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O 이상국 총재 특보가 이용일 총재 대행 취임 후 영향력이 더 막강해졌다는 설이 파다하다. 많은 야구인들은 이 특보의 입김이 대단하다고 주장한다. |
KBO의 발 빠른 대응에 야구계는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덕분에 ‘사상 최악의 오심’이라 불렸던 보크 사건은 예상보다 쉽게 사그라졌다. 하지만 야구인 가운데 일부는 “누가 누굴 벌하느냐”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누가’는 이상국 총재 특보를 겨냥한 소리였다.
당시 상벌위엔 이 특보를 포함해 허운 경기감독관, 이상일 사무총장, 최원현 고문변호사 등 4명이 참가했다. 허 감독관은 한화-LG전의 경기 감독을 맡았고, 이 총장은 상벌위 당연직 위원장, 최 변호사는 법적 조언자라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나 이 특보는 참여할 이유가 없었다. KBO 고위관계자는 “이 특보도 간부로서 참여했다”라고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이 특보는 상벌위에 참여할 직위도, 입장도 아니었다.
이 특보의 정식 명칭은 ‘광주 새 구장 건설을 위한 총재 특별보좌역’이다. 야구계의 현안을 두루두루 챙기는 입장이 아니라, 광주지역 새 구장 건설에만 전념해야 하는 게 주된 역할이다. 그럼에도, 이 씨가 자신의 직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상벌위에 참여했다는 건 논란의 소지가 컸다.
모 야구인은 격앙된 표정으로 “회장 비서가 팀장을 뽑고, 회사 운영을 좌지우지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지금 이 특보가 딱 그 모양”이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이 특보가 상벌위원이 된다면 전과자도 청소년 선도위원이 될 수 있다” 며 혀를 찼다.
이 특보는 야구계에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이로 불렸다. KBO 사무총장 재임 시절인 2005년 잠실구장 펜스광고 수의계약과 관련해 광고물 사업자로부터 3년 동안 4차례에 걸쳐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구속 기소됐고, 배기선 전 국회의원에게 정치자금 영수증을 교부받지 않은 채 3000만 원을 건넨 혐의(정치자금법 위반)까지 더해져 구치소 신세를 진 바 있다. 법원은 이 특보의 배임수재 혐의는 무죄를 선언했지만, 정치자금법은 유죄로 판결하며 벌금형 500만 원을 선고했다. 따지고 보면 배임수재 혐의도 법적으로만 무죄였다. 당시 대법원이 이 씨의 배임수재 혐의에 관해 무죄를 선고한 건 ‘광고 계약 체결과 관련한 부정한 청탁을 받았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이지, 이 내정자가 광고업자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모 야구해설가는 “‘공정 사회의 최대 적’으로 꼽히는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이 특보가 상벌위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한국야구계의 ‘공정 수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며 “도대체 어느 누가 이 특보가 참여한 상벌위의 결과에 수긍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야구인은 “상벌위에서 징계 수위를 결정할 때 이 특보가 ‘그 정도는 약하지 않느냐’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상벌위에 참여했던 모 인사도 “딱 꼬집어 누구라고 말할 순 없지만, 상벌위 관계자 가운데 그와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있긴 있었다”라고 말했다. 만약 이 특보가 그런 말을 했다면 더욱 강한 징계안이 오심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심판들의 생각은 다르다.
모 심판은 “이 특보가 과거처럼 다시 심판부를 장악하려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다른 심판도 “상벌위를 적절히 활용해 심판들을 줄 세우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다”며 우려했다.
▲ 보크에 항의하고 있는 한대화 감독. |
그즈음 모 팀의 감독이었던 A 씨는 “당시 야구계엔 ‘KBO에 밉보이면 심판들로부터 불이익을 받는다’ ‘모 구단은 심판진의 비호 속에 볼과 세이프 판정에서 이득을 본다’ ‘관중이 많기로 소문난 구단들은 프로야구 흥행을 위해서란 명목으로 심판들의 보호를 받고 있다’ 등 셀 수 없이 많은 루머가 돌았다. 공 하나로 승패가 뒤바뀌는 야구에서 심판들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낭패였다. KBO와 심판에 불만이 있어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소문의 중심엔 항상 이 총장이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심판의 출장 등 업무에 관한 사안은 모두 심판위원장이 지시한다. 징계도 마찬가지다. 상벌위가 있지만 이를 거치지 않고 심판위원장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 1군 심판을 2군으로 보낼 수 있다. 심판들의 연봉과 직결되는 고과점수도 심판위원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 심판위원장의 보이지 않는 지시에 심판들의 판정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처럼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심판위원장도 이 총장 재임 기간엔 사무총장에게 임명권이 있었다. 심판부도 총장 직속기구였다. 이는 심판위원장이 총장 입맛에 따라 언제든 움직일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특보가 상벌위에 참여했을 때 현직 심판들이 발끈한 것도 과거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중견심판 B 씨는 다음과 같이 우려를 나타냈다.
