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2006년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당시 박근혜 대표와 이재오 원내대표가 나란히 앉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
청와대 안팎에서는 8월 중순 이후에 이 장관 사표가 수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소식에 한나라당에서 이 장관 계보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장관이 하루 빨리 당으로 돌아와 와해 직전에 있는 친이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친박도 친이 못지않게 이 장관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금 당으로 와봤자 무슨 힘을 쓸 수 있겠느냐”는 자신감을 내비치면서도 “이 장관 특유의 저돌적인 정치력을 무시해선 안 될 것”이라며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친박 의원들은 이 장관이 당으로 돌아올 경우 박 전 대표가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할지 논의하고 있다. 정책 연구에 주력하던 싱크탱크들도 이 장관 복귀 후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예측하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박 전 대표 역시 핵심 측근들 및 원로그룹 등을 통해 조언을 듣고 있다고 한다. 박 전 대표 자문그룹에 속해 있는 한 교수는 “이 장관이 돌아오면 어떤 식으로든 당내 역학구도는 바뀔 것이란 게 우리들의 판단이다. 공개하긴 어렵지만 최선의 대안이 무엇인지 토론을 거쳐 박 전 대표에게 보고했다”고 귀띔했다.
이 장관과의 관계 설정을 둘러싼 친박 내부 견해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우선 ‘전략적 제휴론.’ 박 전 대표가 내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 장관과 굳이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게 요지다. 이 장관이 여전히 상당수 대의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손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뒤따른다. 비록 현재의 정치적 입지가 예전만 못하더라도 한때 당대 최대 계파 수장이었던 만큼 그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얘기는 3선 이상 중진급 의원들 사이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영남지역의 한 친박 의원은 “이 장관과 싸우게 되면 또 다시 계파 간 갈등이 부각될 것이다. 이 경우 박 전 대표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면서 “적극적으로 협력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척을 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게 더 낫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친박 강경파들은 이 장관과 절대 함께할 수 없다며 ‘전면전’도 불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기엔 초·재선 의원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이 장관을 믿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007년 경선과 2008년 총선 공천에서 이 장관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고 믿고 있는 이들 의원들은 내년 경선과 대선에서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친박의 한 핵심 의원은 얼마 전 기자들에게 “이 장관 (정치) 스타일은 박근혜식 신뢰 정치와 상극”이라면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장관과는 손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친박이) 이 장관 도움이 없더라도 ‘대세론’엔 큰 지장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면서 “만약 이 장관 파워가 줄어들지 않았다면 아무리 박 전 대표라도 (이 장관과) 싸우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강경파 중 일각에선 어차피 함께 갈 수 없다면 이 장관을 내년 총선 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 장관의 정계 은퇴를 외치고 있는 것일까. 친박 인사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지금은 힘이 빠져 있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시 이 장관이 친이계 결속을 모색한다면 박 전 대표 대권가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친박 의원들은 그동안 이 장관이 김문수 경기지사, 오세훈 서울시장 등 친이 잠룡들과 접촉할 때마다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지금 이대로’ 판세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친박으로선 이 장관 속내에 있는 ‘박근혜 대항마 찾기’를 원천봉쇄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인 셈이다.
계파 간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앞서 이 장관과의 제휴를 주장했던 이들도 한나라당의 해묵은 친이-친박 다툼을 경계했는데, 강경파들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이 장관이 있는 한 이러한 계파 갈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로 인해 여론의 지탄을 받을 경우 박 전 대표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강경파로 분류되는 의원들 대부분은 ‘감정적 측면’에서 이 장관 퇴출을 거론하기도 했다. 2008년 공천 파동을 비롯해 당 내 ‘비주류’로서 겪어야만 했던 여러 고충들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 친박 의원 보좌관은 “물론 이 장관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심리적 보상 측면에서라도 상징적 의미가 있는 이 장관에게 절대로 공천을 줘서는 안 될 것”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일단 강경파 의원들은 이 장관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을 상대로 개별접촉에 들어가 ‘월박’을 유도하고 있다. 이는 친박 영역을 확장하려는 것과 동시에 이 장관이 당으로 돌아오더라도 힘을 쓸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한다. 친이계 의원들 사이에선 “당 주도권을 쥔 친박이 내년 공천을 무기로 압박하고 있다”는 불만도 들리고 있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이 장관계가 최근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대선이 가까울수록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면서 “수족이 잘린 이 장관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극히 제한될 것이다. 본인 공천부터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최근 정치권엔 ‘이 장관 코가 석 자’라는 말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친박 강경파가 노리는 최종 목표는 이 장관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친박 일각에서는 이 장관과 관련된 ‘X파일’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퍼지고 있다.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미래권력’에게 사정기관의 고급 정보들이 흘러들어간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제로 최근 박 전 대표를 비롯한 친박 핵심 의원들에겐 정권 초엔 접하지 못했던 이명박 정부 비리 의혹에 대한 제보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엔 이 장관과 관련된 내용도 포함돼 있다는 게 친박 인사들의 전언이다. 몇몇 의원실에서는 관련 내용에 대한 확인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이는 ‘공격용’이라기보다는 ‘압박용’이라는 게 정치권의 우세한 관측이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이 장관이라고 가만있겠느냐. 아직 사정기관 내부엔 이 장관 라인이 일하고 있다. 이 경우 한나라당 내부에서 친이-친박 간 사생결단식의 폭로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