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화재의 ‘최강 쌍포’였던 김세진, 신진식 KBS N스포츠 해설위원이 이제 배구공 대신 해설자로 마이크를 잡았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2006년과 2007년 삼성화재 유니폼을 벗었던 김세진과 신진식. 이후 김세진은 곧장 해설위원으로, 신진식은 호주 유학을 떠났다가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국가대표 트레이너의 신분으로 귀국한 바 있다. 10년간 한 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인연 때문일까. 두 사람은 KBS N 스포츠 배구 해설위원으로 다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경력 5년차인 김세진의 입담에 비해 ‘초보’나 다름없는 신진식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방송 때마다 실수 만발이고 급한 상황에서 터지는 전라도 사투리 때문에 스튜디오 안은 웃음꽃이 끊이질 않는다고. 두 해설위원의 방송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취중토크를 풀어나갔다.
1세트-‘소폭’으로 시작
여의도공원 인근의 한 횟집에서 만난 김세진과 신진식. 먹음직스런 해산물세트와 대구 지리를 안주로 주문한 뒤 소주와 맥주를 시켰다. 두 해설위원의 요청으로 소주와 맥주를 ‘말아서’ 먹기로 했기 때문. 먼저 시원하게 맥주 한 잔씩 원샷으로 들이킨 뒤 ‘소폭’으로 잔을 비우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제가 진식이를 해설위원으로 추천했어요. 겉으로는 말수도 적고 낯을 가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은근히 입담이 좋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처음엔 이런저런 실수도 하고 사고도 쳤지만 시간이 갈수록 안정감있게 진행하는 게 눈에 띄더라고요.”
김세진의 말을 듣고 있던 신진식이 고개를 내저으며 방송 초기 때의 실수담을 끄집어냈다.
“어휴 말도 마세요. 방송 전에는 달달 외우던 멘트들이 카메라에 불만 들어오면 머리가 하얗게 되는 거예요. 아무 생각도 안 나는 거죠. 방송 중에 아나운서가 대본대로 ‘저 선수는 서브가 강점이죠?’하고 물었는데 제 대답이 뭔 줄 아세요? ‘네 그 선수는 서브가 강점입니다’. 질문을 똑같이 반복하는 해설위원이 어디 있어요? 대답을 해야 하는데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니까 모두 까먹어 버린 거죠.”
2세트-마시면 무조건 ‘원샷’
배구계의 유명한 주당답게 잔만 부딪치면 남기는 법이 없다. 그들의 빠른 주법을 따라가기에 힘이 부친 기자가 조금씩 술을 남기자, 바로 태클이 들어온다. ‘취중토크’답게 기자 또한 취해야 한다는 게 두 ‘레전드’의 지적이다. 키 197㎝인 남자들과 160 조금 넘은 여자가 어떻게 똑같이 대작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초반에는 보조를 맞춰보려고 노력해봤다.
김세진은 처음 해설할 때 편파 해설을 한다는 지적이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출신 성분에 대한 비난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더라고요. 방송에서 삼성에 대해 많은 얘길하면 옹호한다고, 편든다고 뭐라 해요. 그러나 삼성 출신이다보니 그 팀에 대해 많이 알고 있고, 그 부분을 얘기하는 것뿐인데 편파 운운하면 속상하죠. 이제 방송한다고 해서 긴장하거나 실수하는 건 거의 없는데 알면 알수록 어렵고 조심스러운 게 해설인 것 같아요.”
신진식도 말에 대한 책임과 한 번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우스갯소리를 내던진다.
“카메라와 눈을 맞추지 못해 카메라의 렌즈 중심을 보지 않고 그 주변부를 돌아가면서 봤는데 나중에 녹화해둔 걸 보니까 제가 심하게 눈을 굴리고 있더라고요(웃음).”
3세트-‘병권’이 옮겨가다
전날 두 해설위원 모두 과음했다며 처음에는 술 마시는 인터뷰를 부담스러워했는데 술이 한두 잔씩 들어가다 보니 탄력을 받았나보다. 처음에는 김세진이 술을 ‘말다가’ 이번엔 신진식이 병권을 잡았다.
