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쎄미켐 390만 주 매입해 대주주 등극…급등세 전날 손절매 ‘투자 실패냐, 작전 가담이냐’
2022년 새해 첫 주식 거래일이었던 1월 3일, 거래가 시작되기 전부터 증권시장이 들썩였다. 국내 최대 임플란트 전문기업인 오스템임플란트의 자금 관리 직원이 회사 돈 1880억 원을 횡령했다는 공시를 내놓은 까닭이다. 주주들은 충격에 빠졌다.
#말도 안 되거나, 말도 안 되게 허술하거나
공시에 따르면 회사는 2021년 12월 31일 자금관리 담당 직원 이 아무개 씨(45)를 업무상 횡령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로 서울 강서경찰서에 고소했다. 이 씨가 빼돌린 금액은 1880억 원으로 이는 회사 자기자본 2047억 6057만 9444원의 91.8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공시와 동시에 한국거래소는 오스템임플란트의 주식 거래를 즉각 중단시켰다.
오스템임플란트 측 설명에 따르면 이 씨는 짧은 기간 동안 출금 내역과 자금수지, 잔액 증명서 등 사내 시스템을 위조해 회사 자금을 개인 은행계좌 및 주식계좌로 이체했다. 자금수지는 자금의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로, 자금 흐름을 확인하는 용도로 쓰인다. 잔액 증명서는 은행이 예금 잔액을 증명해주는 문건이다. 은행이 매달 회사 자금 담당자에게 잔액 증명서를 보내는데, 이 씨가 이 서류를 조작해 실제 회사 자금이 정상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처럼 꾸몄다는 것이다. 회사가 범행을 인지한 시점은 2021년 12월 31일이다.
이상한 점은 무려 188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단기간에 개인 계좌로 옮기는 것이 단독으로 가능하냐는 점이다. 사측은 “자금담당 직원 1인(이 씨)이 짧은 기간 동안 범행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는데 1880억 원은 매일 100억 원씩 개인 계좌로 옮겨도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는 거액이다. 대기업의 경우 자금 이체 한도를 따로 정하지 않기도 하지만, 보통 금융기관 1일 이체한도는 개인 최대 5억 원, 법인은 50억 원 이하다.
업계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상장사의 현직 재무담당자는 “아무리 대기업이 거액 대금 거래가 많다고 해도 수천억 원이 한두 달 만에 특정 개인 계좌로 꾸준히 인출되면, 금융권에서 들여다 볼 법하다. 무엇보다 직원 한 명이 회사 자기자본 92%를 주물렀는데 결재권자 그 누구도 몰랐다면 보안이 허술하다는 비판은 피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현직 금융업계 관계자는 “기업은 개인과 달리 대금 결제도 잦고 그 금액도 커 대기업의 경우 이체 한도 제한을 걸어놓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절차에 문제가 없다면 은행에서 기업의 거래 내역에 관여하기는 쉽지 않다. 내부 감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편 오스템임플란트 측은 이와 같은 반응에 대해 “조직적 범행이 아닌 단독 범행으로 보고 있다”라고 선을 그었다.
#투자 실패냐 주가조작 가담이냐
증권가에서는 횡령 혐의를 받는 이 씨가 개인 투자자 사이에서 유명한 ‘파주 슈퍼개미’와 동일인일 것이라는 추정이 돌고 있다. 파주 슈퍼개미는 개인 투자자로 한 번에 1400억 원대의 주식을 매매해 개미들의 주목을 받은 1977년생 이 아무개 씨다. 공시에 따르면 이 씨는 2021년 10월 1일 동진쎄미켐 주식 391만 7431주를 약 1430억 원에 매수하면서 대주주로 올라섰다. 그가 사들인 주식은 동진쎄미켐 전체 주식의 7.62%에 달한다. 이에 투자자들은 지분 공시에 적힌 그의 거주지를 따와 ‘파주 슈퍼개미’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런데 이 파주 슈퍼개미와 횡령 용의자 이 씨의 이름, 생년월일, 거주지 등 신상정보 일부가 일치했다.
횡령 사건이 드러나면서 파주 슈퍼개미의 과거 거래 내역도 다시 주목을 받았다. 투자계 큰손이었던 그가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급히 주식을 처분한 이력이 있는 까닭이다. 공시에 따르면 그는 2021년 11월 18일부터 12월 20일까지 6회에 걸쳐 동진쎄미켐 주식 336만 7431주를 평균 취득 단가(3만 6492원)보다 싼 평균 3만 3025원에 처분해 약 1112억 원을 현금화했다. 아직 55만 주가 남아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최소 120억 원을 잃은 셈이다.
급하게 지분을 정리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파주 슈퍼개미와 횡령 용의자 이 씨가 동일인이라면, 범행 발각을 염두에 두고 현금을 마련했을 가능성이 높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 12월 말부터 갑자기 출근을 하지 않았고 이후 횡령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거래소 역시 파주 슈퍼개미와 이 씨를 같은 사람으로 보고 관련 조사에 착수했다.
일각에선 이 씨가 다른 이유로 손실을 감수하고 주식을 처분했다는 말도 나온다. 이 씨의 거래 시점과 형태가 범상치 않은 까닭이다. 그가 동진쎄미켐 주식을 매수한 시점은 2021년 10월 삼성전자가 회사를 인수한다는 가짜 뉴스가 퍼지면서 동진쎄미켐의 주가가 다락같이 오른 날이다. 출처가 없는 낚시성 가짜 뉴스였지만 이날 동진쎄미켐의 거래량은 평소 10배 수준인 1700만 주를 넘어서며 폭발했다.
거래량이 늘자 주가도 치솟았다. 특히 이 씨는 한 번에 390만 주 넘는 양을 매수하면서 주가 상승에 크게 한몫했고 동진쎄미켐의 주가는 한때 4만 850원 상한가를 찍었다. 그 사이 외국인과 기관 등 일부 투자자들은 높은 가격에 주식을 팔아치웠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개미들이 재빨리 매물을 내놓으면서 동진쎄미켐 주가는 머리를 돌려 잠깐의 상승분을 반납하고 3만 24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다만, 이 씨는 이때 물량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례적인 급등락에 투자자들 사이에선 ‘악의적인 주가조작’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씨는 매도 시점도 공교로웠다. 동진쎄미켐은 이 씨가 지분을 대거 처분한 다음날인 2021년 12월 21일 18%, 30일에는 15% 올라 장중 5만 2100원을 찍으며 1999년 상장 이후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의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이 씨가 손해를 감수하며 매도를 한 덕분에 주가 급등 직전 시장에 물량이 풀린 셈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 투자자 사이에선 그가 투자를 실패한 것이 아니라 주가조작에 가담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이 씨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된 직후 출국금지 조치를 하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횡령금을 여러 계좌로 분산 송금했으며 잠적 직전 파주의 4층짜리 상가 건물을 가족에게 증여했다. 4억 300만 원 상당의 근저당권은 지난 12월 27일 원금과 이자를 모두 상환하면서 말소됐다. 자금세탁방지법에 따라 현금 1000만 원 이상을 은행에서 현금으로 입·출금할 경우 거래 정보는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된다. 이 씨가 횡령금을 현금으로 인출했다면 해당 정보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 소유 계좌를 훑어보고 있으며 계좌를 동결해두고 자금이 있는 경우 압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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