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왼쪽)와 한나라당 강재섭 전 대표가 경기 성남 정자역 앞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4·27 경기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두 사람은 유권자들에게 출근길 인사를 하던 중 우연히 만났다. 연합뉴스 |
4·27재·보궐 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분당 을 후보 선출과정을 두고 한나라당 내부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안상수 대표와 원희룡 사무총장 등 공천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당 지도부에 대한 성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전 정지작업도 하지 않고 마치 떡 하나 주는 듯 정운찬 전 총리에 대한 영입설을 흘리다 결국 도루묵을 만들고 말았다. 이는 비록 영남이긴 하지만 5선 관록의 강재섭 전 대표의 경쟁력마저 깎아내리는 ‘일타쌍피’의 역효과를 내고 말았다. 결국 선거에 나설 후보의 이미지만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에 대해 “강 전 대표는 16년째 분당에서 살고 있어 지역현안에 비교적 밝다. 그리고 2008년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 별다른 정치활동을 하지 않아 이명박 색채가 상대적으로 덜해, 야당의 정권심판론을 피해가며 지역문제로 선거 구도를 바꿀 힘도 있다. 또한 ‘노는’ 동안 꾸준하게 산악회 활동 등을 하며 지역구 관리도 해왔기 때문에 실제 선거 결과는 초박빙일 것이다. 영남이지만 5선을 하면서 쌓은 선거에 대한 노하우도 무시 못 한다. 그런데 당 지도부가 손학규 카드에 지레 겁을 먹고 강 전 대표를 무시하다가 결국 다시 ‘낙점’ 쪽으로 간 것 아니냐. 이렇게 선거 전략을 무책임하고 생각 없이 짜는 지도부는 처음 봤다”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사실 이번 분당 을 선거에 ‘올드 이미지’의 강 전 대표가 출마하는 것에 대한 당 안팎의 분위기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친이계에서 정운찬 전 총리 영입설을 흘리면서 사태가 꼬이기 시작했다. 친 이재오계가 범 이상득계인 강재섭 전 대표의 국회 입성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 관심도 없던 정운찬 전 총리를 들쑤시다 결국 사단이 났다. 숟가락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을 경계했던 친 이재오계가 일찌감치 정운찬 전 총리 영입 카드로 강재섭 전 대표 기를 눌러놓으려 하다가 어설픈 정지작업으로 실패한 것이 이번 공천사건의 본질이다.
이런 공천을 둘러싼 계파 간 갈등은 재보선 결과에 따른 또 다른 여당의 대권구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강 전 대표가 승리할 경우 이상득 의원의 위상은 더욱 강화되면서 박근혜 전 대표와 본격적인 밀월관계로 접어들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이 의원과 이명박 대통령은 박 전 대표의 우산 아래 본격적인 하산준비를 시작할 수 있다. 박 전 대표는 ‘현재권력’의 용인 아래 대세론으로 밀어붙이며 당 장악에 속도를 낼 수 있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의원은 이에 대해 “결국 강재섭 전 대표로 굳어지는 것은 이명박(이상득)-박근혜 양측의 우호적인 기류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고 봐야 한다. 최근 동남권 신공항 건설 백지화 논란과 관련해서도 양측이 최대한 자제하며 확전을 피한 것도 강 전 대표 ‘낙점’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정 전 총리 공천을 주장했던 이재오계는 더욱 궁지로 몰릴 가능성이 크다. 친이계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분당이 분당을 부를 수도 있다”라고까지 말한다. 이재오 특임장관과의 당 대표 대결에서 승리했던 강 전 대표가 입성하게 되면 범 이상득계의 득세는 불을 보듯 뻔해지고, 강 전 대표가 영남에 기반을 둔 ‘이상득-박근혜 연대’의 브리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도미노 현상은 결국 수도권 기반의 친 이재오계가 탈당 또는 정계개편의 유혹에 더 많이 노출될 여지를 만들어 주게 된다. 이재오계로서는 자의 반 타의 반 정계개편의 벌판으로 뛰어들어야만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는 셈이다.
반면 강 전 대표가 패배할 경우 당은 더욱 복잡한 상황으로 빠져들 것이다. 그 유탄은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이 동시에 맞게 된다. 이 대통령은 이번 재보선의 상징적 지역구인 분당 을에서 패배하게 될 경우 심각한 레임덕에 빠질 전망이다. ‘천당 아래 분당’이라 불리던 한나라당 아성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주요 지지기반의 붕괴를 의미한다. 동시에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공약 위반으로 영남권 의원들의 탈당 요구까지 받고 있는 그가, 재보선 패배까지 당하게 되면 당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더욱 이 대통령을 탈당 쪽으로 압박할 것이다.
