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로 출국하기 전 마지막 인터뷰를 가진 안현수. 지금까지 본 안현수의 모습 중에서 가장 편하고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감동
“팬들이 더 섭섭해 하시는 것 같아요. 대표팀선발전 때 오셔서 우는 팬들을 보니까 기분이 묘해지더라고요. 그래도 멀리 떠난다고 먹을 것도 싸오시고, 치약, 생필품 등을 가득 담은 상자를 전해주신 분도 있고, 정말 감사했어요. 한국에서 쇼트트랙 선수로 생활하며 아픔도 많았지만, 이런 팬들이 계셨기 때문에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결심
“저도 어느새 대회 나가보면 고참급에 속해요. 그러다보니 운동할 때보다 이후의 삶을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공부를 못한 게 가장 아쉬웠어요.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모색하다가 마침 러시아에서 손을 내밀었던 거죠. 그동안 운동하면서 치인 삶의 연속이었잖아요. 토리노올림픽에서 메달 딴 이후로 하루도 마음 편한 적이 없었거든요. 단 한 번이라도 운동에만 집중해서 살고 싶었습니다. 러시아행은 저한테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회상
“2006년 토리노올림픽을 앞두고 파벌 싸움이 극심했었죠. 전 한체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여자대표팀을 이끄는 박세우 코치 밑에서 훈련했어요. 당시 남자대표팀은 비한체대파 출신인 송재근 코치가 맡았었죠. 숙소도, 밥도 저 혼자 먹었어요. 하지만 여자대표팀에서 훈련할 수가 없잖아요. 결국엔 저랑 친했던 성시백, 이승훈(당시 대표팀선발전 탈락) 등이 훈련 파트너를 자처해줬어요. 저 혼자 시백이랑 승훈이 등과 같이 훈련을 한 거죠. 만약 상황이 허락했다면 시백이랑 승훈이를 데리고 토리노까지 가려 했어요. 훈련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빙상연맹에서 올림픽 1주일 전에, 따로 훈련하지 말고 남자대표팀으로 들어가서 훈련하라고 지시하더라고요. 정말 힘들었습니다. 대표팀 선수들과 말 한마디하지 않고 혼자 지낸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당시 ‘안현수 왕따설’ 등이 떠돌았었죠. 왕따를 당했다기보단 그냥 서로 말을 안 하고 지냈던 거예요.”
파벌
“토리노올림픽 때가 최고로 심했어요. 남자 경기가 열리는 날엔 코치 박스에 박세우, 송재근 선생님이 들어가 계셨어요. 외국 선수들은 한국팀 상황이 너무 이상하다고 수군거리더라고요. 분명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데 같은 팀 선수들끼리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으니까요. 제가 1등으로 통과하면 박세우 코치님은 만세를 부르고 정작 남자대표팀을 맡은 송 선생님은 썩 표정이 좋지 않으시고…,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계주를 앞두고는 이런 소문이 돌았어요. 이미 금메달 3개를 확보한 제가 다른 선수들 금메달 안 주려고 계주전 때 최선을 다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가요. 4년에 한 번 밖에 안 오는 절호의 기회를, 여러 가지 혜택이 걸려있는 금메달을 앞에 놓고 그런 장난을 펼칠 선수가 과연 있을까요?”
화해?
“결국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였던 제가 1위로 들어오니까 아주 ‘잠시’ 대표팀 선수들이 부둥켜안고 환호성을 질렀었죠. 그중 한 형은 저한테 ‘고맙다’는 말도 하더라고요. 그러다 슬며시 머쓱해진 거예요. 말도 안 했던 선수들끼리 부둥켜안고 있으니 웃긴 거였죠. 결국 전 박 코치님한테로 가고 나머지 7명의 선수들은 송 선생님과 기쁨을 나눴어요. 솔직히 선수들과는 악감정이 없어요. 우리가 무슨 죄인가요? 모두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줄 긋기에서 선수들만 희생하는 거죠. 그렇다고 그걸 거역할 만한 행동을 할 수도 없었어요. 선수 생활을 계속해야 하니까요.”
메달
“올림픽 전부터 워낙 마음 고생을 많이 해서 토리노 올림픽에선 금메달 하나만 건져도 잘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더욱이 대회 전날 스케이트 날이 이상해서 무척 고생을 했거든요. 날이 잘 맞지 않으면 제 컨디션으로 스케이트를 탈 수가 없어요. 어떤 팬이 이렇게 물으시더라고요. 그런 서먹하고 불편한 대표팀에서 생활하며 어떻게 금메달 3개와 동메달 1개를 딸 수 있었느냐고요. 전, 제 자신만 생각했어요. 파벌이든 뭐든, 결국엔 성적으로 얘기하고 싶었으니까요. 한국에서 쇼트트랙 선수로 살아가려면 독해야 해요. 독하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못 버텼을 거예요.”
