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미녀스파이와 한류스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KBS 드라마 <스파이 명월>의 포스터페이퍼. 작은 사진은 북한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수려한, 게보린, 초코파이, 신라면, 참이슬 상품 이미지. |
평양 모란봉 구역에 거주하는 김복순 주부.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 남한의 ‘수려한’ 화장품으로 피부를 가꾼다. ‘맥심 커피믹스’로 탄 모닝커피 한 잔으로 일과를 시작한 김 씨는 무역일꾼으로 일하는 남편을 위해 ‘쇠고기 다시다’로 맛을 낸 된장국을 아침으로 준비했다. 삼성에서 생산한 TV와 DVD 플레이어를 통해 그가 제일 좋아하는 <올인>을 시청한 김 씨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간식으로 준비한 ‘초코파이’를 건넸다. 아이들은 ‘초코파이’를 게눈감추듯 먹어치운다. 저녁식사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참이슬’로 반주를 곁들였다.
이러한 김 씨의 하루는 단지 픽션에 불과한 것일까. 과장이 되긴 했지만 딱히 거짓도 아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중국을 경유해 들어간 한국 상품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미 커질 대로 커진 통제 불능 장마당에는 갖가지 한국 상품들이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북한 내부의 현지 소식통과 접선하고 있는 대북매체 <열린북한방송>은 최근 북한 현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남한 소주 ‘참이슬’에 대해 상세히 보도한 바 있다. 하이트진로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참이슬’은 국내 소주 점유율 1위는 물론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60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효자상품이다.
북한주민들도 예외는 아니다. 북-중 접경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북한 온성군의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남한의 ‘참이슬’이 중국을 통해 장마당으로 유입되면서 주민들 사이에서 호평을 얻고 있다고 한다.
참이슬은 현재 북한 현지에서 북한 돈 3000원(한국 돈 1000원)가량에 거래되고 있다. 북한 가정집에서 정제해 판매하는 북한소주에 비해 값이 10배나 비싸지만 겉보기에도 깔끔하면서 독특한 향을 내뿜는 ‘참이슬’이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소식통은 “아직 참이슬이 북한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접경지역 판매상 상당수가 참이슬을 수십 병씩 갖고 있다”고 전했다.
‘참이슬’ 외에도 북한 현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남한 상품은 꽤나 많다. 남한에서는 안전성 논란이 있었던 삼진제약의 해열진통제 ‘게보린’이 북한 현지에서는 명약 중의 명약으로 통한다고 한다. 북한의 병원과 주민들은 예전부터 뛰어난 효능은 물론 설명서까지 한국어로 첨부되어 있는 남한 의약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다만 예전에는 남한의 의약품 지원이 있어 여기서 빼돌린 일부 제품이 북한 장마당으로 유통되면서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물건을 살 수 있었으나, 최근에는 남한의 지원이 끊기면서 대부분 중국을 통해 비싼 값으로 밀매되고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상인들이 북한 무역일꾼들에게 게보린을 넘기는 가격은 한 알에 북한 돈 약 950원(한국 돈 310원)이라고 한다. 북한 현지에서 주민들이 게보린을 살 경우 이보다 더 비쌀 수밖에 없다.
가공식품 중에서는 단연 ‘오리온 초코파이’와 ‘농심 신라면’이 스테디셀러 제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히트작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는 북한 인민군 장교로 분한 송강호가 남한병사 이병헌이 건넨 초코파이를 먹고는 단박에 반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속 픽션이었던 인민군 장교의 초코파이 사랑이 실제 북한 주민들 사이로 퍼진 지 오래다. 개성공단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남한 고용주가 제공하는 간식 중 가장 인기 있는 간식이 초코파이다.
중국을 통해 들어간 초코파이는 현재 북한에서 북한 돈 700원(한국 돈 240원)가량에 거래되고 있다. 쌀 1㎏ 값이 북한 돈 2000원인 것을 가정하면 고가의 기호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대표 라면인 ‘농심 신라면’도 평양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남한 제품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 유통되고 있는 신라면 대부분은 중국법인인 농심 현지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다. 때문에 평양 국영 상점에서도 신라면을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장마당에서는 남한에서 생산된 오리지널 신라면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생산한 중국제 라면도 북한에 유통되고 있지만 북한주민들은 비싼 값임에도 불구하고 남한제품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외에도 남한의 기호식품 중에서는 ‘맥심 커피믹스’와 ‘CJ 쇠고기 다시다’ 등이 인기리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한 제품들은 실질적인 경제활동과 살림을 도맡고 있는 북한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최근 북한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 남한의 화장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제품은 LG생활건강이 생산하고 있는 ‘수려한’ 브랜드다. 다른 수입품들과 비교해 품질이 우수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는 후문이다. 샴푸제품 중에서는 애경산업 ‘하나로’ 시리즈와 ‘꽃을 든 남자’ 제품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여성들이 선호하는 가전제품도 마찬가지다.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는 일제 제품의 등장으로 그 인기가 약간 주춤한 상황이지만 남한의 ‘쿠쿠 전기밥솥’은 아직까지 인기 혼수품목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현지 법인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LG와 삼성 등 국내 각종 가전제품도 장마당에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기자와 통화한 한 여성 탈북자는 “북한에서 남한 상품이라고 하면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하다못해 남한제 옷이라고 하면 상품 여하를 불문하고 잘 팔린다. 아직까지 북한이나 중국 상품에 비해 값이 비싸기 때문에 형편이 어려운 상당수 인민들이 자유롭게 향유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남한제품이 최고급품으로 통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