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부조작 비리 가담자들이 축구계에서 영구 퇴출되자 지나친 것 아니냐는 동정의 여론이 한쪽에서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17일 열렸던 프로축구 승부조작 관련자들에 대한 상벌위원회 모습. 뉴시스 |
# 강경처벌이냐 선처냐
용서받지 못한 자. 용서받을 수 없는 자. 영화 제목이 아니다. 승부조작 사태에 연루된 모든 선수들에 대한 축구계의 표현이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처지는 아니다. 전 소속 팀(선수 자격 박탈로 구단과의 계약이 자동 해지됐기 때문)에서 연봉을 후하게 받았던 선수들과 그렇지 못했던 선수들은 사정이 크게 다르다. 전자의 경우, 그야말로 재미로 불법 행위에 가담을 했지만 후자에 해당되는 선수들은 대부분 가난한 시민 구단 소속이었고, 여기에 생계형으로 푼돈이나마 벌어보려는 욕심에 ‘해선 안 될’ 일에 가담한 경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괄적으로 똑같은 수위의 처벌을 내린 프로연맹의 결정을 놓고 여러 가지 말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불법 행위를 일절 인정하지 않고, 뿌리까지 뽑아내겠다는 축구계의 강경한 의지를 표현하는 대목이라 이번 결정을 인정할 만하지만 선수들마다 각각 사정과 정황이 다른 탓에 모두를 같은 잣대로 바라보는 건 다소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욱이 불구속 입건된 선수들과 구속된 선수들은 전혀 달랐다.
불구속 기소된 선수들은 상당수가 불법 행위에 가담했거나 그에 대한 대가로 검은돈을 받았다는 것보다는 해당 팀 동료들로부터 제안을 받았고, 돈은 받았지만 대가성 금품 수수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이렇듯 명쾌하지 못한 정황에 선수 자격 박탈 및 향후 축구 관련 직무도 할 수 없다는 프로연맹의 결정이 다소 이르지 않았느냐는 얘기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실제로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기 직전, 해당 팀 감독 및 프런트와의 마지막 면담 자리에서 모 선수는 “절대 그런 행위를 한 적이 없다. 선배로부터 승부조작 제안을 받은 건 맞다. 그러나 똑 부러지게 거절했다. 솔직히 내가 뛸지 안 뛸지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돈을 좀 쥐어 주기에 왜 주냐고 물었더니 ‘방 청소를 잘해서 준다’고 하더라. 그 돈을 받았는데, 이렇게 사태가 커질지는 몰랐다”고 억울해 했다고 한다.
물론 최종 공판이 열리고, 이번 사태와 관련된 모든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나 해당 선수의 잘잘못이 가려지겠지만 정말 그 선수의 진술이 맞다면 또 다른 논란이 빚어질 수도 있다.
A 구단 관계자는 “프로연맹이 상벌위원회를 너무 빨리 열었던 것 같다. 물론, 승부조작에 티끌만큼이라도 관여를 했다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고액 연봉자들이야 훨씬 가중한 처벌이 내려지는 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또 20대 초반의 팔팔한 인생의 미래를 무참히 꺾어버리는 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프로연맹이 모든 여지를 닫아둔 것은 아니다. 상벌위는 승부조작 1차 사건 가담 10명에 대해 “K리그 선수 자격과 관련 직무를 맡을 자격을 박탈한다. K리그 이외에 직무에도 발을 딛지 못하도록 대한축구협회에도 건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향후 재판 결과에 따라 재심 절차를 거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 가담 선수들은 지금
승부조작으로 검찰에 의해 구속 기소돼 유치장 신세를 지고 있는 선수들도 있지만 불구속 기소된 선수들도 있다. 초점은 하나로 모아진다. 모두가 불투명하고 어두운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한번 찍혀버린 낙인 탓에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대개 자택에서 칩거하며 또 다른 삶을 그려보지만 축구를 완전히 떠난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사연은 제각각이었다.