“심판은 전부 계약직이다. 고과점수가 나쁘면 다음 해 심판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특히나 상벌위에서 중대한 징계를 받으면 고과점수가 떨어져 KBO의 재계약 대상자에서 탈락한다. 상벌위에 이 특보가 참여했을 때 심판들이 긴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특보에게 잘못 보였다간 재계약이 요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심판이 ‘이 특보 쪽으로 줄이라도 서야 하는 게 아니냐’며 푸념을 늘어놓은 것도 같은 이유다.”
야구계엔 이 특보가 전직 심판 K, H 씨와 자주 만난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일부 심판은 “이 특보가 H 씨를 심판위원장에 앉히려 한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조종규 심판위원장이 취임하며 심판계의 파벌이 와해되고, ‘특정 팀에게 유리한 판정을 한다’는 소문이 사라진 만큼 심판위원장의 교체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영구 전 총재는 5월 3일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구속되며 KBO 총재직에서 물러났다. ‘교육자’ 출신의 유 총재였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학교 돈을 빼돌린 혐의로 야구계를 떠났다. 유 전 총재가 낙마했을 때 많은 야구인은 이상국 총재 특보도 사퇴하리라 예상했다.
실제로 유 전 총재가 직접 임명한 데다, 특보가 모셔야 할 총재가 사라진 마당에 이 특보가 굳이 KBO에 남을 이유는 없었다. 더군다나 광주시와 KIA가 새 구장 건설에 합의한 상태였기에 이 특보로선 더는 진행할 업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특보는 물러나지 않았다. 이 특보는 앞으로의 거취를 묻는 <일요신문>의 질문에 “나는 특보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새 총재가 취임하면 언제든 자리에서 물러날 용의가 있다”라고 했다. 그러나 “전임 총재가 지시한 광주 새 구장 건설을 끝까지 매듭짓는 것이 내 임무”라고 말해 현재로선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이 특보는 자신을 둘러싼 세간의 의혹에 대해서도 “광주 새 구장 건설을 제외한 어떠한 일에도 관여하지 않고 있다. 왜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지 모르겠다”라며 불쾌해 했다.
KBO 관계자는 “새 총재 선임이 7월을 넘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이 특보의 활동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몇몇 구단 사장은 “늦어도 7월까진 새 총재를 선임하겠다”며 물색 작업에 들어갔다. 항간엔 구단주들이 돌아가며 총재를 맡는 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구단 사장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단주들이 바쁜 일정을 이유로 고사를 거듭하며 새 총재 인선에 난항을 겪고 있다.
모 구단 사장은 “이 특보의 거취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좋다”면서도 “새 총재가 취임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특보의 사퇴를 요구하는 야구인들은 “그나마 프로야구선수협이 유일한 견제세력이었는데, 지금은 활동 자체가 미미하다”며 “선수협은 이럴 때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선수협 역시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권시형 사무총장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권 총장은 사건이 터진 후 선수협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법원이 권 총장의 사퇴를 바라지 않는 통에 다시 선수협에 복귀해 총장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선수협은 “권 총장의 검찰 수사와는 관계없이 이 특보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계속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잠실에 뜨던 ‘달’ 과연 어디로…
▲ 두산 김경문 감독의 전격 사퇴 배경에는 성적 부진 외에도 임태훈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제공=두산베어스 |
두산 김경문 감독이 전격 사퇴했다. 6월 13일 두산은 보도자료를 통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김 감독이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며 “김광수 수석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김 감독의 사퇴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5월 초 구단에 사퇴 의사를 밝혔고, 이후로도 사퇴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되풀이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8년째 두산을 맡았던 김 감독이 시즌 중 자진사퇴라는 강수를 빼든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성적부진이다. 하지만, 김 감독을 잘 아는 이들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바로 임태훈 사건이다.
5월 7일 고 송지선 아나운서가 자신의 트위터에 자살을 암시하는 글과 미니홈피에 임태훈과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글을 게재하며 두산은 큰 충격에 빠졌다. 급기야 송 아나운서가 자살하면서 두산과 임태훈은 야구팬들로부터 극도의 비난에 시달렸다. 임태훈이 2군으로 내려가며 사태는 진전되는 듯했으나, 두산은 2위에서 7위까지 떨어지는 등 팀 전력 약화에 시달렸다.
김 감독은 고 송 아나운서에 대한 도의적 책임과 임태훈의 거취를 두고 매우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두산은 임태훈에게 “4주 기초군사교육을 받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임태훈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임태훈의 향후 일정은 미궁에 빠졌다.
김 감독의 사퇴 발표가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았지만, 야구계는 “어느 팀에서 김 감독을 영입하려 준비 중”이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잠실구장에 뜨던 ‘달’이 어느 구장에서 다시 뜰지 야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