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리그 승부조작 사건 관련 몇몇 대표팀 선수들이 검찰 수사를 받을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
#옥석을 가려야 하는 대표팀
성인 대표팀 조광래 감독은 승부조작 얘기가 나오면 한숨부터 내쉰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성과 품성, 기본이 돼 있는 선수들만이 태극마크를 달 수 있다는 주장을 해온 터였다.
당장 성인 대표팀은 오는 9월 2일부터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에 나서야 한다. 8월 초에는 일본 삿포로에서 일본 대표팀과 A매치를 갖는다.
선수 선발에 차질이 많다. 창원지검은 2차 수사 브리핑을 통해 “현역 대표팀 선수들은 기소 리스트에 없었다”고 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검찰이 선수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인지 일부를 미처 체크하지 못했다. 대구FC 핵심 수비수 L과 수원 삼성 최성국, 전북 현대 골키퍼 염동균 등은 사실상 현역 대표로 봐도 무방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아직 발표되진 않았지만 이미 몇몇 대표급 선수들은 추후 3, 4차 검찰 수사가 이뤄질 때 혐의점에 대한 조사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기소 여부와 관계없이 진술서를 제출한 건 승부조작 인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누굴 대체하고, 누굴 선발해야 할지 고민의 연속이다.
일단 제주 수비수 홍정호에 대해 조 감독은 “명쾌하게 혐의가 나온 게 아니라서 추후 선발할 수 있을지 여부는 모르겠다”고 ‘보류’를 선언했지만 설사 혐의가 없더라도 최소 팀 내 승부조작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검찰도 “홍정호가 ‘돈을 받은 뒤 곧바로 돌려줬다’는 주장을 펴지만 ‘돌려줬다’는 건 중요하지 않은 사실로 본다. 범죄는 돈을 받은 순간부터 인정된다. 제주가 직간접적으로 ‘홍정호가 무혐의를 받았다’는 주장을 편 것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내보였다.
홍정호의 성인대표팀 재승선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비슷한 맥락에서 검찰 수사망에 오르내리는 인물들 역시 발탁이 어렵다. 조 감독은 “실력 못지않게 중요한 건 프로로서의 자세와 기본기다”라고 말해왔다. 이러한 평소 주장을 뒤집고 선수 선발에 임한다면 여론의 쏟아지는 질타를 감내해야 한다.
올림픽대표팀 홍명보 감독 역시 부담이 만만치 않다. 올해 초 구자철(볼프스부르크)의 올림픽 무대 부재가 확실시되면서 올림픽호 코칭스태프는 홍정호에게 ‘캡틴’ 완장을 맡겼다. 한 유력 축구인은 홍정호의 실력을 두고 “2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라고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홍정호가 최근 A매치와 올림픽 2차 예선 때 범한 실수도 검찰 수사에 의한 압박감 때문이라는 시선도 있다. 완전히 ‘무혐의’가 나오더라도 최소 검찰 수사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한동안 정상적인 플레이를 펼치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공존하는 요즘이다.
여기에 한층 젊어진 성인대표팀과 교집합에 놓인 22세 이하 선수들(내년 기준 23세 이하)이 있어 향후 수사에 따라 스쿼드의 대대적인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9월에는 런던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도 시작된다. 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모두 중동 국가들과 한 조에 편성되면서 본선 출전 자체가 어느 때보다 어렵게 느껴진다.
축구협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조 감독의 처지도 딱하지만 이래저래 선수를 뽑을 수 없는데다 다른 부분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홍 감독의 모습은 서글플 정도”라고 고개를 저었다.
#K리그 선수 스카우트 진땀
명문 A 구단 감독은 “어디서부터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체감온도부터 큰 차이가 있다. 냉랭하다. 본래 7~8월이면 선수 이적시장은 활기가 넘쳐야 한다. 하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다. 바짝 얼어붙은 기류만 가득하다.
실력 좋은 선수들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믿고 쓸’ 선수들이 없을 뿐이다. 요즘 에이전트들은 비상이 걸렸다. 부족한 2%를 채우려는 각 구단들의 구애 활동이 눈에 띄게 줄었다.
