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경남FC 숙소가 있는 경남 함안군 함안 클럽하우스에서 윤빛가람을 만났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아시안컵 다녀와서 팬들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원정 경기를 갔는데도 절 응원하는 팬들의 함성 소리가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마치 우리 홈경기인 것처럼 말이죠. 물론 그 응원이 저한테만 쏟아지는 건 아닐 거예요. 경남FC에 저 말고도 인기있는 선수들이 많으니까요.”
윤빛가람 팬들한테 비난받을 얘기인지는 몰라도 그가 배우 현빈을 능가할 정도의 외모는 아니다. 이 부분은 본인도 인정했다. 그렇다면 어떤 매력이 그를 인기의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일까.
“처음엔 현빈 씨 헤어스타일과 제 머리가 비슷해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사진을 올렸던 게 화제를 모았어요. 진짜 현빈 닮았다는 얘기도 있고, 전혀 아니라는 분들도 있고…, 솔직히 제 얼굴이 그 분을 닮지는 않았잖아요. 한쪽에서 현빈을 빗대 ‘윤빈’이라고 하니까 다른 분이 만화 캐릭터 뽀로로를 닮았다면서 ‘윤뽀로로’, 간지가 난다며 ‘윤간지’, 이렇게 별명을 달아주신 게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게 된 거죠. 하지만 창원에서만 인기 있어요. 다른 지역, 특히 운동장 아닌 곳에선 절 알아보시는 분들 많지 않아요.”
윤빛가람은 U-17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되면서 촉망받는 축구 유망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2007년 한 인터뷰에서 ‘K리그가 재미없다’는 발언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다 조광래 감독의 눈에 띄어 K리그에 데뷔하게 된다.
“인터뷰 때마다 그 얘기가 나와요. 이젠 잊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고, 자꾸 거론되는 것도 싫고요. 그러나 분명 제가 축구 선수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 시련임은 분명해요.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경남FC 입단 후 축구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됐으니까요. 조광래 감독님은 저한테 은인이나 마찬가지신 분이에요. 프로 입문 후 우왕좌왕하는 선수한테 축구란 이런 것이라는 걸 가르쳐 주셨어요. 중앙대 1학년을 다니다 프로에 들어왔는데 대학 축구랑 프로랑은 정말 큰 차이가 있더라고요.”
조광래 감독과의 인연은 대표팀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인맥 축구’라는 비난으로 인해 선수도, 감독도 가슴앓이를 한 시간들이 있었다.
“지난해 처음으로 나이지리아 평가전을 앞두고 대표팀에 뽑혔을 때, 감독님이 경남FC 감독 출신이라 제자들을 선호한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참 애매했습니다. 저보다 감독님께서 더 힘드실 것도 같았고요. 그런데 절 선발로 기용하셨어요. 그 믿음에 보답하고 싶어서 정말 죽기살기로 뛰어 다녔습니다. 다행히 데뷔전에서 첫 골을 터트렸었죠.”
축구를 하면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싶었던 소원이 이뤄지자, 그 다음에는 주전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또 다른 ‘산’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 대표팀에 뽑혔을 때 미드필드진이 역대 최강이었어요. 그 가운데서 살아남는 게 중요했었죠. 그런데 다음 대회를 앞두고 다시 대표팀에 소집돼 들어가보니까 또 다시 역대 최강이더라고요. 저보다 못하는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앞이 캄캄하더라고요. 빈틈이 보이질 않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아시안컵 이란과의 8강전 후반에 교체 투입돼서 연장전에 결승골을 터트린 건 너무나 짜릿한 경험이자 전율이었습니다. 제 축구인생의 아주 중요한 기회였고 행운이었죠.”
윤빛가람은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어렵게, 대표팀에서 벤치 신세로 머물렀던 시간들에 대한 아픔을 곱씹어냈다.
