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아시안드림컵 박지성 자선경기에 참석하기 위해 무릎 연골 수술 10일 만에 베트남을 찾은 정대세. 전반 3분을 뛰었을 뿐이지만 3시간만큼이나 값진 시간이었다. |
“지성 형을 왜 좋아하냐구요? 같은 선수가 봐도 멋있는 사람이에요. 독일에서 뛰면서 지성 형이 얼마나 힘들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적응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됐어요. 아시아 선수 중 가장 높은 리그에서 최고의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전 지성 형을 더 좋아하고 더 많이 닮고 싶습니다.”
이쯤 되면 가히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정대세의 말을 통해 느낀 박지성에 대한 관심은 “평생 모시고 살고 싶다”는 대목에서 정점을 찍는다.
“제가 휴가 기간인데다 무릎 수술을 받는 바람에 자선 경기에서 제대로 뛸 수가 없어요. 그러나 지성 형이 처음으로 개최하는 뜻깊은 무대를 함께하고 싶어서 힘들게 베트남까지 왔습니다. 만약 제가 자선경기를 개최한다면, 누구보다 지성 형을 제일 먼저 초청하고 싶어요. 그리고 지성 형이 개최하는 자선경기에는 매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싶습니다.”
3~4년 후에는 현역 은퇴할 예정이라고 밝힌 박지성이기 때문에 정대세가 자선경기를 열려면 3년 안에 이뤄져야 선수 박지성을 초청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정대세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다. “지성 형이라면 은퇴 이후에도 부르고 싶어요. 와주시기만 한다면요(웃음).”
유럽 축구를 좋아하는 정대세에게 메시, 루니, 박지성 중에서 닮고 싶은 선수 한 명을 꼽아달라고 요구했다.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정대세는 ‘박지성’을 외친다.
“메시나 루니도 물론 훌륭한 선수죠. 그러나 그들은 시스템이 잘 갖춰진 축구 환경에서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지성 형은 어떤가요? 열악한 조건 속에서 축구를 배웠고, 남다른 노력 끝에 유럽 무대에 진출했어요. 유럽 축구에선 무명이나 다름없는 선수였지만, 그는 맨유에서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유럽에서 인정을 받는 선수가 됐습니다. 저도 축구를 시작하고 이름을 알리고 유럽으로 진출하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었잖아요. 지성 형과 동질감 같은 걸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독일 보훔에 입단한 정대세는 데뷔 첫해 10골을 몰아치며 팀 내 최다 득점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월드컵 이후부터 좋지 않았던 오른 무릎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 JS 프렌즈로 함께 뛴 미우라 가즈요시와 정대세. |
수술 판정을 받은 정대세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무엇보다 박지성 자선경기에서 뛸 수 없다는 사실이 그의 고민을 깊게 했다.
“상태만 괜찮다면 자선경기 마치고 수술을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담당 의사가 다음 시즌을 위해선 하루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얘기했어요. 어쩔 수 없이 10일 전에 수술을 했고, 지금은 걷는 정도만 가능한 상황이에요. 다른 약속이었다면 이렇게 무리해서 베트남으로 오지 않았을 겁니다. 지성 형이기 때문에 온 거예요. 경기 출전은 어려울 것 같지만 벤치에 앉아서 열심히 응원이라도 하려고요.”
그런데 정대세는 선발 출전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전반전 3분 정도 뛰다가 정조국과 교체돼 나왔다.
독일 생활의 어려움을 묻자, 정대세의 입에서 재미난 대답이 튀어 나온다.
“독일에는 비데가 없더라고요. 일본은 어딜 가나 비데가 있는데, 그게 설치돼 있지 않으니까 아주 안 좋았어요. 그래서 아는 분께 부탁해서 집에 비데를 따로 설치했습니다.”
땅값, 집값 비싸기로 소문난 일본에서 평수 작은 집 문화에 익숙해 있던 정대세는 현재 살고 있는 집이 145㎡(약 43평)의 넓은 맨션이라며 자랑이 한가득이다.
“한 달에 1300유로 정도(약 200만 원)의 집값을 내는데, 집이 크고 좋으니까 돈이 아깝지가 않더라고요. 그런데 독일은 주말에 쉬는 문화가 철저해서 금요일에 시장을 보지 않으면 토, 일요일 아무 것도 못 먹고 굶기 십상이에요. 식당조차 문을 열지 않거든요.”
▲ 정대세는 무릎 재활 중이지만 자선경기에 참여해 박지성과의 ‘의리’를 보여줬다. 연합뉴스 |
“독일에서 뛰는 외국 선수들은 독일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해요. 언어도 어렵고, 독일을 떠날 경우 사용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전 하루하루 바보 같은 기분을 느끼며 사는 게 힘들었어요. 선수들과 친해지려면 언어 소통이 필수였고, 그러기 위해선 독일어 공부를 제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인 교사도 두고 혼자 있을 땐 단어도 외우고, 그렇게 독일어에 빠져 3주 정도 지나니까 조금씩 귀도 트이고 입도 열리더라고요. 지금은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은 다 돼요. 선수들도 제가 독일어를 하기 시작하니까 더 좋아하더라고요.”
사람 사귀길 좋아하는 정대세한테 독일어가 가능해진 부분은 날개를 단 셈이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시즌 막판, 경기를 뛰지 못했고 1부리그 승격을 간절히 소원했던 그한테 마지막 경기는 아픔으로 남게 됐다.
“분데스리가 16위 묀헨글라트바흐와 2부리그 3위였던 보훔이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무승부로 끝나며 결국 2부에 잔류하게 됐어요. 제가 들어가서 한 골만 성공시켰더라면 1부로 올라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정말 아쉬워요. 1부로 올라가면 경기를 보는 사람들도 많고,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고,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볼 수 있잖아요. 미련이 많이 남았던 경기였지만, 어차피 지난 일이고, 이젠 다시 시작해야 되겠죠.”
베트남에서 오랜만에 조우한 이청용과 박주영에 대한 얘기도 꺼냈다. 특히 프리미어리그 볼턴에서 활약 중인 이청용에 대해선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거칠고 몸싸움이 심한 무대에서 뛰면서도 밖에서 보니까 너무 순하고 겸손해서 깜짝 놀랐어요. 프리미어리그 선수라 쉽게 말 붙이기도 힘들었지만, 짧은 시간동안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 옆에 JYJ가 앉는 바람에 박주영, 이청용한테 가 있던 시선이 그들한테로 옮겨졌어요. 일본에서 동방신기는 거의 신적인 존재예요. 그런 가수가 베트남에서, 지성 형 자선경기에 함께한다는 게 너무 신기했고 놀라웠습니다.”
정대세의 꿈은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는 것이다. 보훔 입단 전 블랙번 로버스로부터 입단 테스트 제의를 밟고 잠시 블랙번 선수들과 훈련을 해본 후 더더욱 프리미어리그 진출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지성 형과 같이 맨유에서 뛸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블랙번같이 중위권 팀에 들어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올라가고 싶어요. 그 시기가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봐요. 우선 브라질월드컵 예선을 잘 치른 후 지난 남아공월드컵 같은 시련을 되풀이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정대세에게 외국 생활하면서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결혼이라고 대답을 한다. 그래서 언제쯤 그게 가능할지에 대해 묻자, 쑥스러운 표정으로 “1년 안에는 이뤄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여자친구 있나 봐요?” “하하, 그건 노코멘트입니다.”
베트남 호치민=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