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인으로 한 길만 걸어왔다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만수는 ‘레전드 올스타’ 최다득표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윤성호 기자 cybercyc1@ilyo.co.kr |
#올스타
“처음에 인터넷에서만 투표를 하니까 (양)준혁이랑 1000표 이상 차이가 나더라. 그 간격이 좁혀지질 않았다.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구단 직원이 내가 1등으로 뽑혔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래서 난 포수 부문에서 1등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전체 1등이라고 하더라. 농담하지 말라고 뭐라고 했을 정도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터넷뿐만 아니라 언론, 야구인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했고, 모든 득표를 합산한 결과, 내가 1등이 됐다는 거다. 솔직히 너무 너무 기뻤다. 야구하면서 수많은 산을 오르고 내려가면서 많은 경험을 했지만, 이번 수상이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 경험 다음으로 값진 선물인 것 같다.”
이 감독은 올스타 레전드 최다득표자로 뽑힌 직후 아끼는 후배 양준혁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고 한다. 인터넷상에선 독보적인 1위가 양준혁이었기 때문에 살짝 미안한 마음이 생겼는데, 그 마음을 전하자, 양준혁이 오히려 더 많은 축하를 보내며 ‘선배님이 돼서 다행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단다. 은퇴한지 얼마 안 된 자신보다는 진정한 ‘레전드’라고 불릴 수 있는 선배들 중에서 한 사람이 나오길 바랐다는 것.
이 감독은 “이번 수상을 통해 내가 야구인으로 한 길만 걸어왔다는 사실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진한 수상 여운을 내보였다.
▲ 삼성 라이온즈 시절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
1997년 은퇴한 이 감독은 미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마친 뒤 2007년 SK 코치로 입단한다. 그 해 ‘이만수’란 이름이 다시 한 번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팬티 퍼포먼스다.
“10년 만에 다시 한국 야구로 돌아왔는데, 시설 좋기로 유명한 문학경기장의 평균 관중이 4000~5000명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놀라왔다. 어떻게 3만 명이 들어오는 경기장의 관중 수가 몇 천 명밖에 안 될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내가 돌발 제안을 했다. 만약 10게임 안에 이 경기장이 관중들로 가득 찬다면, 즉 만원 관중이 된다면 내가 팬티만 입고 뛰겠다고 장난스럽게 던진 것이다. 솔직히 만원 관중이 될 것이라고는 기대조차 안 했다. 2년 동안 매진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9게임 만에 문학경기장이 만원 관중을 기록했다. 모두들 이만수의 팬티 퍼포먼스를 보겠다고 난리가 아니었다.”
KIA 타이거즈와의 2회말 경기가 진행될 때 전광판에 ‘만원 관중’이란 글자가 떴다. 그때부터 이 감독의 눈에는 게임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순간 ‘이럴 줄 알았으면 몸 관리라도 제대로 해둘걸’ 하는 후회도 들었단다. 결국 이 감독은 자신을 위해 팬티만 입고 나타난 22명의 팬들과 함께 5회 클리닝타임 때 팬티 퍼포먼스를 벌였다.
“처음엔 얼굴을 못 들 정도로 부끄럽고 창피스러웠는데, 경기장을 돌면서,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삼성 은퇴 후 한국의 경기장에서 처음으로 느껴본 감사함이었다. 팬들에 대한.”
#레전드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올스타 베스트 10 선정에서 투수는 선동열 전 삼성 감독, 1루수 장종훈 한화 코치, 2루수 박정태 롯데 2군 감독, 유격수 김재박 전 LG 감독, 외야수 양준혁, 지명타자 부문에서는 김기태 LG 2군 감독이 영광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이만수 감독이 뽑은 올스타 레전드는 누굴까.
“일단 투수는 김시진 감독이다. 내가 김시진 감독을 안 뽑으면 누가 뽑겠나(웃음). 삼성에서 최고의 배터리를 이루며 완벽한 호흡을 자랑했던 친구다. 당시 김시진의 슬라이더는 완전 면도날이었다. 우린 사인을 주고받지 않았다. 김시진의 투구 폼만 봐도 무슨 공을 던지는지 잘 알 정도였으니까. 김시진과는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삼성까지 줄곧 한 팀에서 호흡을 맞췄다. 나한테는 김시진 당시 투수가 최고의 투수였다.”
야구를 늦게 시작한 덕분에 중학교를 4년이나 다닌 이만수 감독은 고등학교 진학 후 동갑이면서 1년 선배인 김시진 감독에게 ‘야, 자’라고 말했다가 선배들한테 엄청난 기합을 받았다고 토로한다.
