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있는 모든 방역정책에 법적 다툼 가능성…정부의 방역패스 필요성 설명 부족했다는 지적도
하루 뒤인 1월 4일 학원(학원과 유사하게 운영되는 교육시설과 직업훈련기관 포함)과 독서실·스터디카페 등 2종의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방역패스 의무 적용이 정지됐다. 함께하는사교육연합·전국학부모단체연합 등이 2021년 12월 17일 ‘방역패스 정책이 청소년의 신체의 자유, 일반적 행동 자유권, 학습권, 학원장의 영업권 등을 침해한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집행정지(효력정지) 신청을 했는데 이날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가 집행정지를 일부 인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학원과 독서실·스터디카페의 방역패스 의무 시설 적용은 행정소송 본안 1심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효력이 일시 정지된다.
집행정지를 일부 인용한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이종환)는 학원과 독서실·스터디카페에 대한 접근과 이용을 제한할 경우 학습권이 제한돼 교육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의 기본권이 직접 침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코로나 백신 접종이라는 개인의 신체에 관한 의사결정을 간접적으로 강제 받는 상황이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봤다.
이 부분에서 재판부는 “코로나19 치료제가 도입되지 않은 현 단계에서 백신이 적극 권유될 수 있다는 사정을 고려해도 미접종자의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은 충분히 존중돼야 하며 결코 경시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기본권이 침해당하는 행정청의 처분일지라도 집행이 강행되는 경우도 있다. 행정청의 처분이 공공복리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법원은 집행정지 결정 과정에서는 행정청 처분의 집행을 막는 것이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지를 살펴본다. 이번 사안에서는 학원과 독서실·스터디카페에 방역패스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와 위중증률 상승 등으로 이어져 공공복리에 악영향을 미칠지 여부가 중요하다.
문제는 이 부분에 대한 입증을 정부가 해야 하는데 이를 명확하게 소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과거 자료만 제출한 부분을 두고 재판부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재판부가 국민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는 행정 처분을 통해 얻게 될 공익성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적절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결국 재판부는 “백신 미접종자라는 특정 집단의 국민에 대해서만 시설 이용을 제한하려면 객관적이고 합리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백신 접종자 돌파 감염도 상당수 벌어지는 점 등에 비춰보면 시설 이용을 제한해야 할 정도로 백신 미접종자가 코로나19를 확산시킬 위험이 현저히 크다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정부가 법원에게 허를 찔렸다고 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상황에서 법원은 정부의 핵심적인 방역 대책에 별다른 이견을 내거나 제동을 걸지 않아왔다. 이런 까닭에 당연히 집행정지가 인용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정부가 별다른 자료와 답변도 준비하지 않고 재판에 임했다가 일부 인용이라는 법원의 결정을 받게 됐다는 지적이다. 법원의 이런 결정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보건복지부는 일부 인용 결정이 나오자 바로 공식 입장도 내지 못할 만큼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방역패스 관련 법정다툼은 고작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우선 1월 7일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한원교)에서 조두형 영남대 의대 교수 등 1023명이 보건복지부장관과 질병관리청장 등을 상대로 낸 방역패스 처분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심문기일이 열린다. 식당과 카페 등 나머지 15종의 다중이용시설에 대해서도 방역패스 적용을 정지해 달라는 내용이다.
방역패스를 둘러싼 논란은 이미 헌법재판소까지 가 있다. 2021년 12월 10일 오전 학생학부모인권보호연대가 방역패스가 헌법에 어긋난다며 효력정지 가처분과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으며 이날 오후에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양대림 군 등 국민 453명이 정부와 전국 17개 시·도지사를 상대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정부는 법원이 학원과 독서실·스터디카페에 대한 방역패스 효력 정지 처분을 내린 데 대해 즉시항고 하기로 했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방역패스가 미접종자를 감염·확산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필수적 조치이고 의료 대응 여력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복지부 역시 백신 미접종자의 건강상 피해를 보호하고 중증의료체계의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방역패스 적용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 근거로 복지부는 성인 인구의 6.2%에 불과한 미접종자들이 12세 이상 확진자의 30%, 중증환자 사망자의 53%를 점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감염병 전문가들 역시 이번 법원의 집행정지 일부 인용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이번 인용 때문에 법원이 이제 방역정책의 최종 심사권한을 가지게 되겠군요”라고 지적했다. 이어 “반발이 있는 모든 방역정책은 행정소송과 가처분 신청을 당할 테고 법원이 결정해주어야 방역정책이 시행되는 상황을 만들 거구요”라며 “인용 내용보다 방역정책에 대한 가처분신청이 인용되었다는 것에 심히 우려를 표합니다”라고 밝혔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법원 결정문을 면밀하게 분석,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판결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가 가나 판결문은 의학적·과학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러나 방역패스의 적용 과정에서 소통과 설명 노력이 부족한 부분은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하며 “사법적 판단의 영역은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판단이 크지만 방역은 앞으로 일어날 인명손실에 대한 대비가 가장 중요하다. 이런 면을 충분히 설명할 준비가 저희들도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재훈 교수의 이런 지적은 향후 재판 일정에 임하는 보건복지부 등 방역당국을 향하고 있다. 당연히 법원이 핵심적인 방역 대책은 제동을 걸지 않을 거라는 인식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미 입증됐기 때문이다. 방역패스가 반드시 필요하다면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는 것도 방역당국의 몫이며, 이런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소송을 제기했을 경우 재판부에 방역패스를 통해 얻게 될 공익성을 소명하고 집행정지가 공공복리에 미칠 악영향을 설득하는 것 역시 정부의 역할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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