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 이화동 골목은 지난해 9월 TV프로 <1박2일>에 소개되면서 아름다운 미술골목으로 유명해졌다. 낙산공원 아래에 자리한 이화동은 마치 지붕 없는 갤러리 같다. 골목 구석구석 벽화와 설치작품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 마을 바로 뒤편, 그러니까 낙산공원 반대편에도 오래된 골목마을이 있다는 사실. 이화동에 가렸지만 정겹기로는 더 나은 삼선1동 장수마을이다. |
삼선동은 1·2동으로 이루어졌고, 옛 골목은 1동인 한성대 주변에 분포돼 있다. 현재 이곳은 재개발예정지로 분류돼 있다. 한성대 동쪽 1·2구역은 이미 완료되었고, 3~6구역이 추진 중이다. 한성대 북쪽에 자리한 5구역은 사업이 최근 확정되었다. 삼선1동 골목길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4구역 장수마을이다. 한성대와 서울성곽 사이에 끼인 비탈 동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곳이다. 처음에는 아래 쪽 몇 채가 전부였으나 점점 그 위로 집들이 포개어졌다. 지을 공간만 있으면 집이 어떤 형태가 되든 올렸다.
삼선1동은 계단이 특히 돋보이는 곳이다. 목적지인 장수마을로 가려면 한성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서 걸어가는 편이 가장 낫다. 10분쯤 걸린다. 지하철역 대로변과 장수마을 사이에는 한성대길·삼선공원길·천사길·욱구길·선녀길 등이 있는데 이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계단을 만날 수 있다. 한성대길에는 차도 양옆으로 계단을 낀 곳이 있는가 하면 중앙분리대를 기준으로 좌우에 크게 화살표를 그려 넣어 통행방향을 유도하는 계단길도 있다. 삼선공원길에는 계단에 숫자를 크게 써 넣었다. 단지 재미로 쓴 숫자만이 아니다. 계단 옆집들이 그 숫자의 번지로 되어 있다. 우체부나 택배배달원들에게 참 유용한 아이디어다.
이런 길들을 두루 살펴보면서 장수마을로 오른다. 이 마을 역시 계단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나선처럼 비틀리며 올라가는 계단, 마치 파동처럼 한 지점에서 서너 군데로 퍼지는 계단, 무릎을 짚지 않으면 두어 단 올라가기가 고작인 높은 계단, 없어도 될 자리에서 화분대 노릇을 하고 있는 계단 등 다양하다.
마을은 뼈대가 되는 장수길이 양쪽 가장자리에 있다. 좌측 길 옆에는 삼선공원, 우측 길 옆에는 서울성곽과 낙산공원이 있다. 삼선공원 내에는 조선말기 군사기관이었던 삼군부의 중심건물이었다는 총무당이 있다. 숲이 어우러져 쉼터로 제격이다. 우측 서울성곽 내 낙산공원은 해거름을 감상하기 좋다. 마을 위쪽에는 조선시대 실학자 이수광이 살았던 비우당이 자리한다. 비우당 마당 뒤꼍에는 단종비 송씨가 비단을 빨면 자주색 물이 들었다는 자주동샘이 있다.
골목을 보자. 뼈대 길에서 무수히 많은 작은 길들이 나오고 분화한다. 마치 복잡한 모세혈관 같다. 아래에서부터 장수2길, 3길, 4길, 5길, 6길. 나온 곳은 다르지만 서로 뒤엉키며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7~8길은 낙산근린공원 조성으로 사라졌다. 골목은 한껏 넓은 품을 펼쳐보이다가도 겨우 한 몸 지나갈 정도의 공간만을 내던지기도 한다. 천편일률을 거부하는 골목, 그것이 이곳 장수마을의 매력이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문의 : 삼선동주민센터 02-923-88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