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범행”시인 이 씨, 주식 투자로 큰 손해…오스템임플란트 역시 추격 매수 방식 투자로 잦은 손실
서울 강서경찰서가 회사 돈 수천억 원을 횡령한 오스템임플란트 직원 이 아무개 씨(41)를 14일 특정경제범죄법상 위반(업무상횡령) 등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구속 송치했다. 이 씨는 오스템임플란트에서 자금 담당 업무를 하면서 잔액 증명서를 위조하는 등의 방식으로 회사 자금 2215억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이 씨는 횡령금 상당수를 주식에 투자했는데, 주식을 사고팔고 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총 매매 규모가 1조 3000억 원, 손해액은 761억 원에 육박하게 됐다. 거래금과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데에는 급등주를 좇아 단기 매매하는 이 씨의 공격적인 투자법이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YTN 보도에 따르면 이 씨는 2021년 11월 11일 약 4000억 원을 들여 NC소프트 주식을 70만 주 샀다가 당일 20만 주를 팔아 치웠다. 당시 NC소프트는 호재가 있어 상승세였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씨는 결국 약 500억 원의 손해를 보고 11월 15일 남은 50만 주를 처분했다고 한다. 앞서 이 씨가 큰 손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진 동진쎄미켐의 주식도 이와 유사한 패턴이었다. 호재에 사들여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팔아 치웠다.
#오스템임플란트도 2020년 투자법 변해
눈길을 끄는 점은 오스템임플란트도 최근 몇 년 동안 대량의 주식거래를 해왔다는 것이다. 13일 오스템임플란트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최근 3년 분기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2018년과 2019년 오스템임플란트의 투자 스타일은 대형주 위주로, 보유한 종목에 큰 변화를 주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2020년을 기점으로 투자법이 다소 변했다.
2018년 1분기 오스템임플란트가 갖고 있던 주식은 SK디스커버리(63억 9709만 원), SK케미칼(59억 5790만 원), KODEX 200선물인버스2X(12억 3108만 원)이었다. 이어 2분기엔 삼성전자 주식을 3억 5265원어치 추가로 사들였다.
2018년 3분기 오스템임플란트는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처분하고 SK케미칼(86억 203만 원), SK디스커버리(37억 5296만 원), KODEX레버리지(27억 3870만 원), KODEX코스닥150레버리지(3억 4834만 원)를 갖고 있었다. 이후 주식 일부를 처분하긴 했으나 종목 자체엔 변동이 없었다.
이듬해에도 그대로였다. 2019년 1~4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오스템임플란트가 보유한 주식은 SK케미칼(78억 1398만 원), SK디스커버리(34억 914만 원), KODEX코스닥150레버리지(3억 4834만 원), KODEX레버리지(27억 3870만 원)로 추가 매수나 매도 없이 1년 동안 유지했다. 그러다 2020년 3분기 말 이들 4개 종목을 처분하면서 높은 수익을 올렸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이후 증시가 급등한 까닭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오스템임플란트는 매 분기마다 2~5개 종목을 사고팔기 시작하며 투자 방식에 변화를 준다. 과거 우량주 위주로 매수를 하던 것과 달리 대형주와 소형주를 가리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급등주를 추격 매수하는 모양새가 이 씨의 투자 스타일과 유사해 당시 재무팀장이었던 이 씨가 영향을 준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2020년 4분기에는 나이벡(74억 6328만 원), 텔콘RF제약(61억 104만 원), 삼성물산(13억 8000만 원)을 매수했다. 텔콘RF제약의 경우 2020년 9월 코로나19 치료제 임상 기대로 주가가 급등했던 시기였다.
오스템임플란트는 그 다음 분기인 2021년 1분기에 텔콘RF제약과 삼성물산을 모두 처분했다. 대신 SK하이닉스(15억 6061만 원), 삼성전자(6억 7745만 원), 씨에스윈드(4억 6061만 원), 효성중공업(12억 3713만 원), 금호석유(5억 8253만 원) 주식을 새롭게 사들였다. 2021년 초 SK하이닉스는 15만 원까지 오르는 등 급등세를 보였고 씨에스윈드는 2020년 말부터 신재생에너지 테마주로 주목 받으며 상승세를 보였던 때였다.
그러나 오스템임플란트는 이런 투자법으로 오히려 잦은 손실을 본 것으로 분석된다. 2021년 1분기 급등세를 보였던 SK하이닉스는 2분기 12만 원대로 떨어졌고, 씨에스윈드의 실적도 다소 부진했다. 우랑주였던 삼성전자마저 이 시기 9만 원까지 올랐다가 7만 원대로 급락했다. 결국 오스템임플란트는 2021년 2분기에 삼성전자를 제외한 SK하이닉스, 씨에스윈드, 효성중공업, 금호석유 등 4개 종목을 모두 매도하고 APS홀딩스(32억 385만 원), DI동일(6억 7633만 원), 네이버(22억 8318만 원) 주식을 매수했다.
가장 최근 공시인 2021년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오스템임플란트가 현재 보유 중인 주식은 나이벡(25억 9800만 원), APS홀딩스(42억 513만 원), DI동일(8억 1547만 원), 네이버(34억 9465만 원)이다.
#커지는 부실 회계 책임론
주주들 사이에서는 회사가 투자는커녕 돈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회사는 이 씨의 횡령 사실을 인지한 뒤에도 정확한 피해액과 시점을 파악하는데 애를 먹었다. 경찰에 따르면 오스템임플란트는 2021년 12월 31일 이 씨의 횡령액을 1430억 원으로 고소했다가 2022년 1월 초 550억 원을 추가했다. 횡령 시점도 2021년 10월이라고 했으나 이후 3월부터라고 변경했다.
이후로도 횡령 시점은 계속 앞당겨졌다. 오스템임플란트는 1월 10일 정정공시를 통해 “이 씨가 2021년 및 2020년 4분기에 각각 100억 원과 235억 원을 출금한 뒤 반환했다”고 밝혔다. 직원 한 명이 최소 2년 전부터 총 2215억 원의 회사 돈을 주물렀지만 회사는 횡령 시점과 금액마저 오락가락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는 의미다.
회사가 회계 관리를 부실하게 했다는 책임론도 나온다. 오스템임플란트는 2017년 금융당국의 특별감리에서 반품충당부채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등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적발됐으나 경징계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시총 2조가 넘는 상장사의 돈을 임원도 아닌 직원 한 명이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권한이 부여된 것부터가 잘못”이라며 “만약 위조 사실을 알면서도 가담한 직원들이 있었다면 내부적으로 모니터링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스템임플란트 재무팀 직원들은 경찰 조사에서 이 씨가 지시해 PDF 편집 프로그램으로 잔액을 바꾸는 등 잔고증명서를 위조해 회사가 알 수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 씨는 “개인적으로 금품을 취득하기 위해 저지른 단독 범행”이라고 진술을 번복했다. 당초 이 씨는 “금괴 일부를 윗선에 제공했다”며 사실상 윗선의 지시로 횡령을 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왔다. 진술을 번복한 이유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족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이 씨의 부인과 처제는 범죄수익은닉 혐의 등으로 입건됐으며, 같은 혐의로 입건된 이 씨의 부친은 10일 숨졌다. 이 씨는 부친의 소식을 듣고 심경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이와 별개로 이 씨의 구체적인 범행 경위와 함께 ‘윗선 개입’과 공범 여부 등의 수사를 할 예정이다. 또, 여죄에 대한 수사도 이어간다.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14일 “현재 송치된 부분은 횡령 혐의에 대해서만”이라며 “범죄수익은닉 등 추가조사를 할 것”이라고 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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