영입 작업을 사실상 완료하고도 발표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들이 영입한 선수에 승부조작 혐의가 없는지 확실히 가리기 위함이었다.
지방 B 구단에서 주축 선수로 활약했던 선수 C의 영입을 거의 확정지었던 모 구단 고위 관계자는 “우리 팀 감독이 크게 원해서 C를 데려왔는데, 아직 영입 보도 자료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C도 승부조작 혐의가 있다는 말이 파다하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모 중견 에이전트도 “죽을 맛이다. 우리 선수를 ‘믿으라’는 말을 해주고 싶지만 팀 입장은 그렇지 않다. 선수를 보낼 구단이나 영입할 구단이나 모두 답답하다”고 말했다.
크게 데인 기억이 생생하다. 검찰 조사를 받은 선수들은 대개 지난 시즌 범죄 행위에 가담했다. 그리고 여러 선수가 유니폼을 바꿔 입은 올 시즌, 사건이 크게 불거지며 각 구단들은 책임 소재를 놓고 설왕설래를 빚는다. 상당수는 ‘범죄 시점이 언제였든지 지금은 우리 소속 선수니 우리 책임’이란 자세를 취했으나 몇몇 구단들은 억울해 한다.
D 구단 단장은 “이번에 검찰에 불려간 선수는 작년까지 E 구단에서 활약했다. 좋은 기량에 혹해 어렵게 영입했는데, 반년밖에 쓰지 못했다. 해당 선수의 연봉과 수당이야 일정 부문 감수해도 엄청난 금액의 이적료는 어떻게 보상받느냐”고 울상을 지었다.
지방 명문 F 구단 선수 스카우트도 “잘못을 저질렀던 시기는 예전인데, 그 선수를 데려왔단 이유로 우린 큰 피해를 입었다. 일종의 사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웃지 못할 농담도 나온다. 선수 영입 계약을 체결할 때 ‘이 선수는 문제가 없다. 만에 하나 승부조작 등 범죄에 가담했다는 정황이 나오면 그대로 이적료를 되돌려준다’는 각서를 전 소속 구단으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것. 큰 돈이 오가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주력 멤버로 활동할 만한 나름 괜찮은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대거 연루됐다는 사실이 충격이다.
더불어 용병 쿼터를 늘려줘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신인 드래프트를 올해에 한해 좀 더 빨리 열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대전, 대구, 상무 등은 주축들이 대거 검찰에 소환돼 반쪽 전력이다.
요즘 K리그는 대량 득점이 터지는 경기들이 많아졌다. 예전이라면 ‘화끈한 공격 축구’라는 긍정적인 시선이 나올 법 했다.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주전들이 한꺼번에 증발돼 쉽게 골을 내줘야 했다. 여론으로부터 100% 신뢰를 받을 수 없다는 점도 서글프다. “저거, 베팅 게임 아니야? 누가 ’메이드(made)’ 됐지?”라는 말도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있다. 이래저래 최악의 국면을 맞이한 한국 축구의 요즘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이 없이 잇몸으로 버틴다
“이도 저도 할 수 없어. 감독이긴 한데,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다는 느낌이야.”
K리그의 한 시(도)민 구단 사령탑의 솔직한 속내였다. 충분히 이해될 법한 얘기다. 같은 지도자이고, 어떻게 보면 연배 또한 기업 구단 감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지만 정작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프로 팀 감독이라는 자부심, 축구 지도자 최고의 위치라는 자존심은 온데간데없다.
시(도)민 구단을 이끄는 감독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자금(돈)이다. 돈 때문에 선수 구성이 번번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 때문. 결국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연습생 신화’였다. 이러한 방식은 신인 드래프트를 보면 확연히 드러본다. 연봉 몇 천만 원짜리는 부담스러우니 연봉 1200만 원짜리 연습생을 대거 사들인다. 최대 1순위 지급 연봉 5000만 원조차 부담스러워 드래프트 선발 순위는 죄다 패스시키고, 일단 순위권에 없는 연습생들로 스쿼드를 채운다. 각종 세금을 제하고 나면 연습생들의 월급 통장에 들어가는 건 80여 만 원.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급여는 선수들이 승부조작이란 검은 커넥션을 실행에 옮기도록 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였다.
