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불법적 계약 인정 못한다”, 시공단 “사업비 대여 중단할 것”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 시공단인 현대건설컨소시엄(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은 최근 일반분양 지연으로 인한 금융비용 부담 등을 근거로 조합에 7000억 원 규모의 사업제경비(이주비 등) 대여 중단을 통보했다.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일반분양분에 대한 매각 수익을 통해 공사비 등을 일정 부분 충당한다. 그런데 시행단과 전임 조합장이 체결한 계약 내용을 현 조합이 인정하지 않으면서 일반분양이 미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조합이 계약 내용을 인정하고 일반분양을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시공단 핵심 관계자는 “사업비는 원래 7000억 원을 책정한 뒤 분양을 통해 갚아나가는 구조”라며 “계약과 달리 착공 이후 22개월째 분양이 미뤄지면서 올해 사업비가 소진된다고 지난 5월부터 고지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조합에서는 2020년에 전임 조합장과 체결한 계약서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2016년 계약서대로 하면 착공을 중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그러면서 공사를 멈추면 안 된다는 조합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조합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해당 계약은 조합원 총회를 통해 의결을 거치지 않은 ‘불법계약’이며, 사업비 대여가 중단될 경우 조합이 파산 상태에 이르고 조합원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합은 지난 1일 재건축 사업 시행 주관사인 현대건설 사옥 앞에서 시위를 진행했다. 이들은 “불법계약 강요하는 현대건설 아웃”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2시간 동안 시공단을 규탄했다. 또 국토교통부·서울시·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국민권익위원회 등 당국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조합은 전임 조합장과 체결한 ‘공사비 증액’ 계약의 유효성을 부정하고 있다. 조합은 지난해 정부의 분양가상한제 시행과 맞물려 내홍을 겪었다. 정부는 고분양가 논란 및 주택가격 안정화를 고려해 지난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둔촌주공은 당초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 심사를 거쳐 선분양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심사 결과 일반분양가가 3.3㎡당 2978만 원으로 최종 확정되면서 문제가 야기됐다. 일반분양가가 낮을수록 재건축 사업비에 대한 조합원 분담금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해 후분양을 할 경우 일반분양가를 3.3㎡당 최대 3516만 원까지 매길 수 있다는 용역 결과가 나오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이 과정에서 전임 조합장을 비롯한 집행부는 HUG 안을 수용하고 강동구청에 입주자모집공고 승인을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조합원들은 크게 반발하면서 지난해 6월 25일 오후 2시에 집행부 해임총회 개최를 발의했다. 그런데 전임 조합장은 발의 직전인 오전 10시에 조합 인감으로 시행단과 공사(변경)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는 당초 2조 6708억 원이었던 공사비를 3조 2000억 원대로 5200억 원가량 늘리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에 따라 조합원 1인당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1억 원가량 늘어났다. 이를 두고 현 조합은 “총회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한다. 반면 시공단은 “이미 2019년 12월 임시총회에서 승인받은 내용”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시공단이 이야기하는 2019년 12월 임시총회에 대해서도 조합은 ‘조건부 승인’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조건은 △HUG 분양가 심사에서 일반분양가를 평당 3550만 원 이상 책정하는 것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을 반영해 계약을 체결하는 것 등이었다. 그중 HUG 분양가 심사는 앞서 밝힌 대로 상한이 3516만 원이었기에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또 한국감정원의 공사비 검증은 지난해 4월에야 이뤄졌으며, 결과적으로 2900억 원 감액 권고를 받았다. 즉 ‘한국감정원 검증→총회 결과 발표→공사계약 체결’ 순서가 지켜지지 않았고, 거꾸로 계약이 먼저 체결했다는 것이다. 앞의 시공단 관계자는 “공사비 증액은 전임 집행부와 5개월간 소위원회와 대의원회를 거쳐서 적법하게 이뤄졌다”며 “감정원 검증은 권고사항에 불과하고, 공사비 증액과 별개로 총회에서 결과를 보고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계약서 자체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6년 계약서에는 조합과 시공단, 양측이 도장을 찍은 뒤 조합 집행부가 연대보증인으로 참여했는데, 지난해 체결된 계약서에는 연대보증인란이 전임 조합장을 제외하면 모두 비어 있다는 것이다. 또 전임 조합장 부분 역시 개인 명의가 아닌 조합 인감으로 찍혀 있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조합 관계자는 “얼마나 급했으면 날짜조차도 이전 양식을 가져다가 수기로 고쳤다”며 “해임 발의가 될 것을 알고 도장을 무단 반출해 처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시공단 입장은 착공 전에는 연대보증인이 필요하지만, 그 이후에는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조합에서는 공사비 증액이 품질 고급화 목적인 것도 아니라며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조합의 요구사항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공사비만 늘려 폭리를 취하려 한다는 것이다. 조합은 품질 확인을 위해 시공단에 공사내역서와 공정표 등의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시공단에서는 자재를 바꾸고 싶으면 갑자기 1000억 원을 더 내라는 식”이라며 “발주자가 기존 스펙을 모르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 반복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조합이 제출했다고 하는 공정표는 A3 크기의 간이공정표”라며 “3조 3000억 원짜리 공사를 이렇게 한다는 것은 코미디”라고 강조했다.
반면 시공단은 공사내역서를 제출할 의무가 없으며, 조합의 잦은 마감재 변경·감리단의 자재 승인 거부·전임 조합장 해임 등으로 인해 공사에 차질이 생긴 것이라고 주장한다. 앞의 시공단 관계자는 “당초 공사내역서를 제공한 뒤 입찰받는 ‘내역입찰’이 아니라 규모와 개요 정도만 있는 도면으로 ‘평당입찰’을 진행한 것”이라며 “외산 자재는 1년 전에는 스케줄을 잡아놔야 하기 때문에 착공 후에는 되도록 설계 변경을 하지 않고 조합원별 옵션으로만 둔다. 전임 집행부에서 승인한 마감재를 현 집행부에서 인정하지 않고 계속 바꿔달라고만 하는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이러한 사정 탓에 내년 2월로 예정됐던 일반분양도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공사비에 대한 반발뿐 아니라 아직 일반분양가도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9일 현재 양측의 협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조합은 수도권 내 다른 재건축 조합과 연대해 단체행동을 계획하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시공 품질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협상할 의사가 충분히 있다”면서도 “현재로서는 시공사의 횡포를 알리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공단 관계자는 “시공단은 착공 이후 지금까지 공사에 1조 원 이상을 투입하고 막대한 금융비용을 부담하면서도 일반분양이 이뤄지지 않아 단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며 “지금까지 조합원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계속 참았는데, 조합이 책임은 지지 않고 비방만 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성욱 기자 nmds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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