“그때부터 김시진을 깍듯하게 모시고 살았다. 대학 때까지 그 사람의 가방을 들고 다니며 나름 알아서 기었다. 대학 졸업할 때쯤 되니까 김시진이 나한테 이렇게 말하더라. ‘졸업도 하고 그러니까 이젠 말 편하게 놓자’라고. 솔직히 한 대 패고 싶은 기분이었다(웃음).”
이 감독은 1루수 레전드로는 김성한을, 자신을 제외한 포수 부문에선 김경문 전 두산 감독을, 그리고 2루수에는 강기웅, 3루수 김용희, 유격수 류중일, 외야수 이종도, 지명타자 부문은 김봉연을 꼽았다.
“김봉연 선배님과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 내 큰동서하고 김봉연 선배 큰동서하고 친구 사이다. 김봉연 선배 큰동서가 김기수 세계복싱챔피언 아닌가. 그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4명이서 자주 어울렸다. 선수 시절, 나랑 최고의 라이벌을 이뤘지만, 그 분이 존재했기에 이만수의 야구도 진화했다고 믿는다. 원년 프로야구 개막전 만루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인 이종도 선배도 잊지 못할 분이다. 만약 그 선배가 그때 역전 홈런을 안 쳤더라면 지금의 프로야구도 없었을 것이다. 그 홈런 덕분에 프로야구의 인기가 붐업을 이뤘다. 당시 이종도 선배한테 홈런을 맞았던 이선희 선배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을 정도다.”
▲ 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치이던 2002년 국내 프로야구 올스타전에 깜짝 등장한 모습. |
이만수는 입으로 야구를 했다? 어느 정도는 그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오죽했으면 MBC 청룡 감독이었던 백인천 감독이 “만수 입 좀 닥치게 하라”며 어필을 했을까.
“그래서 내가 현역 선수들 중 가장 많은 빈볼을 맞았다. 홈런 세리머니도 자극적으로 했고, 입으로 쉴 새 없이 말을 하면서 경기를 하니까 상대팀 입장에선 완전 밉상이었던 거다. 영호남 라이벌팀인 해태와 삼성전은 아주 치열했다. 광주로 원정 경기를 가면, 해태 응원석에서 많은 사람들이 ‘만수 바보’라고 놀리기도 했었다.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담배 필터를 귀에 틀어막고 타석에 들어선 적도 있다. 그때는 해태 팬들이 너무 두려웠다. 나한테 바보라고 놀린 사람은 그들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슬럼프에 빠질 정도로 ‘만수 바보’란 구호가 듣기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또한 관심의 표현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은퇴식
이 감독은 선수 시절의 화려한 프로필과는 달리 그 흔한 은퇴식조차 치르지 못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야 했다. 당연히 은퇴식에 대한 회한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현역 시절, 마흔 살까지 야구하는데 집착을 했던 까닭은 ‘노장’이란 말이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당시 야구 선수들은 서른 살만 넘으면 ‘노장’으로 분류됐다. 체력과 실력에 상관없이 서른 살을 넘어서면 서서히 정리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난 후배들을 위해, 마흔 돼서도 여전히 선수로 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연봉이 50%가 삭감됐지만, 그래도 버텼는데, 결국 쫓기듯이 방출되다보니 은퇴식은 그림의 떡이었다.”
#이대호&류현진
전성기 시절의 이만수와 가장 흡사한 선수가 누구일까. 이 감독은 주저 없이 롯데 이대호를 꼽는다.
“대호는 체격이 큰 데 비해 몸이 아주 유연하다. 타격폼을 보면 타고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내가 선수였을 때는 곰처럼 무식하게 힘의 야구를 하려 한 반면, 대호는 실력과 기술을 겸비한 탁월한 방망이 감각을 선보인다.”
전성기 시절의 이만수가 ‘괴물’ 류현진을 상대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현진이는 겉모습만 순진해 보이지, 그 속은 능구렁이 몇 마리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보통이 넘는 선수다. 마운드에서 그 나이의 어린 선수가 그토록 완벽하게 완급조절을 하는 걸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내가 선수로 맞붙는다고 해도, 현진이를 이길 순 없었을 것이다.”
이 감독은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지도자에 대한 그림을 그려왔다고 한다. 자신이 어떤 꿈을 갖고 지도자 생활을 해야 할지에 대한 그림이었다.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지만,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며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는다.
열세 살, 야구를 시작하면서 세 가지의 꿈을 키웠다는 이 감독. 그 마지막 꿈이 지도자였고, 현재 2군 감독이지만, 여전히 그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그가 자신의 그림을 완성할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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