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준표 대표 체제의 당직자들이 ‘총선 물갈이론’을 주도하는 데 대해 ‘홍 대표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그런데 이들 당 지도부급 인사들의 발언 배경에는 홍준표 대표의 ‘의중’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당직 인선 과정에서 ‘자기사람 심기’ 논란이 나왔던 데 이어 홍 대표가 총선 공천권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나오는 이유도 그래서다. 또한 당내에서는 ‘물갈이 대상’으로 ‘영남 중진급 3선 이상’과 같은 구체적인 기준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의 텃밭이나 다름없는 영남권은 한나라당이 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데다 다선 의원들도 적지 않다. 이들 중엔 친박계 의원들도 다수 포함돼 있어 홍 대표가 또다시 친박계를 ‘견제’하며 당 대표로서의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내홍 조짐을 보이고 있는 ‘총선 물갈이론’의 배경은 무엇이며 진짜 타깃은 과연 누구일까.
“총선 물갈이 얘기는 역대 총선 때마다 나왔던 뻔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번엔 그게 좀 빠르지 않나 싶다. 더구나 홍준표 대표가 당선된 지 불과 한 달 밖에 안됐고 공천 심사위도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물갈이 얘기가 나오고 있는 건 무언가 의도가 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한나라당의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최근 당내에서 불거졌던 ‘총선 물갈이론’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았다. 이 의원 역시 영남권의 3선 이상에 해당되는 이른바 ‘물갈이 대상’이다. 이 의원은 “하지만 공천이라는 게 대표 혼자의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 그러다가 큰코다칠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 체제가 들어선 지 한 달이 넘어섰다. 대표 당선 직후부터 ‘설화’를 빚어왔던 홍 대표가 최근엔 ‘총선 물갈이론’으로 또다시 당내 반발에 휩싸였다. 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는 주호영 의원이 지난달 28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19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대략 40% 중반대의 공천 교체가 있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총선 물갈이론’이 파장을 몰고 오기 시작한 것. ‘40%대’라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등장하자 분위기는 이전과 사뭇 달라졌다. 여기에 ‘홍준표계’인 김정권 사무총장은 지난 2일 경남 창원을 방문해 “연말이 되면 당 중진 의원 가운데 불출마 선언이 잇따를 것”이라고 언급하며 ‘영남권’이 물갈이 대상이 되어야 함을 주장하기도 했다. 연이은 당직자들의 발언은 홍준표 대표의 ‘의중’으로 받아들여지며, ‘총선 물갈이론’ 확산의 ‘중심’에 홍 대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의구심을 보내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파문이 커지자 주호영 위원장은 “인위적인 물갈이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여파는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주 위원장 역시 ‘40%’ 발언에 대해 “17대 때는 42%, 이번 18대 때는 48%였다”며 예년에 비해 높지 않은 비율임을 강조한 바 있다.
부산 대구 울산 경북 경남 등 영남권 68개 지역구 중 3선 이상 의원들의 의석수는 총 18곳. 약 25%다. 이중엔 4선 이상도 7곳이나 포함되어 있으며, 6선의 이상득 의원(포항 남구)과 4선의 박근혜 전 대표(대구 달성)도 ‘해당’된다.
주호영 의원이 언급한 ‘40%’의 물갈이가 성사되려면 이들 중 상당수 인사가 포함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 영남권에는 몇 석을 제외하고는 한나라당이 대다수 지역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중진급 의원들 중에도 친이 성향과 친박 성향, 또 중도 성향의 인사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 물갈이론’으로 더 ‘자극’받은 이들이 친박계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은 왜일까.
이미 홍준표 대표가 “계파활동을 하면 공천을 안 주겠다”는 발언을 하며 당직인선 과정에서 한 차례 친박계를 자극했던 것이 첫 번째 배경이지만, 영남권 의원 중엔 친박계의 ‘상징성’ 높은 이들이 적지 않다.
의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구 수성구 갑의 이한구 의원(3선), 대구 달서구 이해봉 의원(4선), 진해 김학송 의원(3선), 부산 해운대구 서병수 의원(3선), 부산 강서구 허태열 의원(3선) 등 친박계의 핵심의원들이 적지 않다.