구타
“2005년 유니버시아드대회 때 저랑 성시백이가 한 선배로부터 두들겨 맞았어요. 그 선배가 경기 전날 우리 둘을 방으로 불러서 금메달을 양보하라고 강요했는데, 제가 말을 듣지 않았거든요. 결국 그 일이 터지면서 코치도 물러나고 그 선배는 대표팀에서 제명됐었죠. 선배한테 금메달을 양보하지 않았다고 해서 전 천하의 죽일 놈이 됐고, 이기적인 선수로 내몰렸어요. 선배한테 맞는 것보다 더 아팠던 건, 그렇게 강요하는 선배의 상황과 그런 강요가 묵인되는 현실이었습니다. 전 깨끗하게 운동하고 싶었어요. 워낙 이런 저런 일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저라도 그런 부류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어요.”
부상
“2008년 때 부상당한 이후로 2년을 재활만 해왔어요. 정말 지긋지긋했습니다. 부상이 그렇게 힘들고 무서운 건 줄 제대로 느꼈어요. 부상과 재활보다 더 어려운 건 자신감이 떨어지는 거예요. 잘하는 후배들은 너무 많고, 전 자꾸 위축되고…, 좀만 더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번번이 주저앉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지난 주에 치른 마지막 대표팀선발전이 저한테는 자신감을 되찾게 해준 경기였어요. 러시아에 가서 체력을 보완한다면 이전의 제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어요.”
신분
“많이들 궁금해 하시는 부분이죠. 과연 제가 소치올림픽에 나간다면 어느 나라 국기를 달고 뛸지에 대해서요. 지금 이렇게 러시아로 떠나는데 과연 1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대표팀 선발전을 잘 치를 수 있을까요? 공정한 룰을 통해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연맹과 오랫동안 잡음을 일으키는 바람에 저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거 잘 알고 있거든요. 전 이제 눈치 안 보고 살고 싶어요. 팬들은 아니시겠지만, 전 제 가슴에 어느 나라 국기가 달리든 크게 상관 안 해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니까요.”
희망
“막내 동생이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 중이에요. 그런데 아마 그 애도 한국에서 오랫동안 선수 생활 못할 거예요. 왜냐고요? 안현수 동생이기 때문이죠. 전 동생이랑 단 한 번이라도 대표팀에서 같이 생활해 보고 싶어요. 그게 이뤄지려면 2018년 올림픽을 앞두고서일 거예요. 그때 제 나이가 34세인데, 외국에선 많은 나이로 보지 않거든요. 저도, 동생도 대표팀에 뽑힐 만한 실력을 갖추는 게 급선무지만, 현실로 이뤄진다면, 그런데 그 올림픽이 평창에서 열린다면 더더욱 의미가 크겠죠. 그래서 전 소치올림픽이 제 인생의 마지막 올림픽이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쇼트트랙
“이상하게 쇼트트랙은 국제대회에서 거둔 성적보다 관심을 덜 받았어요. 은메달만 따도 고개 숙이고 들어온 선수들이 대부분이에요. 쇼트트랙이 워낙 사연이 많은 종목이라서 그런지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에 쇼트트랙이 묻히는 느낌이 들어요. 유독 쇼트트랙만 파벌, 구타, 승부조작 등 이슈되는 일들이 많았잖아요. 제일 마음 아픈 건 선수층이 점점 엷어진다는 사실이에요. 쇼트트랙을 배우려는 어린아이들이 줄고 있는 거죠. 연맹에서 쇼트트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해소시켜야 해요.”
그리고 아버지
“아버지가 저 때문에 많이 시달리셨어요. 아버지는 제가 마음 아파하며 운동하는 게 싫으셨어요. 금메달 땄으니까 겉으론 행복하겠지만 안에선 별의별 일들이 다 벌어지는데, 그걸 눈 감고 참아가면서 지낸다는 걸 용납하지 못하셨어요. 물론 아버지가 드러내지 않으셨다면 제가 덜 힘들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결국엔 아버지가 총대 메고 나섰기 때문에 쇼트트랙의 문제점이 안으로 곪지 않고 밖으로 터져서 그나마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해요. 아버지한테 죄송하고 고마운 게 많아요.”
안현수는 최고의 라이벌을 외국 선수로는 ‘안톤 오노’(언론에서 만들어준 라이벌이라고 수정했다), 그리고 국내에선 무서운 후배들이라고 대답했다. 인터뷰 말미에 ‘안현수에게 쇼트트랙이란?’이라고 물었더니 그는 ‘타고난 운명’이라고 정의 내린다.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