은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프레임 전쟁에 연신 불을 붙인다. 대세론은 온데간데없다. 초대형 의혹과 취약한 당내 기반 등은 닮은꼴이다. 각 당 내부에서도 “불안한 길로 가서는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겠나(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정치 22년을 하면서 윤석열 같은 후보는 처음 봤다(유승민 국민의힘 예비후보)” 등의 비판이 연일 쏟아진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이다.
두 후보는 과거 대선주자들과는 달리, 메가톤급 의혹에 각각 휩싸였다. 대장동 특혜 의혹(이재명)과 고발사주 의혹(윤석열)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도 온갖 의혹을 둘러싼 법적 공방 탓에 ‘고소 대마왕’으로 불린 이 후보는 대장동 특혜 의혹 하나로, 단번에 이슈 블랙홀의 아이콘이 됐다. 정치적 이슈에 언급을 삼가던 문재인 대통령까지 대장동 이슈에 참전했다. 경선 승복을 한 이낙연 전 대표 측 지지자들은 연일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나라도 팔아먹을 사람(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의 날 선 발언으로 이 후보를 직격한다. 일부 반명 인사들은 ‘이재명박근혜경궁(이재명+이명박+박근혜+혜경궁)’ 합성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 나른다. 대장동 출구전략이 여권의 최대 과제가 된 셈이다.
윤 후보가 맞닥뜨린 의혹도 차고 넘치긴 마찬가지다. 이른바 ‘김웅·조성은 대화 녹취록’ 복원은 고발사주 의혹의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10월 21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고발사주 의혹을 언급, “(대통령이) 돼도 탄핵사유”라고 했다. 현재 윤 후보가 직간접으로 얽힌 고소·고발 사건만 두 자릿수를 넘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검찰은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 씨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련자 김 아무개 씨를 10월 8일 추가 구속했다. 김건희 씨는 2010∼2011년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과정에서 돈을 댄 이른바 ‘전주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요양급여 부정 수급 혐의로 수감됐던 윤 후보의 장모이자 김건희 씨의 모친인 최 아무개 씨는 지난 7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9월 9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여의도 한 분석가는 여야 1위 주자들이 범죄 혐의에 연루된 것과 관련해 “검찰 등 수사기관이 대선 판세의 방향키를 잡은 꼴”이라며 “경선 후에도 준비 안 된 불안한 후보론이 증폭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윤 후보는 최근엔 전두환 전 대통령 미화 발언으로 여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불안한 후보론은 여야 텃밭마저 흔들었다. 이 후보가 본선행 열차를 탄 직후 민주당 호남 지지도는 곤두박질쳤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한 10월 2주 차(12∼15일 조사, 18일 공표) 조사에서 민주당 호남 지지도는 한 주 만에 13.9%포인트(p, 63.3%→49.4%) 하락했다. 같은 기간 무당층은 13.9%로, 6.8%p 뛰었다. 민주당에 실망한 호남 유권자가 무당층으로 이동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41.2%, 민주당 29.5%였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10월 15∼16일 조사(공표 18일)한 ‘가상 다자대결’ 결과를 보면, 이 후보는 호남에서 51.3%를 얻는 데 그쳤다. 타 후보 대비 비교우위를 보였던 40대에선 47.4%로 과반에 못 미쳤다. 여당 내부에서도 “이 후보가 본선행 확정에 따른 컨벤션효과(정치 이벤트 이후 지지도가 상승하는 현상)는커녕 ‘역 컨벤션’에 걸린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같은 조사에서 윤 후보도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에서 39.2%와 35.2%를 얻는 데 그쳤다. 운 후보가 과반을 기록한 계층은 60대 이상(52.0%)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 조사의 최종 지지도는 윤 후보 32.9%, 이 후보 32.0%였다.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중반 출생자)인 20대와 30대에서 자신의 평균 지지도를 상회한 후보는 없었다. 윤 후보는 20대 17.3%, 30대 19.6%, 이 후보는 20대 15.9%, 30대 26.6%를 각각 기록했다. 이 계층에서 ‘기타 후보·적합 후보 없음·잘 모름’을 택한 비율은 20대에서 49.9%, 30대에서 45.5%(이상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달했다. 이를 본 여론조사기관 한 관계자는 “현재 여야 1위 후보는 이재명·윤석열이 아닌 응답 유보층”이라고 꼬집었다. 안갯속 판세가 대선 막판까지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은 운명을 결정지을 변수는 △각자의 텃밭 지지도 회복 △상대방 집토끼(고정 지지층) 갈라치기 및 충청권 공략 △30대와 50대 구심점 확보 △중도·무당층에 대한 소구력 등이 꼽힌다. 호남과 영남은 이재명·윤석열 후보가 대권 여의주를 쥘 수 있는 ‘입구’로 통한다. 여권 한 전략가는 “호남에서 이 후보가 70%를 밑돌고 투표율마저 낮은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윤 후보도 영남, 특히 TK에서 60% 이상 얻지 못할 경우 힘든 승부가 불가피하다. 역으로 이 후보는 영남, 윤 후보는 호남 등 상대방의 집토끼를 갈라치기 한다면 승리 고지에 성큼 다가선다는 뜻이다.
무주공산인 충청 표심을 누가 선점할지도 변수다. 정치권 한 원로 인사는 “역대 대선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충청권에 대한 선제 공략이 중요하다”고 했다. 세대별로는 30대와 50대가 판세의 변곡점이다. 야권 한 관계자는 “그간 40대에선 이 후보, 60대 이상에선 윤 후보가 우위를 보였다”며 “양측 모두 20대 지지도가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30대와 50대 지지도가 판세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승리 길목의 입구가 영호남 텃밭 사수라면, 출구는 중도·무당층 공략이 될 전망이다. 여야 인사들은 일제히 “중도·무당층은 곧 확장성을 의미한다”며 “51 대 49 게임에서 투표장으로 나오는 중도·무당층이 승부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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