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대표를 선출하는 민주당 전당대회가 오는 11월께로 예고되면서 당 안팎으로 물밑 당권 경쟁이 시작됐다. 지난해 10월 열린 민주당 2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 |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진 인사는 손 대표의 측근인 김부겸 의원이다. 김 의원은 7월 21일 서울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지지조직인 ‘김부겸과 함께라면’(약칭 ‘김부라면’) 결성식을 열고 “오늘 ‘라면공장’ 가동과 더불어 민주당을 바꿔놓겠다. 당권에 도전해 당 대표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세대교체를 통한 환골탈태, 공천혁명을 통한 국민감동, 특정지역에 안주하지 않는 전국정당화, 범민주진영의 대통합이 민주당 승리의 길”이라며 “이 깃발을 들고 기득권에 안주해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들과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싸워 전대에서 승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학생·재야운동을 거쳐 정치를 하면서도 항상 조력자의 역할을 자처했다”면서 “이제 정치적 독립을 선언, ‘김부겸의 정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대구 경북고를 졸업했고, 경기 군포의 3선 의원인 그는 ‘전국정당화’란 명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손 대표를 유력 대권후보로 상정하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승리 공식인 ‘지역 간 연합’, ‘진보진영 내부의 통합’을 이뤄내려면 영남 출신으로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당 대표가 필요하다고 설파하고 있다.
대구 출신이자 손 대표 캠프의 좌장인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노혜경 전 노사모 대표 등이 그의 전국조직화를 돕고 있다. 손 대표의 당내 안착을 위한 ‘측근 배제’의 논리에 밀려 원내대표와 사무총장직을 포기해야 했던 그로선 회심의 카드를 내민 셈이다. 그가 ‘정치적 독립’을 강조하는 데는 손 대표의 대권행보에 가려 또 다시 ‘이선 후퇴’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들어 있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또 다른 ‘정치 독립’의 기치를 내걸었던 ‘486그룹’도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차기 전당대회에서 승부수를 띄우기로 했다. 한나라당의 7·4 전당대회에서 나타난 세대교체 바람에 많은 자극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당내 80년대 운동권 출신의 전·현직 의원들로 구성된 ‘진보행동’은 7월 20일 전북 익산에서 워크숍을 열어 전당대회에서 2명 이상의 복수 후보를 내기로 했다. 이 자리에는 백원우 의원, 우상호 임종석 한병도 전 의원, 유은혜 전 부대변인 등 2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다른 일정과 겹쳐 참석하지 못했다.
이들은 총선과 대선에 대비한 ‘얼굴마담형’ 당 대표 선출론을 비판하고, 당에 쇄신바람을 불어넣는 개혁적 대표가 바람직하다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대교체의 실제 내용을 민주당의 쇄신과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통해 참신한 수권능력을 보여줘야만 총선 승리는 물론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진보행동의 한 관계자는 “지난번 전당대회에서 후보단일화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나버린 것을 교훈으로 되새기고 있다”면서 “이번에는 최고위원회의 진입이 아니라, 당권을 목표로 다수의 후보군을 형성해 전면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8월 중 모임을 잇달아 열어 후보자 선정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당권 경쟁구도에서 아직까지 가장 큰 물밑흐름을 장악하고 있는 명분은 ‘호남대표론’이다. 손 대표를 비롯한 비호남의 대권주자군이 주목을 받으면서 ‘당 대표는 호남에서 나와야 총선도, 대선도 승리할 수 있다’는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특히 야권통합이나 선거연대를 명분으로 ‘호남양보론’이 제기될 것에 대비한 대응차원에서 호남대표론자들이 지도부 장악을 위한 ‘대반격’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 팽배하다.
호남대표론의 선두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다. 그는 원내대표직을 그만두면서 “정권교체, 정권재창출, 원내대표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정권 교체하는 데 벽돌 하나라도 놓겠다”고 차기 당 대표 출마를 시사한 바 있다. 호남지역의 당원조직화는 물론 수도권과 영남 지역에서도 상당한 지지 세력을 다지고 있는 것으로 진해진다.
광주 동구가 지역구인 박주선 의원도 지난 7월 7일 광주에서 자신의 지지모임인 동북아위원회 주최로 ‘21세기 동북아 평화번영전략 한·중·일 국제회의’를 열면서 당권 행보를 공식화했다. 그는 전국 조직 꾸리기에 전력을 쏟고 있다. 호남 3선인 이강래 전 원내대표도 당권 도전을 통한 지도부 진입을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당권경쟁과는 다른 차원에서 중진들의 ‘복귀전’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이른바 ‘빅3’의 경쟁으로 치러진 지난 전당대회와는 달리, 차기 지도부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잇달아 치르는 만큼 선거 경험이 많고 정치격변에 노련하게 대응할 수 있는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정대철 고문과 ‘선거통’인 김한길 전 의원의 이름이 부쩍 오르내리고 있고, 야권통합의 ‘거중조정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김근태 상임고문도 발언과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추미애 의원과 박영선 정책위의장 등 여성 지도부의 도전도 변수가 되고 있다.
당권주자들의 ‘전초전’이나 다름없는 명분싸움은 당의 진로, 즉 총선·대선 전략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당이 처해 있는 정세판단과 함께 민심경쟁을 벌이는 도구인 당 정책에 이르기까지 예비주자들 간 치열한 논쟁을 예고하는 것이다. 지역, 세대, 노선을 달리하는 각 진영의 경쟁이 점차 물밑에서 가열되고 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