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추모사진전’ 개막식에서 이희호 여사, 손학규 민주당 대표 등이 참석해 사진전을 관람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하지만 이 최고위원의 발언 속에는 최근 민주당의 또 다른 고민이 담겨 있다. 한나라당의 급속한 친박(친박근혜)당화, 그리고 박 전 대표의 대선행보 본격화 움직임이 2012년 4월 11일로 예정된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 구도를 근본적으로 뒤바꿔놓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그것이다.
선거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한나라당의 변화가 본격화됐고, 더욱이 그 변화의 끝이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박 전 대표의 전면 등장을 의미한다면 이는 더 이상 민주당에게 ‘남의 집안 일’이 아니다.
한나라당의 친박당화 조짐은 이미 지난 5월 ‘철저한 비주류’였던 황우여 의원이 친이(친이명박)계 의원들을 물리치고 원내대표에 선출되면서부터 나타났다. 언론은 물론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파란이 일어났다”는 반응을 낳았던 이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 주도권이 이제 친이계에서 떠났음을 보여줬다.
이 같은 분위기는 당대표 및 최고위원을 뽑은 7월 전당대회로 그대로 이어졌다. 친박계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홍준표 의원이 당대표에 선출되고 친박계 유일후보로 나섰던 유승민 의원이 2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된 것이다.
최근 마무리 된 시·도당 위원장 선거(호남권 제외)에서도 총 13명의 시·도당 위원장 중 7명이 친박계 인사들로 채워졌다. 이번에 선출된 친박계 인사는 부산 유기준(재선), 대구 주성영(재선), 인천 윤상현(초선), 대전 강창희(원외), 충북 경대수(원외), 충남 김호연(초선), 경북 최경환(재선) 위원장이다. 여기에 친이계인 전여옥 의원을 꺾고 서울시당위원장으로 선출된 이종구(재선) 의원을 친박계가 지지한 인물로 포함할 경우 친박계 시·도당 위원장은 8명으로 늘어난다. 반면 친이계는 서울·부산 등을 모두 내주고 4명의 시·도당 위원장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시·도당 위원장은 지역별 조직 관리를 총괄하고 공직후보자 선출 시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자리다. 이 때문에 친박계의 영향력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친박당화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의 조짐은 박 전 대표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심상찮은 기류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격인 이정현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가) 자신이 본격적으로 나서도 국민이 상식적으로 이해해줄 시점, 기회가 되면 그렇게 할 거고 다가왔다고 생각한다”며 “박 전 대표의 본격 활동 시점이 임박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대통령이 최소 4년간은 일할 수 있도록 경쟁자들이 조용히 있어주는 게 중요한 일이고 지금껏 그리 해오지 않은 게 구태정치이자 잘못된 정치”라며 그동안 박 전 대표의 잠행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배려였음을 시사했다.
친박계의 또 다른 인사도 “일정 정도 준비 단계를 밟은 후 정기국회가 끝나는 연말부터 활동을 본격화해 내년 연초에 선거 사무소를 개소하는 수순으로 대권행보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분과별 전문가들과 일주일에 서너 차례 만나 진행해 온 정책 스터디도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는 얘기도 들린다.
박근혜 전 대표를 핵으로 한 한나라당의 거대한 변화에 대해 민주당이 신경을 안쓰려야 안쓸 수 없는 이유는 이같은 변화가 총선 판도에 미칠 엄청난 파급력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내년 총선의 성격이 ‘회고적 투표’에서 ‘전망적 투표’로 바뀔 수 있다. 총선이 이명박 정부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의 장이 아니라 미래권력들의 경연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다.
역대 어느 선거도 ‘정권 심판론’ 하에 치러질 경우 여당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해 왔다. 이인영 최고위원이 “박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 혼자 심판받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나라당에겐 ‘정권 심판론 = 필패’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밖에 없고, 이는 내년 12월 대망을 꿈꾸고 있는 박 전 대표에게도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철저히 ‘이명박 심판 선거’로 끌고 가야 할 민주당으로선 자칫 ‘박근혜 선거’로 선거구도가 바뀔 수 있는 최근의 변화가 달가울 리 없다.
민주당을 긴장시키는 것은 비단 선거 구도의 변화 가능성만이 아니다. 친이계와 친박계의 갈등과 반목이 사라지고 한나라당을 박 전 대표와 친박계가 장악한다는 것은 향후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탈표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박 전 대표의 전면 등장이 ‘두 집안’이었던 한나라당을 ‘한 집안’으로 만드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치러진 수차례의 재·보궐선거와 2010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약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친박표의 이탈이 큰 도움이 된 게 사실이다. 친박계가 한나라당 울타리 밖으로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유권자들에게 ‘여당 내 야당’으로 인식돼 온 탓이다. 한나라당이 충청권에서 맥을 못추고 부산·경남(PK)마저 더 이상 ‘텃밭’이라 부를 수 없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 전략통으로 꼽히는 한 의원은 “야권이 단지 통합한다고 승리하는 게 아닌 것처럼 단지 박근혜만으로 한나라당이 이길 수도 없다. 뼈를 깎는 변화와 쇄신을 보여줘야 하는데 박 전 대표는 대구·경북(TK)의 ‘올드 보이’들을 청산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이 어떤 식으로 변하든 결국 관건은 야권이 통합과 쇄신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