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난동 이어 라이터 기름 방화로 승객 십수명 부상…범행 후 태연히 흡연 ‘화제성 노린 왜곡된 자기과시’
살인미수 현행범으로 체포된 용의자는 24세의 핫토리 교타다. 현지 언론에 의하면 “핫토리는 게이오선 전철에 승차한 후 앉아있던 남성 승객(72)에게 살충제 스프레이를 분사하고 흉기로 찌른 것”으로 보인다. 이후 도망치는 승객들을 뒤쫓아 차량을 이동했으며, 라이터용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인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사건으로 70대 남성은 중태에 빠지고 연기를 들이마신 승객 등 16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 조사에서 핫토리 용의자는 “일도 친구관계도 잘 풀리지 않았다”며 “사람을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그는 “2명 이상 죽이면 사형에 처해진다는 걸 알았다. 핼러윈데이였고 해당 시간대 게이오선 특급열차에 사람이 많아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범행에 쓰인 흉기는 6월경 온라인에서 구입한 30cm짜리 호신용 칼”이라고 한다.
현장에 있던 승객에 따르면, 용의자는 전동차가 조후역을 출발하자 칼을 휘둘렀다. 더욱이 기름을 뿌리고 불까지 질렀다. 펑 소리와 함께 불꽃이 치솟았고 검은 연기로 객차가 뒤덮여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같은 열차에 타고 있던 50대 여성은 “열차 뒤쪽에서 사람들이 일제히 밀려왔다”며 “열차가 긴급정차하자 일부 승객들이 창문을 통해 도망치기도 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달아나는 도중에 ‘칼을 휘두르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 몹시 무서웠다”는 증언이다.
#조커 복장은 범행을 위한 ‘승부복’
승객이 촬영한 동영상에는 당시 용의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범행을 저지른 후 핫토리는 다리를 꼰 채 차량 시트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녹색 셔츠에 파란색 정장, 보라색 코트 차림으로, 마치 할리우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조커’와 흡사하다.
용의자는 “태연하게 사람을 해치우는 조커를 동경해왔다”며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복장에 대해서는 “범행을 위해 구입한 ‘승부복(勝負服)’이었다”고 밝혔다. 조커는 미국 DC코믹스의 ‘배트맨’에 나오는 악당으로, 캐릭터 중에서도 인기가 높아 종종 영화로 실사화된 바 있다. 공교롭게도 ‘지하철 내 살인’은 2019년 개봉한 영화 ‘조커’를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 조커는 지하철에서 폭력을 휘두르던 괴한 3명을 우발적으로 살해하는데, 이 사건이 결국 ‘악의 길’로 치닫는 계기가 된다.
수사 관계자에 의하면 “핫토리는 후쿠오카현 출신으로 올해 6월에 직장에서 문제가 생겨 일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후쿠오카를 떠난 그는 고베, 나고야시를 전전했고, 사건 발생 한 달 전부터 도쿄 하치오지시의 비즈니스호텔에서 투숙하며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
용의자의 초·중학교 동창은 “핫토리가 학창 시절엔 온순한 성격으로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다”고 말했다. 연락하고 지내는 동창이 거의 없기 때문에 “최근 핫토리의 생활상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또 다른 지인 남성은 “4년 전 같은 만화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근무태도는 성실했으나 애인과 헤어진 후엔 기운이 없고 왠지 병든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핫토리가 큰 소동을 일으켰다. 다름 아니라 만화방에 온 손님들을 도촬하다가 들켰다는 것. 피해자와 합의는 했지만, 가게에서는 해고되고 말았다.
#반성은커녕 “계획대로 못 죽여 억울하다”
일본 매체 ‘주간문춘’은 “핫토리 용의자가 피해자에 대한 사죄나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두 사람 이상을 죽이려 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억울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의 칼에 찔린 70대 남성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전동차 내 갑작스러운 난동으로 마음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일례로 같은 열차, 심지어 범인과 같은 차량에 있었던 여고생은 충격으로 등교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민은 “열차 내 용의자의 동영상을 봤는데 넉살 좋게 담배를 피우고 있더라. 허세를 부리는 것 같아 역겨웠다”며 비난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올해 8월 오다큐선 전철 안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과 매우 유사하다. 당시 쓰시마 유스케(36)라는 남성이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20대 여대생 등 승객 9명이 다쳤고, 방화를 시도했던 사건이다. 먼저 시간대가 오다큐선 사건이 오후 8시 30분경. 이번 사건은 오후 8시경으로 약 30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둘 다 현장은 도심으로 향하는 전동차 안. 특히 정차하는 역이 적은 급행열차와 특급열차가 표적이 됐다. 흉기로 승객을 덮치고 차량을 이동한 후 기름을 뿌려 불을 붙이는 방식도 똑같다.
이와 관련, 핫토리 용의자는 “대량 살인을 계획하고 있던 참에 8월 오다큐선 사건이 일어나 참고했다”고 말했다. “특급열차의 경우 정차하는 역 사이가 더 길기 때문에 승객들이 도망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또한 “오다큐선의 범인은 식용유를 뿌린 뒤 불을 질러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그래서 난 라이터 기름을 준비했다”는 끔찍한 발언도 더했다.
#담배 설정은 왜곡된 자기 현시욕
범죄심리학자 데구치 야스유키 교수는 “묻지마 범죄의 경우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자신을 정당하게 평가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사회에 보복하고 싶다’는 공격 행동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끌어들이는 범죄를 일으킴으로써 ‘내가 이럴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이번 사건 역시 ‘조커’라는 화제성을 노린 왜곡된 자기 현시욕의 표현으로 보인다”고 데구치 교수는 덧붙였다.
특히 범행 후 용의자는 전동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자세히 보면 피우는 시늉만 할 뿐 ‘뻐끔 담배’다. 평소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마치 전철 밖에서 촬영되고 있는 것을 알고는 일부러 허세를 부리며 ‘조커’라는 도취감에 젖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데구치 교수는 “이런 범인들의 특징 중 하나는 사건을 일으키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고 전했다. 그들은 사건을 계획하는 동안 매우 강한 고양감에 휩싸인다. 아슬아슬한 흥분을 맛보며 사건을 일으키고 ‘희미했던 자신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데구치 교수는 “자신의 어떤 자세, 어떤 복장이 사회에 큰 임팩트를 줄 수 있을까. 이것도 충분히 사전에 염두에 둔 계획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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