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맹방리에 조성된 대단위 유채꽃밭. 4월 중순에서 5월 중순까지 약 한 달 동안 샛노란 꽃을 피운다. |
눈이 많이 내린다는 편견 때문에 삼척을 추운 고장으로 여기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삼척의 사계절은 서울보다 평균 3도 정도가 높다. 겨울도 서울에 비해 따뜻한 편이고, 봄도 일찍 찾아온다. 서울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이 만개할 때쯤이면 삼척의 벚꽃은 거의 지고 없다. 그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화려하게 벚꽃이 핀 삼척의 봄을 기대했다가 실망에 앞서 놀라게 된다.
그러나 벚꽃이 다는 아니다. 꽃자리를 지우며 나오는 연하디 연한 벚나무 잎사귀에도 봄이 있고, 보푼 흙에 뿌리를 내리는 풀에도 봄이 머문다. 비록 관동팔경의 하나인 죽서루 대청에 앉아 마당으로 만발한 벚꽃을 보며 여유로운 낮 한때를 보내는 호사야 누릴 수 없겠지만, 뭐 그게 대순가. 죽서루가 등에 업은 풍경에는 봄이 오히려 찬란하니 말이다. 푸른 오십천과 그 물가에 서 있는 수양버드나무의 첫 이파리들이 햇빛에 투명하게 부서지는 모습을 본다면 더는 벚꽃타령을 할 수 없으리라 장담한다.
죽서루 바로 곁에는 성내동성당이 있는데, 한번 들러볼 만하다. 2004년 12월 등록문화재 제141호로 지정된 성당이다. 1949년 삼척본당이 설립되었고 1957년 지금의 건물이 세워졌다. 그 역사가 아주 깊지는 않지만 독특한 분위기의 건축양식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고딕양식을 변형해 건물을 지었는데, 대개의 성당과 달리 건물이 그다지 규모가 있는 편이 아니고, 종탑을 그리 높이 세우지도 않았다. 건물에 단정하고 차분한 맛이 있다.
봄을 느끼기에는 신흥사도 모자람이 없다. 신흥사는 신라 말인 838년 지어진 절로 대웅전보다 단청을 전혀 하지 않은 민낯의 설선당과 심검당이 주는 수더분한 절집의 분위기가 훨씬 매력적이다. 1674년 지어진 설선당에는 1796년 제작된 탱화가 봉안되어 있고, 1771년 건립된 심검당에는 주지스님이 거하며 절을 돌보고 있다.
신흥사는 일주문을 지나서 절 마당으로 들어가는 100여m의 숲길이 좋다. 길은 ‘S’자로 흐르고 그 주변으로 나이 많은 나무들이 서 있다. 헐벗었던 나무들이 새 옷으로 갈아입고서는 저 좀 봐달라고 소리 없이 말한다.
이곳 신흥사에는 아주 희한한 나무가 있다. 몸은 한 그루인데 나무는 두 종류다. 배롱나무와 소나무가 한 몸이 되었다. 대웅전 우측에 서 있는 이 나무는 수령 200년이 됐다고 안내판에 씌어 있다. 나무도 문화재자료 제108호로 지정되었다는데, 대체 어떻게 나이가 200세인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답은 나온다. 바로 배롱나무의 나이가 200세다. 뿌리를 내린 판에 있는 게 배롱나무이고, 그 몸통을 빌려 사는 게 소나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나무보다 배롱나무의 나이가 많다.
신흥사 바로 아래로 마읍천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조금 특별한 대숲이 있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배경이 됨으로써 유명해진 대숲이다. 그러나 그 규모는 손바닥만 하다. 대단히 낭만적인 풍경을 기대하고 갔다면 그만큼 크게 실망을 할 게 분명하다. 대숲 오른쪽으로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의 집이 있는데, 노부부가 살고 있다. 대숲을 구경하노라면 그런 사람이 궁금해서 나와 보는 순박한 노인들이다.
벚꽃이 떠난 삼척의 봄을 메워주는 것은 샛노란 유채꽃이다. 죽서루에서 신흥사로 찾아가는 도중에 만나는 7번 국도변의 작은 마을 상맹방리에 유채꽃이 만발했다.
상맹방리는 바다와 접한 어촌으로 해마다 4월 중순부터 이곳에서는 유채꽃축제를 연다. 7.2㏊(약 2만 2000평)의 밭에 유채꽃을 심어, 시선을 잡아채는 이 마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축제는 4월 25일 막을 내렸지만, 꽃은 내달 중순까지도 계속 피어 있다. 유채꽃밭 사이로 산책로를 조성하는 등 배려를 한 점이 돋보인다. 유채꽃밭 너머가 바다인데, 그 사이에 방풍림으로 조성한 솔숲이 있다. 유채꽃밭과 솔숲, 그리고 바닷가까지 두루 산책할 수 있는 마을이 바로 상맹방리다.
꽃은 아니지만, 삼척의 온화한 봄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바로 해양레일바이크를 타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정선, 문경, 곡성, 양평 등 레일바이크를 도입한 곳이 꽤 있다. 그 여러 장소 중에서도 삼척의 것은 바다와 철로가 나란히 달린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래서 이름도 해양레일바이크다. 지난해 8월 개장해 운영 중인 이 해양레일바이크는 다른 곳의 것과는 달리 폐선을 이용한 것이 아니다. 모두들 기차가 더 이상 다니지 않는 철로를 활용한 반면 삼척에서는 관광활성화를 위해 새롭게 철로를 깔았다.
삼척 해양레일바이크는 궁촌역에서 초곡역을 거쳐 용화역에 이르는 편도 5㎞의 코스다. 궁촌역과 용화역에서 각각 출발할 수 있다. 바이크는 2인승과 4인승이 있다. 속도는 시속 10㎞ 안팎이다. 그러나 정해진 속도는 없다. 페달을 밟기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중간지점인 초곡역에서 쉬는 것까지 포함해 약 1시간 걸린다.
방풍림으로 조성된 솔숲과 초곡·용화터널을 헤치며 레일바이크는 앞으로 나아간다. 옆으로 보이는 동해바다는 맑고 푸르기 그지없다. 바닷바람은 온화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 계절이야말로 레일바이크를 타기에 가장 좋을 때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길잡이: 영동고속국도 강릉분기점→동해IC→7번 국도→상맹방리(유채꽃밭)→궁촌역(해양레일바이크)
▲먹거리: 삼척항 부근에 향토식당(033-573-5784)이라고 가자미회무침으로 유명한 집이 있다. 가자미를 푸짐하게 설어 쟁반에 담은 후, 그 위에 양파와 고추 채 썬 건을 올리고 초장을 취향에 맞게 부어서 버무려 먹는다. 씹히는 맛이 좋고 가격이 2만~2만 5000원으로 비교적 저렴한 것이 장점이다.
▲잠자리: 레일바이크역 중 하나인 용화역 부근에 장호용화관광랜드모텔(033-573-6321), 삼척종합버스터미널 부근에 문모텔(033-572-4436), 충일모텔(033-573-0580) 등이 있다
▲문의: 삼척해양레일바이크 033-576-0656, 삼척시청 관광정책과 033-570-3545, 3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