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지오 노리오 도쿄전력 부사장(뒷줄 오른쪽)이 대지진 후 후쿠시마 피난민들을 찾아가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3월 26일 도쿄전력은 지진피해 지역 350만 세대에 3월분 전기요금을 검침하지 못했으니 2월분과 같은 요금으로 내라며 고지서를 발송했다. ‘잠정요금’이란 명목으로 요금고지서가 발송된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 전국에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이에 시사 주간지 <긴요비> 등에서는 ‘사람 목숨보다 돈을 중시하는 도쿄전력 간부들을 다 형사고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도쿄전력 사장은 사고 후 지난달 13일부터 1주일간 피로로 인한 건강악화를 이유로 기자회견 등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도주설’까지 부상하자, 21일에서야 사고 지역인 후쿠시마를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후쿠시마 현 지사는 “주민의 불안과 분노가 극에 달했다”며 “피난소에 방문하지 말고 사태나 수습하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가뜩이나 여론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마당에 대지진이 난 11일 이후 ‘도쿄전력의 간부들이 대낮부터 긴자의 요정에서 놀았다’는 글이 유흥업소 인터넷 자유게시판 ‘호스트러브(Hostlove)’에 올라오면서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한 호스티스가 도쿄전력 간부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글을 쓰자, ‘이전에는 우리 업소에도 자주 왔었다’는 다른 요정 호스티스들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충격적인 것은 사고 전 도쿄전력의 간부들은 긴자 일대 유흥업소 수십여 곳을 전전하며 유흥을 즐기곤 했는데, 호스티스들에게 자신의 직함이나 실명을 자랑스럽게 공개했을 뿐만 아니라 유흥비용을 모두 하청업체 등에 부담시켰다는 사실이다. 한 호스티스의 글에 따르면 ‘도쿄전력 손님은 유난히 폭음을 하며 지저분하게 노는데 여러 하청업체가 울며 겨자 먹기로 술값을 냈다’고 한다.
또 도쿄전력 부사장 중 한 명은 일명 ‘명란젓 아저씨’로 악명이 높다. 여러 유흥업소에서 호스티스의 가슴을 시도 때도 없이 주물럭거려서 생긴 별칭이라고 한다. ‘명란젓 아저씨’란 빨간 명란젓처럼 입술이 두꺼운 용모를 빗댄 말인데, 이런 용모가 색을 지나치게 밝힌다는 속설에서 비롯됐다.
네티즌들은 유흥업소 사이트 글을 퍼다 나르며 ‘일본의 악’, ‘천벌을 받아라’라는 등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간 도쿄전력은 도쿄에 본사를 두고 도쿄와 수도권 일대 및 동일본 전역에서 수력·화력·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며 전력 공급을 독점해왔다. 1995년 민영화돼 민간 전력기업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데, 특정 분야에서 독과점 형태로 시장을 점유하는 기업을 지칭하는 소위 ‘걸리버 기업’의 대명사 격으로 불린다. 3만 6000여 명의 직원에 연간 매출만 무려 4조 8000억 엔이다. 직원들의 급여와 복지도 일본 톱 대기업 수준이라 일본에서는 ‘신의 직장’이라 일컬어졌다.
상장기업 정보에 따르면 직원의 평균 연봉은 757만 엔(약 1억 원)에 이른다. 간부급은 무려 7500만 엔(약 10억 원)의 고액 연봉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택과 회사기숙사 등의 월세는 한 달에 단돈 2000엔(약 3만 원)에 불과하다. 직원 연수 장소는 항상 특급 온천 휴양지였다고 한다. 심지어 스톡옵션제로 받은 주식을 팔아 자택을 마련한 20대 사원도 있을 정도라 한다.
도쿄전력의 가장 큰 논란을 부르는 것은 관료의 낙하산 인사다. 도쿄전력에는 6명의 부사장과 고문, 이사 등이 있는데 이들은 거의 모두 전직 관료 출신이다. 실제 올 1월에도 경제산업성 산하 자원에너지청 장관이 퇴임 후 4개월 만에 도쿄전력의 고문으로 취임한 것이 드러나 크게 문제가 됐다. 에너지청은 전기요금 개정이나 발전소 건설 허가,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어 전력업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공공기관이다. 일본의 공무원법에는 퇴직 후 2년간 관련 업계에 재취업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긴 하나 유명무실한 조항이나 마찬가지로 알려졌다.
한편 ‘계획 정전’이라며, 하루 3시간가량 전력부족 등을 이유로 정전을 실시하고 있는 도쿄와 수도권 내에서도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계획과 달리 3시간 이상 정전이 되거나 갑자기 정전이 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간 나오토 총리의 선거구 등 정전 대상에는 포함되었으나 실제로는 시행하지 않는 지역도 있어 불공평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석간 후지>는 “후쿠시마 원전 현지에 급파돼 사흘간이나 살수 작업을 하다 돌아온 소방 구조대원이 67명이나 있는 요코하마 소방서도 정전이 되자 (도쿄전력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며 지역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