B 구단 C 선수는 연봉 3000만 원을 받았다. 그의 집안 형편은 좋지 않았다. 병들어 수년째 누워있는 아버지와 궂은 일로 생계를 꾸리는 어머니, 대학교에 다니는 동생, 힘겨워하는 가족들을 보며 죄스러운 마음에 술집 웨이터로도 나가봤지만 불과 며칠 만에 그만둬야 했다. 평생 해보지 못한 일이 제대로 맞을 턱이 없었다. 그나마도 불법 행위가 공공연히 이뤄지는 은밀한 술집이었다. 불과 몇 백만 원에 바뀌어버린 인생. 평생 주홍글씨를 새긴 채 살아가야 한다.
C 선수는 해외 리그로 눈을 돌려 보지만 대한축구협회에서도 구제받지 못하면 이적동의서 자체를 발부받을 수 없다. 솔직히 K리그는 꿈도 꾸지 않는다. 재심만이 유일하게 희망을 걸 수 있는 길이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D 구단 E 선수도 비슷한 케이스. 소속 팀에서 많은 돈을 받은 적이 없다. 어릴 적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자랐다. E 선수의 대학교 스승은 “검찰 수사 소식을 접한 뒤 안타까워서 E 선수 어머니와 전화 통화조차 할 수 없었다. 대학 시절, 아주 좋은 선수로 꽤 이름을 날렸던 친구였다. 왜 그런 일에 연루됐는지,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 축구 선배로서 미안하기만 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작년까지 F 구단에서 뛴 G 선수는 현재까지 검찰 수사를 받진 않았어도 승부조작 혐의점이 있어 F 구단으로부터 방출된 것으로 알려진다. 물론 G선수는 강하게 부정했다. 언론에는 “할 말이 없다”고 하지만 주변에는 “정말 억울하다. 난 그런 불법 행위를 한 적이 없다”며 괴로움을 자주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창원지검에서 조사를 받았다.
H 구단 I 선수는 법적으로는 미혼이지만 자식을 둔 아버지. 대기업 신입 사원 수준의 연봉을 받았지만 잠시 검은돈의 유혹을 받고,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가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
이와 함께 검찰에 직접 구속 기소된 H 선수는 병상에 누워 있는 부친조차 새아버지였고, 어린 아들까지 뒀다. 당연히 연봉이 적었다. 그리고 수백여 만 원을 승부조작 대가로 받았다. 구단 감독에겐 “우리를 믿어 달라”고 했다. 이렇듯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던 그는 검찰에 끌려가자마자 “그렇게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생계형 승부조작이었다. 배신감을 느낀 해당 구단 감독은 “도와주고 싶어도 도울 수 없었다. 말하는 지금까지 속에 있는 게 나오는 느낌”이라며 불쾌해 했다.
#딜레마에 빠진 구단들
그렇다고 검찰 수사를 직접 받았거나 ‘구속’ 혹은 ‘불구속’ 꼬리표를 달고 있는 선수들만이 불안한 인생을 사는 건 아니다.
각 구단들은 여전히 비상시국이다. 당장 수사 대상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선수들을 보유한 구단 외에도 아직 직접적인 정황이나 혐의점이 없는 팀들도 하루하루가 불안하기만 하다.
도무지 사태 추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탓이다. 창원지검이 김동현(상주 상무)과 고 정종관(전 전북)이 연루된 올해 4월 컵대회 승부조작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발표를 했을 때에도 ‘이쯤이면 덮어지겠지’하던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작년 K리그와 컵대회에서 벌어진 승부조작 수사가 계속되고 전남 출신 선수들이 대거 끌려들어가며 이제는 ‘다음 타깃이 누가 될까’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FA컵에 관여됐다는 소문도 있다. 최근 체포됐던 부산, 상주 소속 선수들은 지난 시즌까지 전남에서 활약한 바 있다.
축구계에는 온통 흉흉한 소문과 루머들이 난무하고 있다. 거의 전 구단이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는 말부터 이미 수사가 종료된 것으로 비쳐진 대전, 광주 등도 또 다시 수사망에 오를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합법을 가장한 불법 행위가 나왔던 스포츠토토 프로토 외에 중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 기반을 둔 해외 불법 스포츠베팅에 대한 수사도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수사가 시작됐다는 소문도 있어 하루하루가 초조하기만 하다.
