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표적인 팬클럽으로 꼽혀온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를 두고 최근 친박 내부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친 박근혜’ 조직이라는 점에서 ‘우군’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박사모의 근래 행보가 박 전 대표의 의중과 엇갈리는 일이 종종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7·4 전당대회 등에서 박사모가 친박 주류의 입장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친박계 일각에서 “진정 박근혜를 위한 팬클럽 맞느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박사모’에 대한 걱정과 함께 친박계 내부에선 ‘팬클럽 정비’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박사모’ 외에 ‘호박가족’과 ‘근혜동산’ 등 팬클럽 사이에도 조직 경쟁 양상이 벌어지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책 마련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박사모’를 비롯한 박 전 대표 팬클럽들을 두고 친박 내부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속사정을 살펴봤다.
최근 기자는 ‘여의도’의 한 친박 인사에게 ‘박사모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친박 내부에선) 지난 대선 경선 이후로 박사모는 변질되었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박사모 자체가 하나의 권력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분명 내부 정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박근혜 전 대표도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 인사의 발언이 박사모를 바라보는 친박계 시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분명 박사모에 대한 걱정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인사는 “지난 7·4 전당대회에서 (박사모가) 권영세 의원을 지원한 것도 사실상 친박계 주류 의견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전당대회 선거는 ‘1인 2표제’로 실시되기 때문에 당시 친박계 내에선 유승민 의원 지원과 함께 또 하나의 투표권은 홍준표 의원을 돕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친박계의 지원으로 당대표에 선출된 이후 홍준표 대표가 유승민 의원과 각을 세우고 당 지도부 인선 과정에서 친박계에 우호적이지 않자, 친박계 내에서 “배신당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으나 투표권을 가진 친박계 당원들이 ‘홍준표, 유승민’ 지원에 힘을 실었던 게 사실. 그런데 ‘박사모’는 이와는 별개로 권영세 의원을 지원하겠다고 ‘공개선언’을 하면서 눈길을 끈 바 있다.
당시 박사모가 권 의원을 공개 지지한 것은 회원들을 상대로 한 투표 결과에 따른 것이었으나, 친박계 내의 의견정리와는 별도로 움직인 것이어서 뒷말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또 다른 친박 인사는 “만약 박사모의 지원으로 권영세 의원이 당선이라도 되었다면 정광용 회장과 박사모의 입김이 더 세졌을 것이다. 한편으론 다행스럽다”고 전하기도 했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권력화’하는 박사모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러한 우려를 하는 이들은 “박사모 정광용 회장이 ‘박사모’가 아닌 ‘정광용’이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활동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팬’ 차원을 떠나 정치적 야망이 큰 인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2009년 10월 정광용 회장이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사건에 대해서도 친박계 내부에선 논란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정 회장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여성인 나 의원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고 박사모의 인터넷 게시판에 나 의원을 모욕하는 글을 올려 소송을 당한 바 있다. 한 친박계 관계자는 “같은 여성 입장인 박근혜 전 대표 역시 그 사건에 대해 편치 않아 했었던 것으로 안다. 정 회장이 다소 거친 언행으로 이따금 물의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박 전 대표도 거리를 두고 있다”고 전했다.
친박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표가 박사모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 계기가 된 건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 이후 박사모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일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당시 경선 패배를 깨끗이 승복하고 이명박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왔지만, 박사모 회원들이 경선결과에 불복하고 급기야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했던 것. 이 일에 대해 박 전 대표 역시 크게 심기가 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친박계 전직 의원은 이에 대해 “원칙과 약속을 중시하는 박근혜 전 대표의 브랜드를 거스르는 행동 아닌가. 박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를 돕기로 했으니 이를 따라야 하는데 독자적으로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박 전 대표가 박사모를 차츰 멀리하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28 재·보궐 당시엔 박사모가 서울 은평 을에 출마했던 이재오 후보의 낙선운동을 벌이며 물의를 빚자 박근혜 전 대표 측은 “우리와 상관없는 단체”라는 입장을 밝히며 선을 긋기도 했다.
한 친박 인사는 “박사모는 박근혜 전 대표의 적을 무너뜨린다는 이유로 ‘적의 적’을 편드는 이상한 논리를 펼친다. 18대 총선에서 친박계가 공천에서 대거 탈락한 것에 반발하면서 전여옥 의원을 떨어뜨리기 위해 민주당 김영주 의원을, 이방호 의원을 떨어뜨리기 위해 민노당 강기갑 의원을 사실상 지지했던 일 등이 대표적 예”라고 말했다. 당시 박사모 측은 이방호 후보 낙선운동이 강기갑 후보를 도와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도 “강기갑 후보 한 사람이 당선된다 해도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자신이 농민 출신으로 농어민의 이익을 적절히 대변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방호가 당선되면 한나라당이 결딴나고 나라가 결딴날 것”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사모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일을 계기로 박사모 역시 ‘내분’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2004년 박사모가 창설된 이후 함께 이끌어 왔던 정광용 회장과 김주복 당시 수석부회장이 의견 마찰을 일으키게 되면서 결국 김주복 부회장이 박사모 회원 일부를 이끌고 이탈하게 된 것. 한 친박 관계자는 “당시 박사모 회원 1만여 명이 김주복 회장과 함께 나가 만든 것이 ‘근혜동산’이다. 이들은 정광용 회장이 아닌 박근혜 전 대표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들이기 때문에 회원 수는 적지만 ‘진성회원’으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2010년 11월 창설된 ‘근혜동산’은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박사모와는 달리 유승민 의원과 함께 또 하나의 투표권은 ‘자유의사’로 선택하도록 했다고 한다.