이상득 의원에게도 분당 을 패배가 뼈아프다. 재보선 패배 책임론으로 강 전 대표 공천을 주장했던 ‘강재섭댁’ 나경원 최고위원은 책임론으로 내몰리게 되고, 그의 ‘보스’ 이상득 의원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정적’ 이재오계가 국정쇄신책의 하나로 ‘형님’의 2선 후퇴를 다시 요구하는 상황까지 직면할 수 있다. 그리고 안상수 대표 교체를 전제로 이재오 장관이 대표로 돌아올 경우 당을 장악하게 되고 그것은 곧바로 ‘박근혜 죽이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곧 ‘이상득-박근혜’ 연대를 깨는 기제로 작용하게 되고, 박근혜 대세론도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분당 을이라는 ‘나비’는 한나라당 예선뿐 아니라 2012년 본선에도 큰 ‘효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3월 30일 실시된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 여론조사에서 강 전 대표는 44.3%를 얻어 손학규 대표 42.7%를 불과 1.6%p 차이로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추세라면 손 대표가 충분히 역전시킬 수 있는 판세다. 한나라당의 아성으로 불리는 분당에서마저 민심 이반의 흐름이 포착된다면 수도권 전체의 여론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역대 대선이 수도권 중심의 중도성향 5% 정도의 표로 승패가 결정됐다는 점에서 ‘분당 을 대전’이 곧 대선 결과를 예측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사무처의 한 핵심 당직자는 “재·보궐 선거 투표율이 낮고 숨어 있는 보수 유권자들이 있기 때문에 뚜껑을 열어 보기 전에 예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손 대표가 신승하게 되면 이것은 굉장히 유의미한 사건이 될 것이다. 쉽게 지지층을 바꾸지 않는 보수층이 손 대표를 선택한다는 것은 도도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 물결은 물론 대선으로 곧장 향하고 있다. 이런 거대한 물줄기를 바꿀 힘은 오로지 박근혜 전 대표에게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손 대표가 만약 분당 을에서 승리하는 대이변이 일어난다면 그 임팩트는 2012년 대선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첫 파동이 될 것이다.
또한 그의 승리는 박근혜 대세론으로 밋밋하게 전개되는 현 대선구도를 깨는 첫 번째 단초가 될 수 있다. 사실 손 대표는 분당에 대한 연고도 없는 데다, 강력한 보수의 아성을 깨기도 쉽지 않다. 더구나 투표율이 큰 변수가 되는 재보선에서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그가 기적을 일궈낸다면 단번에 ‘박근혜 대항마’로 부상하는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것이 대부분의 참모가 만류함에도 새벽 3시에 전격 출마를 결정하게 만든 이유다.
분당 을 승리로 손 대표는 표 확장성이 약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와의 대결에서 비교우위를 점하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 유 대표가 이번 김해 을 재보선에 ‘올인’하는 것도 손 대표의 분당 을 선전에 대비하는 대응책 성격이 짙다. 손 대표가 분당 을을 기반으로 유 대표를 서서히 누르게 되면 일단 야권의 유일한 봉우리로서 박근혜 전 대표와 맞설 수 있는 토대를 비로소 만들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손 대표는 “너무 일찍 승부를 걸었다” “소대 전투에 사단장이 나서는 어리석은 행보다”라는 비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손 대표의 한 측근은 “일단 분당 주민들이 ‘기회를 한 번 줘보자’라는 공감대가 확산될 조짐이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전세대란, 부동산값 추락 등 분당에 민감한 사안들도 정권심판론에 힘을 실어주는 요소다. 수도권 전반에 퍼지고 있는 ‘반 한나라 비 박근혜’ 정서도 손 대표로서는 희망적인 부분이다. 여기에 손 대표가 전격 출마를 결정하면서 이미 선거판이 ‘손학규 아젠다’로 굳어졌다. 여당이 그것을 뒤집을 만한 카드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사실 5선에 당 대표까지 지낸 강재섭 전 대표가 정운찬 전 총리보다 상대하기가 어찌 보면 더 빡빡하다고 할 수 있다. 지역기반이 비교적 탄탄해서 전국구 전투에 휘둘리지 않을 맷집이 있고, 분당주민들의 견고한 보수의 벽도 뚫기가 쉽지 않은 게 약점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분당 을은 이번 4·27 재·보궐 선거의 빅 매치 4곳 가운데서도 단연 으뜸이다. 전·현직 여야 당 대표끼리의 대결에다 차기 대선을 미리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박근혜 대세론도 분당 표심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 여의도에 오랜만에 흥미로운 정치 드라마 한 편이 펼쳐질 전망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