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진은 뭡니까’ 친박 내부에선 마포팀 운영자 홍 씨에게 돈을 건넨 최 씨와 박근혜 전 대표가 일면식도 없다고 관계를 일축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지난 2007년 최 씨가 회장을 맡고 있는 한 사단법인 강원지역 창립총회에 박근혜 전 대표가 참석해 최 씨에게 꽃을 건네주고 있는 모습으로, 이 법인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
이번에 검찰 수사를 받은 홍 씨는 박 전 대표 측근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원외 친박 인사다. 한 친박 의원은 “최근에도 박 전 대표와 통화를 자주 하는 것으로 안다. 박 전 대표가 웬만한 국회의원들보다 홍 씨를 믿는다는 게 정설”이라면서 “기획력과 친화력이 뛰어나다. 전국 조직 구성 및 인재 영입 등에서 일정 몫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간부 출신인 홍 씨는 지난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신한국당(한나라당 전신) 후보의 사조직이었던 일명 ‘부국팀’에 몸담으면서 정계에 뛰어들었다. 그 후 홍 씨는 2002년 2월 박 전 대표가 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만들 때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표 신뢰를 얻었다고 한다. 홍 씨는 2006년 여름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빌딩에 사무실을 내고 박 전 대표의 경선을 위한 채비에 들어갔다. ‘마포팀’이 정치권에 알려진 것도 이 무렵이다.
홍 씨가 유명세를 떨친 것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을 뜨겁게 달궜던 ‘이명박 후보 일가 주민등록초본 부정발급’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면서부터다. 당시 이명박 후보 측은 “마포팀은 박 전 대표 캠프 내에 국가정보원 같은 존재로 모든 네거티브 선거 전략을 짜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씨는 이 사건으로 2007년 12월 유죄선고(집행유예 12월)를 받았으나 2008년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은 바 있다. 또한 박 전 대표 선거캠프가 입주했던 여의도의 한 빌딩 소유주가 홍 씨 처남이 경영하고 있는 회사라는 사실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앞서의 친박 의원은 “2007년 경선에서 박 전 대표 최대 외곽 조직은 각계 인사 3600명으로 이뤄진 한강포럼이었다. 홍 씨가 산파 역할을 했다. 비록 졌지만 선거를 치르는 노하우는 입증됐기 때문에 내년 경선과 대선에서도 홍 씨는 중요한 자리를 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홍 씨는 경선이 끝난 이후에도 박 전 대표와 꾸준히 접촉하며 여러 현안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홍 씨가 ‘골수’ 친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반면 그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는 건축업체 대표 최 씨에 대해서는 다소 견해가 엇갈린다. 이는 최 씨의 지난 경력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건축업을 하던 최 씨가 처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지난 2006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 당시 일어났던 이른바 ‘황제 테니스 사건’ 때다. 당시 최 씨는 이 대통령 테니스장 사용료 2000만 원 중 일부를 대납해 시선을 끌었다. 이 때문에 최 씨는 정치권에서 친이 인사로 분류됐으나 정작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선 박 전 대표를 지지했다. 정권 출범 이후 2008년 총선에서 최 씨는 경기도의 한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했고, 비례대표 명단에 포함됐으나 국회 입성엔 실패했다. 최 씨는 총선 전 계파를 가리지 않고 여권 인사들과 폭넓게 접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최 씨가 비례대표 순번을 받는 데는 주로 친이계 인사들이 힘을 써줬다는 전언이다.
검찰이 최 씨 수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 3월 초다. 최 씨가 회사 공금을 빼돌렸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3월 말 D 사 압수수색을 실시해 최 씨 개인수첩과 법인 회계자료 등을 확보, 분석에 들어갔다. 그 결과 최 씨가 횡령한 돈 중 일부가 홍 씨에게 흘러들어간 사실을 발견했다. 최 씨와 홍 씨를 여러 차례 소환조사한 검찰은 지난 6월 23일 두 사람을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 씨는 2006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홍 씨에게 총 6억 원을 건넸다고 한다. 검찰은 홍 씨가 이 돈을 마포팀 운영비와 한강포럼 구성에 필요한 경비 등으로 썼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홍 씨도 이 돈을 2007년 경선 자금으로 썼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고 있다. 다만 최 씨로부터 그냥 받은 것이 아니라 빌렸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친박 내부에선 최 씨에 대해 “박 전 대표와는 일면식도 없다. 박 전 대표 이름을 일방적으로 팔고 다녔던 정치브로커”라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홍 씨의 경우에도 “마포팀은 공식 캠프가 아니었다. (홍 씨) 스스로 사무실을 내서 박 전 대표를 도운 것일 뿐이다. 따라서 친박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 경선에서 홍 씨가 박 전 대표 핵심 측근이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얘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최 씨가 홍 씨의 소개로 박 전 대표와 회동을 했다는 진술도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정치인의 꿈을 가지고 있던 최 씨가 박 전 대표 측근인 홍 씨에게 접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홍 씨를 통해 최 씨를 만난 것은 ‘팩트’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털어놨다.
<일요신문>이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최 씨 지인들 역시 비슷한 얘기들을 꺼냈다. 최 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한 사단법인 관계자는 “최 회장 주변 사람들이라면 (최 회장이) 박 전 대표와 만났다는 것은 알고 있는 얘기다.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까지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박 전 대표와의 친분을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 사단법인 홈페이지에 흥미로운 사진들이 올라와 있다. 여기엔 지난 2007년 5월 강릉지역 유세에 나섰던 박 전 대표가 이 법인 강원지역 창립총회에 참석해 최 회장에게 꽃을 건네주는 장면 등이 담겨져 있다. 대다수 친박 의원들이 박 전 대표와 최 씨 관계를 절대 부인했던 것과는 달리 적어도 박 전 대표가 최 씨와 안면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이번 수사가 박 전 대표를 포함한 친박을 겨냥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검찰 안팎에서도 최 씨와 홍 씨를 불구속 처리하는 수준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을 것이란 말이 확산되고 있다. 검찰이 최 씨에 대한 수사 초기 보였던 자신감을 고려하면 다소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검찰 실무진 사이에서도 “수뇌부가 지나치게 박 전 대표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 홍 씨가 경선에 깊숙이 관여한 것이 확실한데 왜 개인 비리(정치자금법 위반)로 처리하고 마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삼화저축은행 비리 수사 과정에서 박지만 회장과 신삼길 명예회장(구속)의 ‘각별한’ 사이가 드러난 이상 불법 행위가 있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박 회장에 대해 아무런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검찰로서는 차기 영순위 박 전 대표 주변을 뒤지는 게 당연히 부담스러울 것”이라면서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 정치적 중립을 훼손당했다고 억울해하는 검찰을 국민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중진 의원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보였던 검찰 행태와 비슷하다. 박 전 대표에게 점수를 따는 것과 동시에 X파일을 갖고 있다는 모종의 압박이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보탰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