근혜동산은 또 다른 팬클럽인 ‘호박가족’과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호박가족’은 박근혜 전 대표가 직접 개설한 ‘호박넷’이라는 사이트에서 출발해 2010년 5월 호박가족으로 새로이 이름을 바꾼 팬클럽. 이 때문에 ‘호박가족’은 박근혜 전 대표가 인정한 공식팬클럽으로 알려지고 있다. ‘호박’(好朴)은 김용갑 전 의원이 “나는 친박도 반박도 아니고 호박(好朴)”이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호박가족은 등록되어 있는 회원 상당수가 근혜동산과 박사모 회원과 겹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사실상 큰 활동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외에도 근혜동산, 근혜사랑 등 10여 개 이상의 박 전 대표 팬클럽이 사실상 난립 중인 상황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표 주변에선 박사모 외의 팬클럽들을 하나로 통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모아지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만약 통합될 경우 회원 수가 가장 많은 박사모(7월 29일 현재 6만 4984명)가 중심이 될 가능성이 크기에 반대 의견이 많아 현실화되지 못했다는 것. 친박 일부에서는 “지난 총선 및 지난해 4·28 재보선에서 낙선운동으로 물의를 빚었던 박사모가 내년 총선에서도 공천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어 우려스럽다”는 의견도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같은 친박 진영 내부의 시선에도 박사모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있는 듯하다. 최근 박사모는 ‘바른뉴스’라는 언론매체를 창간하는 등 인터넷 여론 형성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사모를 향한 친박계 내부의 우려에 대해 박사모 측은 “우리는 누구보다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선 승리를 위해 열심히 나설 지지자들”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몇몇 박사모 회원들은 “친박 내부에서 박사모를 견제하려는 세력이 있다”며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박 전 대표를 위해 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친박계 일부에선 “박사모와 같이 박 전 대표가 나서기 어려운 부분에 대신 나서주는 근위대와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과연 박사모가 박근혜 전 대표의 대권가도에 우군이 될지, 계륵으로 남게 될지 주목되고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노사모 회원들 문사모도 ‘똑똑’
▲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사모’는 바로 ‘문사모’(cafe.daum.net/moonjaein)로 ‘문재인 변호사님을 사랑하는 모임’이 정확한 명칭이다. 2004년 2월 12일 개설된 문사모는 지난 7월 28일 현재 회원 수가 4528명으로 최근 들어 가장 회원이 급증하고 있는 정치인 팬클럽 중 하나다. 지난 한 달 새에 회원 수가 1500명 가까이 늘어났을 정도로, 문사모의 확장세는 눈에 띈다.
눈길을 끄는 점은 문사모가 처음 생겨난 것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중이었던 2004년이었다는 것.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내던 당시에 개설된 이후 그간 꾸준하게 활동하며 현재에 이르게 된 역사가 짧지 않은 팬클럽이다.
문사모의 ‘잠재력’이 더욱 주목되는 이유는 회원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노사모의 회원이기도 하다는 점. 한 ‘노사모’ 회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했고 그 분의 뜻을 이어갈 분이 문재인 이사장이라고 생각하기에 이곳에도 가입했다”고 말했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정치인 팬클럽 열풍을 일으킨 전례가 있는 노사모이기 때문에 노사모가 문사모에 힘을 싣는다면 ‘제2의 노사모’와 같은 ‘문사모’ 열풍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문사모 회원 중엔 호남권 거주자도 적지 않는 사실. 연고지인 부산·경남 지역을 주축으로 호남지역의 지지까지 합쳐질 경우 문재인 이사장의 지지층이 크게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소 의외지만, 2003년 10월 개설된 ‘전사모’(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도 1만 9533명(7월 29일 현재)의 회원 수를 자랑한다. 호기심에서 가입한 회원들도 있긴 하지만 전사모는 현재 정치행보를 하지 않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순수한 ‘팬심’ 회원들로 판단되기 때문에 더 눈길을 끈다. 전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그다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에선 전사모에 대한 논란도 뜨겁지만, 팬클럽 카페에선 ‘12·12 사태의 당위성’을 피력하는 ‘현대사 재조명’란을 만드는 등 전 전 대통령 지지에 적극적이다.
지금은 활동하지 않지만, 지난 2005년 당시 대선주자였던 고건 전 총리의 주가가 상승했을 당시엔 ‘고사모’(고건을 사랑하는 모임)가 눈길을 끈 바 있다. 고사모 역시 지역적으로 수십 개의 지부를 만들어 ‘고건 띄우기’에 활발히 나섰으나, 고 전 총리의 정치 행보가 소극적으로 바뀌면서 ‘자연사’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사모’ 형태의 팬클럽 이름은 ‘노사모’와 ‘박사모’의 상징성이 워낙 크기에 더 이상 인기를 끌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향후 ‘진화’하게 될 정치인 팬클럽의 명칭도 또 하나의 관심거리가 될 듯하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