질문은 시즌 초 최하위로 내려앉았던 삼성화재가 챔피언결정전에 올라선 부분에 대한 내용들로 이어갔다. 이번에도 김세진부터 얘기를 꺼냈다. 대답하는 순서를 미리 정해주지도 않았는데 매번 김세진-신진식 순이다.
“삼성은 정말 대단한 팀이에요. 괜히 삼성이 아니더라고요. 해내야겠다는 선수들의 의지와 수행 능력이 엄청나요. 최하위에서 3위까지 치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니까 할 말이 없더라고요. 집중력이 끝내줘요.”
신진식도 김세진의 말에 절대 공감한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최태웅 석진욱 손재홍 등 모두가 빠졌잖아요. 새 팀이나 마찬가지죠. 살림을 다시 꾸려가야 하는…. 그러다보니 1,2라운드 때는 새로운 선수들이 그 무게감에 짓눌려서 뭘 할 줄도 모르고 눈치만 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3라운드서부터 누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해내야 한다는 걸 느꼈나봐요. 그때부터 선수들이 달라지기 시작했거든요.”
김세진이 한마디 더 덧붙였다.
“애들이 삭발하고 경기장 나오는데 눈빛이 예사롭지 않더라고요. 가빈이 왜 대단하다고 평가받는 줄 아세요? 가공할 만한 득점력도 높이 살 부분이지만 의지가 대단해요. 그 덩치 큰 선수가 체력 다 소진되는 걸 알면서도 바닥에 떨어지는 공을 엎어지면서 쳐 내려 하잖아요. 이게 얼마나 자극적인 건데요.”
4세트-‘백기’를 들 타이밍
큰일이다. 벌써부터 알딸딸해진다. 3세트에서 2(김세진, 신진식)-0(기자)으로 백기를 들려던 계획이 두 사람의 반발로 백지화됐다. 계산 착오다. 앞에서 너무 세게 달린 것이다. 그러나 술이 취하면서 질문도 답변도 강도가 세졌다. 그래서 자꾸 ‘이거 기사로 써도 돼요?’라고 다시 묻기를 반복했다.
해설위원이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하고 싶었다. 올 시즌 우승 후보 0순위로 꼽혔던 현대캐피탈이 플레이오프에서 무너진 이유에 대한 내용이었다. 역시 대답 순서는 바뀌질 않는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죠. 현대는 훌륭한 선수들을 많이 데리고 있지만 팀에 융화되지 못한 선수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솔직히 말할게요. 전 (문)성민이를 많이 아끼는 편인데 이번에 좀 실망했어요. 처음에는 제 역할을 하는 듯하다가 나중에는 자기가 문성민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욕심 때문에 과부하가 걸리더라고요. 현대가 전력만 놓고 봤을 땐 삼성한테 0-3으로 질 팀이 아니거든요. 단기전 같은 경우엔 믿음과 신뢰가 절대적으로 중요해요. 이 점에서 무너졌던 게 현대의 패인이라고 봐요.”
신진식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저랑 세진 형이 선수로 뛰었을 때 자기 욕심만 부렸다면 우승까지 갈 수 없었을 거예요. 현대는 선수 개개인들마다 욕심이 과해요. 좋은 선수들이 챔프전까지 올라가지 못했다는 건 정말 심하게 안타까워요.”
5세트-챔피언결정전 우승팀?
현대캐피탈 얘기를 하면서 술이 확 깬 모양이다. 두 사람 모두 처음 술을 마실 때의 상태로 되돌아온 듯했다. 기자만 해롱거린다. 다리에 힘을 주고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누가 웃게 될까요?”
“짜임새로 봤을 때 대한항공이죠. 삼성이 대한항공을 이기기 위해선 뭔가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해요. 가빈 위주의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하거든요.”(김세진)
“저도 대한항공이 우승할 것 같아요. 신영철 감독님께서 선수 시절 우승을 많이 해본 분이기 때문에 운영 능력이 대단하세요. 신치용 감독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대한항공이 유리한 것은 사실입니다.”(신진식)
김세진과 신진식은 지금까지 한국에 온 최고의 용병으로 삼성화재 가빈을 꼽았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다시 배구코트로 돌아갈 꿈을 갖고 있었다. 그 무대가 친정팀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선후배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 형, 동생 사이라고 강조하는 김세진, 신진식 해설위원과의 취중토크는 기자만 장렬히 전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괜히 까불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