프로연맹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이왕 터진 것 한꺼번에 사건을 종결지어야 한다”며 착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실제로 프로연맹을 비롯한 축구계가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한 달에 몇 명꼴로 계속 검찰 수사를 받고, 구속 여부가 결정되고 그때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좋지 못한 여론이 조성되는 것이다.
모 구단 관계자는 “이렇게 계속 승부조작 혐의자들이 나오면 축구 시장이 거의 붕괴될 수 있다. 앞으로 어느 곳에서 스폰서를 하겠다고 나서겠느냐. 한국 축구가 동남아 축구나 프로레슬링 등 이미 무너진 스포츠처럼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석고대죄하는 자세로 K리그가 ‘쇼가 아니다’라는 걸 입증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선수들에게도 비상이 떨어졌다. 고 정종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태로 인해 자진 출두 및 소환 방식이 아니라 자택 혹은 선수단 숙소 앞에서 이뤄지는 긴급 체포 방식이 나오는 상황 속에 편하게 운동에 전념할 형편이 못 된다.
누군가 검찰에 잡혀들어 가면 당연히 다음날 팀 훈련 분위기는 바닥까지 가라앉는다. 경기력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주말마다 리그는 계속 이어지는데, 선수들은 하나 둘씩 빠지는 흉흉한 국면이다.
친한 지인들이 “너는 승부조작 같은 일을 하지 않지?”라며 툭 던지는 한마디에도 이상한 소문이 나온다. 한 선수는 “별 의미 없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하는 동료들의 말이 큰 상처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동안 건강한 땀을 그라운드에서 흘렸던 게 외부에는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비쳐지고 있어 서글프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단 감독도 “루머가 한 번 돌면 거의 평생 이룬 걸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 만약 어떤 브로커가 특정 선수에 접근했을 때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브로커가 다른 대상 선수에게 접근해 동료(특정 선수)가 이미 가담하기로 했다고 말해버리면 루머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항간에 돌고 있는 프로팀 코칭스태프의 가담설도 여기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며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음을 경계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그간 루머로만 비쳐졌던 것들이 하나둘씩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대체 어디까지 검은 커넥션이 마수를 뻗치고 있을까. 지금도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새로운 선수 명단이 떠돌고 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뭐, P가 컴백한다고?
모 아마추어 팀 감독은 구단 고위층이 되기 위해 정치적인 입김을 내뿜고 다닌다는 얘기가 나온다. 알아본 결과, 상황은 심각했다. 이미 구단 고위층이 된 이후의 프런트 진영의 인적 구성과 변화 방안까지 벌써 마련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여기에 자신의 포지션이 확실해지면 평소 자신과 절친했던 인물들을 끌어들일 것이라는 말까지 있다. 일종의 코드 인사다.
축구 팬들도 여기서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정치적인 주장만을 펼치는 소위, 염치없는 서포터스도 일부 존재한다. 구단 사장실에 무단으로 침입해 아무런 대안이 없고, 뚜렷하지 못한 사안들을 잔뜩 들고 와서는 큰 소리를 뻥뻥 친다고 한다. 이 구단 관계자는 “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서글픈 건 선뜻 책임을 지겠다는 축구인들이 극히 적다는 점이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자리 보존이 우선시 됐다. 이뿐 아니라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 자신과 절친했다는 있을 수 없는 이유를 대며 소리 소문 없이 슬쩍 구단 중책을 맡긴다. K리그 지도자 출신 P가 대표적인 예였다. “과거 비리의 온상이 어떻게 그토록 떳떳한 표정으로 어떻게 신성한 그라운드로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게 해당 구단 관계자들과 축구 종사자들의 솔직한 속내.
확실하게 문제를 저질렀고, 축구계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다면 분명히 자숙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라는 인물이 되돌아오는 건 쇄신이 아닌,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