“겉으로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물론 저한테 문제가 많았어요. 수비 보강을 원하시는 감독님의 요구를 충족시켜드리지 못했으니까요. 선수는 플레이로 말하는 거잖아요. 그러나 벤치에 앉아서 역량이 뛰어난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시간들도 나쁘진 않더라고요. 선수들의 플레이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저한테 부족한 점을 체크했어요. 해답을 얻는 시간들이었죠.”
독일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이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팬들 사이에선 손흥민과 윤빛가람이 비슷하다는 얘기부터 혹시 쌍둥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었다. 윤빛가람의 생각이 궁금했다.
“흥민이랑 저랑 같이 찍은 사진이 있었어요. 그게 인터넷에 뜨니까 어떤 기자분께서 ‘엄마, 나 형 찾았어요’라는 내용의 기사를 쓰셨더라고요.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제가 봐도 흥민이가 절 많이 닮은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흥민이는 귀여운 이미지이고, 전 좀 ‘간지’나는 분위기 아닌가요? 하하. 농담입니다.”
윤빛가람도 등번호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소속팀에서 8번을 달고 뛰는데 원래 받고 싶은 번호가 14번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고등학교 시절 그 번호를 달고 좋은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소속팀에서도 대표팀에서도 이미 그 번호가 ‘팔린’ 상태라 제가 달 수가 없었어요. 흥민이 번호요? 7번(박지성의 대표팀 등번호)을요? 에이, 그 어메이징한 번호를 어떻게 달겠어요. 부담스러워서 제대로 뛰지도 못할 걸요. 흥민이니까 배짱 있게 그 번호 달고 뛰는 거죠.”
윤빛가람은 대표팀에서 기성용이랑 같이 생활하면서 기성용이 쓰는 고가의 수입 화장품을 보고 자신도 피부에 신경을 쓰게 됐다고 한다. 왠지 기성용이 쓰는 화장품과 같은 걸 쓰다보면 자신도 기성용처럼 하얗고 멋진 피부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라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순간 ‘빵’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인터뷰 말미에 최근 관심이 집중됐던 성인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이 차출 문제에 대한 질문을 꺼냈다. 솔직히 양쪽 다 관련 있는 윤빛가람으로선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런 대답을 내놓는다.
“두 대표팀 모두 뛰고 싶어요. 다 중요한 대회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한 곳을 택해야 한다면 성인대표팀이 될 것 같아요. 올림픽도 중요하지만, 월드컵 예선도 못지 않게 중요하잖아요. 제가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언급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윤빛가람은 얼마 전 자신의 롤 모델로 홍명보 감독을 꼽은 적이 있었다. 이유를 묻자, “당시 조광래 감독의 인맥으로 대표팀에 뽑혔다는 비난을 듣는 상황이라 조 감독님을 거론할 수가 없었다”며 멋쩍게 웃는다.
“앞으론 특정 감독님 이름은 말하지 않으려고요. 괜한 오해를 살 수 있겠더라고요. 전 무조건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감독님이 원하는 선수가 되게끔 노력하는 게 정답인 것 같아요. 경남FC도 요즘 선두권을 달리고 있어서 기분 좋아요. 최진한 감독님께서 선수들 마음을 아주 잘 헤아려주세요. 팀 분위기가 좋으니까 성적도 잘 나는 것 같아요. 절 믿고 배려해주시는 만큼 운동장에서 보답을 해보이려고요.”
인터뷰 내내 유쾌한 모습을 보인 윤빛가람은 올 시즌 K리그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득점왕이 아닌 도움왕이라고 한다. 지난해 윤빛가람은 24경기에서 6골 5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한 바 있다. 시즌 초에는 ‘10골-10도움’을 목표로 내세우기도 했는데 지금은 골 욕심보다는 도움을 올리는 데 더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것.
축구에 대한 얘기를 풀어내다가 마지막으로 축구는 무엇으로 하는지를 물었다. 윤빛가람의 대답은 간단했다. “절박함이죠. 절박함으로 해야 승부가 나요.” 우문현답이다.
함안=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