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에 성적이 잘 나와 여름을 좋아하게 됐다는 강정호. 폭염 속에서도 묵묵히 훈련에 임하고 있다.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넥센 히어로즈 강정호(24)가 인터뷰를 시작하려는 기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래서 대뜸 튀어나온 말이 “강게이요?”
언제부턴가 강정호를 표현하는 여러 별명들 중에 ‘강게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실제로 그가 게이라는 게 절대 아니다. 옷을 입을 때 주로 브이넥 스타일의 티셔츠를 입고, 무채색보다는 화려한 색깔을 좋아하는 데다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때 백허그를 하고 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바람에 ‘강게이’라는 닉네임이 붙고 만 것. 강정호는 그 별명이 너무 싫다고 한다. 그래서 “나훈아라는 별명도 있던데요?”라고 한마디 던졌더니, “강게이보다는 낫다”고 반응한다.
올스타 휴식기를 앞두고 폭염 속에서도 묵묵히 훈련에 임하고 있던 강정호는 더위는 싫지만 여름에 성적이 잘 나오는 특징이 있어, 여름을 좋아하게 됐다며 연신 흐르는 땀을 닦는다.
스타플레이어들이 줄줄이 트레이드 된 팀 분위기에 적응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는 그는 나름 기대를 갖고 시작한 2011시즌 전반기가 맑음보다는 구름 잔뜩이 더 많았다고 아쉬움을 나타낸다.
#2군행
지난 5월 25일, 강정호는 2007년 8월 1군 엔트리 등록 이후 처음으로 2군행을 통보받았다. 시즌 초반 극심한 슬럼프를 겪은 데다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실수 등으로 김시진 감독이 내린 극약 처방이었다.
“제가 좀 슬로 스타터 스타일이에요. 초반에 헤매다가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올해는 이상하게 그 특징들이 보이지 않았어요. 처음 2군으로 내려가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울컥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섭섭하기도 했었고요. 더욱이 막 슬럼프에서 벗어나 상승세를 타려던 시점이라 2군으로 내려가는 게 아쉬웠죠. 2군 경기는 한낮에 열리는 데다 선수단 분위기도 많이 달라 집중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래도 열심히 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2군에서 정말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 다녔습니다.”
#상실감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당시 현대 유니콘스 김재박 감독에 의해 프로야구에 첫 발을 내딛었던 강정호. 입단 당시 ‘제2의 박진만’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달았지만 그의 주무대는 1군이 아닌 2군이었다. 우리 히어로즈로 팀명이 바뀐 뒤 이광환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 덕분에 기량이 급상승한 강정호는 히어로즈의 붙박이 유격수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한테 가장 큰 자극이자 동기부여가 됐던 선수는 입단 동기였던 황재균. 그러나 ‘100억을 줘도 팔지 않겠다’던 히어로즈 구단주의 약속과 달리 황재균은 롯데로 트레이드된다. 남아 있는 강정호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중심타선을 이루는 선수가 떠나니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죠. 안 그래도 힘든데, 선수들이 트레이드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많이 버거웠습니다. 하지만 저보단 감독님이 더 괴로우셨을 거예요. 그걸로 위안 삼았죠(웃음).”
#트레이드
황재균마저 떠나고 강정호만 남자, 넥센 팬들은 우스갯소리로 “강정호가 잘 칠 때마다 불안하다”는 얘기를 한다. 좋은 성적을 낼수록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될 확률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정호는 올 초, KIA 타이거즈 김선빈과의 트레이드설이 나돈 바 있다.
“잘 아시다시피 트레이드는 제 선택이 아니에요.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구단에서 더 이상의 트레이드는 없다고 했거든요. 그 말만 믿고 있습니다. 아직까진 트레이드 자체를 떠올리고 싶지 않아요. 만약 절 트레이드시킨다면, 팬들이 알아서 대응해주시겠죠(웃음).”
▲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
강정호는 지난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추신수와 친분을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추신수의 인간적인 매력에 동화돼 당시 다른 사람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털어 놓았을 정도라고.