A (시민)구단 감독은 “신인을 제대로 발굴할 수 없고 괜찮다 싶은 선수들도 사올 수 없다. 한 번이라도 용병을 바꾸려다보면 잔여 연봉까지 꽉꽉 채워줘야 하니 부담도 크다. 쥐꼬리만한 급여를 주고 어린 선수들을 데려왔으니 그저 ‘대박’에 기대해야 하는 처지다”라며 혀를 찼다.
B 구단은 기업 구단들이 탐내는 선수들을 상당히 많이 보유하고 있다. 선수 이적시장이 열리는 매년 여름, 겨울만 되면 팀을 ‘떠나려는’ 선수들을 붙잡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다.
B 구단 감독은 “기업 구단들은 일단 감독이 원하면 최대한 맞춰주려고 한다. 우리 같은 팀이 처한 상황과는 다르다. 우린 없는 살림을 쪼개고 또 쪼개 선수들의 수당을 맞춰줘야 한다. 그렇다고 선수들에게 ‘돈이 없다’는 말은 할 수도 없다. 연봉 외적으로 들어가는 수당이 만만치 않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렇다고 구단 자체적으로 마음껏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다못해 경기장 내 매점에 상품 하나라도 더 올리려다보면 각종 벽에 부딪힌다. 정치적인 입김이 횡행하다보니 별의별 규제가 다 들어온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푸념이었다.
대개가 가장 중요한 전용 클럽하우스와 훈련장이 없어 훈련 계획을 제대로 짤 수 없는 형편이다. 훈련장이 없으니 운동을 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젊은 선수들은 대개 의욕이 넘쳐 공식 프로그램 외적으로 개인 트레이닝을 중시하나 생각뿐이다. 그저 낡아빠진 헬스장 시설을 이용하는 게 전부다. 재활 장비도 제대로 구비할 수 없다. 당연히 선수 순환 사이클이 느리다. 치료용 산소텐트까지 임대해 활용하고 있는 제주 유나이티드와 시민구단들의 사정은 천양지차다.
선수들의 치료가 늦으니 부상자들은 자꾸 늘어가고, 선수들이 부족해 정상적인 스쿼드를 짜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승부조작으로 선수들이 대거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선 더욱 괴롭다. C 구단 감독은 “악순환의 반복이다. 선수가 매번 부족하니 성적 부진은 당연하게 따라오는 결과물”이라고 했다.
환경부터 제대로 갖추지 못한 팀들을 창단가입금만 내면 무조건 받아들인 결과, 비정상적인 모습의 현재 K리그가 돼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3년부터 승격-강등 제도가 없는 프로리그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쿼터를 줄인다는 게 AFC 결정이었다. 프리미어리그(가칭) 창설 등 여러 가지 방안들이 쏟아지지만 무엇보다 2부 리그의 희생자(?)를 꼽는데 애를 먹고 있다.
일단 올해와 내년 시즌 성적을 종합해 2부 리그에서 시작할 팀을 꼽는다는 게 국내 축구계가 세워둔 기본 원칙이지만 시(도)민 구단들이 2부 리그에 강등되면 팀을 해체할 수도 있다는 얘기는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이런 소문들도 감독들을 힘들게 한다.
모 그룹 홍보를 중시하는 기업형 구단들도 대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정치를 위해 팀을 운영하는 상황이 대부분인 시민 구단들은 더욱 성적에 쫓길 수밖에 없다. D 구단 감독은 “솔직히 여느 팀보다는 시민구단들이 성적 압박이 심하다. 프로축구연맹은 AFC의 조건인 2013년부터는 아니더라도 2011시즌과 2012시즌의 통합 성적을 기준으로 2014년부터 승강제를 시행한다고 하는데, 만약 그렇게 될 경우, 어떤 팀이 2부 리그에 남겠다고 할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