“메이저리그 선수는 어떤 타격법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그런데 저랑은 많이 다르더라고요. 전 노려서 치는 스타일인데 신수 형은 코스를 보고 치는 거예요. 훈련할 때 굉장히 진지한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고, 신수 형도 광저우 가기 전까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 했는데, 저도 또 신수 형도 금메달 획득하는 데 큰 역할을 해내 정말 기뻐했고, 서로 많이 축하해줬습니다.”
#진만+시헌
2010년 3할 타율을 넘기며 국가대표급 유격수로 활약했던 강정호가 꼽는 유격수의 롤 모델은 박진만과 손시헌이다. 그래서 한때 두 선수의 장점만을 취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고백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팬들이 원하는 모습은 시헌이 형 같은 수비더라고요. 박진만 선배가 여유 있게 볼을 잡은 후 한 템포 빠르게 던지는 편이라면 시헌이 형은 빠르게 공을 잡아 강하게 송구를 해요. 그래서 전 진만 선배처럼 여유 있게 볼을 잡고 시헌 형처럼 강하게 송구하려 했는데 생각처럼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러다 가끔씩 어이없는 실수를 할 때도 있었어요. 솔직히 9회까지 경기하면서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그거 안 해본 사람은 잘 모릅니다. 아무리 집중하려고 해도 잘 안 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실수가 나오더라고요.”
#‘땜방용’
프로 입단 당시 포수로 뽑혔던 강정호는 투수를 비롯해 내야 전 포지션을 두루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은 ‘땜방용’이었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주종이 없다 보니 공백이 생길 때마다 옮겨 다녔어요. 어떤 포지션을 맡겨놔도 소화를 해내는 능력이 있다는 얘길 듣기도 했지만, 강정호하면 유격수다, 포수다, 3루수다, 이런 특징이 없었다고도 할 수 있죠.”
그러면서도 광주일고 시절, 투수와 포수를 번갈아 가며 봤던 그는 가슴 한편에 투수에 대한 미련이 조금은 남아 있다고 털어 놓는다. 지난 플로리다 스프링캠프 때 장난삼아 던진 공이 142㎞의 스피드가 나왔다고 하니 강견임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
#언터처블
“만약 게임이 연장전에 들어갔는데, 던질 투수가 없을 때, 한번쯤 마운드에 올라가 공을 던지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물론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긴 하지만. 투수 출신이다보니 타석에 섰을 때 선구안이 좀 더 뛰어난 건 사실인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칠 수 없는 볼도 있더라고요. 바로 류현진 볼이에요.”
강정호의 얘기를 듣고 있던 기자가 “지난 주 장종훈 코치와 인터뷰했을 때, 장 코치가 꼭 상대해보고 싶은 선수로 류현진을 꼽았다”라고 전하자, 강정호는 웃음을 터트리며 이렇게 대답한다.
“저도 그 기사 봤어요. 장 코치님께서 류현진의 서클체인지업은 버리고 직구만 보고 들어가시겠다고 하셨는데, 서클체인지업을 버린다고 해서 버려지지가 않아요. 직구인 줄 알고 있는 힘껏 방망이를 휘두르면 눈 앞에서 공이 톡 떨어지거든요. 스피드, 제구력, 변화구, 뭐 하나 빠지는 게 있어야 공략을 하죠. 현진이 공은 못 치는 게 아니라 때리기가 힘들어요.”
#꼴찌 탈출
어느 순간부터 한화와 꼴찌 탈출 경쟁을 벌였던 넥센. 그래도 꼴찌는 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올해는 이 부분도 아슬아슬한 위기의 상태다.
“이겨야 하는데, 허구헌날 지니까 지는 데 대해 타성이 생기더라고요. 속상해요. 우리한테 ‘고춧가루 부대’ 운운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열 받기도 하고요. 그런데 한화가 너무 잘해요. 이러다 진짜 꼴찌할까봐 은근히 걱정된다니까요.”
강정호는 조심스럽게 “어려운 상황이지만, 형들을 믿고 달려가다 보면 우리도 가을에 야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결의를 다지며 남다른 각오를 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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