특히 서병수 의원은 지난 지도부에서 친박계를 대표하는 ‘유일한’ 최고위원을 지냈고, 허태열 의원은 ‘친박계 대학살’로 불리기도 했던 2008년 18대 총선 공천과정에서도 김무성 의원 등 친박계 핵심인사들이 모두 물갈이 대상에 포함되었을 때 유승민, 서병수 의원 등과 함께 영남권에서 살아남아 3선에 성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총선 물갈이’ 발언의 후폭풍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홍준표 대표는 당대표 당선 직후엔 총선 관련 발언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당시 홍 대표는 ‘총선 전략’에 관해 “아직 총선 정국이 아니지 않느냐”며 말을 아꼈었다. 공천과 관련해서도 “물갈이에 집착하다가는 오히려 이기는 공천을 못하게 될 것”이라며 ‘이기는’ 공천이 가장 중요함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잇따른 당지도부 인사들의 ‘총선 물갈이’ 발언에는 홍 대표의 ‘의중’이 상당부분 담겨 있다고 보는 것이 정설.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홍 대표는 당대표로서의 위상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인물이다. 대표로서 총선을 책임져야 하는 만큼 주류로 올라선 친박계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먼저 친박계에게 일종의 경고장을 보낸 것 아니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당권’을 거머쥔 홍준표 대표가 ‘대권’을 염두에 둔 행보를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차차기 대권을 노리고 이번 총선과 대선 정국에서 최대한 대권 입지를 확보해 놓겠다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이를 위해선 ‘미래 권력’인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 설정이 중요한데 당 대표로서 무조건적 지원이 아닌, 적절한 견제를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홍준표 대표는 당대표 당선 이후 실시된(7월 11일 리얼미터 발표) ‘차기 대선 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4.1%를 기록하며, 김문수 지사(4.0%)와 오세훈 시장(3.8%)을 추월한 바 있다. 또 지난 25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차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는 8.8%로 1위를 기록한 바 있기도 하다(2위 나경원 최고위원(7.3%), 3위 안희정 충남지사 5.5% 순). 현행 당헌 당규상 홍준표 대표는 차기 대선 출마가 불가능함에도 차기 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순위가 급상승했다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홍 대표 역시 이 조사 결과를 보고 만족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사실상 홍준표 대표는 스스로를 ‘대권주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홍준표 대표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한 정치권 인사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대권을 꿈꾸게 마련이지만 홍준표 대표의 권력의지는 남다르다. 결코 당대표에만 머무를 사람은 아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홍 대표는 취임 직후 가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아직 홍준표 시대는 아니다”라면서도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당내에서도 친이, 친박계를 막론하고 홍 대표가 ‘자기 부상’을 위한 ‘총선 물갈이론’을 들고 나온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 친이계 3선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홍준표 대표가 자기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총선 물갈이론을 들고 나온 것 아니겠느냐. 하지만 공천은 그 사람 마음대로 바꾸고 안 바꾸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당내에서 ‘총선 물갈이론’ 파문이 적지 않았음에도, 정작 박근혜 전 대표 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당내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자연스레 ‘물갈이론’에 동참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실상 차기 총선 결과는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영남권은 박 전 대표의 주요 지지기반인 만큼 총선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얻게 된다면 대권가도에도 적잖은 타격을 받게 될 터.
이미 중립 성향의 상당수 의원들이 ‘친박’으로 돌아선 만큼, ‘아쉬울’ 것 없는 박 전 대표로서는 부담스러운 중진들을 이번 기회에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박 전 대표가 직접 나서서 물갈이를 내세우는 부담을 더는 대신, 당의 총선 승리를 명분으로 홍준표 대표의 공천 개혁 방향을 ‘묵과’함으로서 홍 대표의 지원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상득 의원과 같은 영남권 친이 의원들의 입지도 축소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작은 것’(친박 중진)을 내주고 ‘큰 것’(친이 중진의 정리)을 얻는 기회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의 주요 당협위원장 자리를 친박계가 이미 ‘장악’한 상태이고 친박계가 당의 주류로 올라섰기 때문에 지난 총선과 같은 제2의 공천 파동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 비슷한 세력 다툼을 할 만한 ‘반박계’가 구심점을 찾지 못하는 이상, 친박계 내의 주류와 비주류 다툼으로 총선 공천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과연 이 과정에서 홍준표 대표가 박근혜 전 대표의 ‘킹메이커’로 주가를 높여, 두 사람이 모두 ‘윈윈’하는 결과를 얻게 될까. 홍 대표가 겨누는 칼날을 박 전 대표가 좀 더 날카롭게 다듬는 것은 아닌지, 친박계마저도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나이 많은 것도 서러운데…
한나라당에서 불거진 ‘총선 물갈이론’으로 인해 주된 ‘타깃’으로 거론된 영남지역 의원들의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그동안에도 총선 전략에 관한 논의가 내부적으로 진행돼오긴 했으나 당지도부 인사들의 ‘입’을 통해 공식적으로 제기되면서 마치 ‘총선 정국’과도 같은 역풍이 일고 있는 것. 영남권 중진 의원 중엔 친박, 친이 인사들이 고루 포진되어 있다. 과연 이들은 ‘총선 물갈이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영남권의 3선 이상 의원 네 명으로부터 속내를 들어보았다.
친박 성향의 3선인 중진 A 의원은 “선수나 나이순으로 공천에서 탈락시킨다는 것 자체가 상식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초선이면서도 의정활동이나 지역구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 무조건 다선이라고 배제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 A 의원의 말도 일리는 없지 않아 보인다.
A 의원은 ‘공천 기준’으로 “실제로 지역민들과 국민의 의견을 얼마나 대변하고 의정에 기여하는지 정당 입장에서의 대외경쟁력은 얼마나 되는지를 모두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에 ‘공천 물갈이’ 발언으로 파장을 몰고 온 주호영 인재영입위원장에게도 할 말이 많아 보였다. A 의원은 “2004년이나 2008년 역대 총선에서 여야를 불문하고 초선 의원의 비율이 상당히 높아져 왔다. 또 한나라당은 상대적으로 초선의 당선 비율이 더 높았고 정치신인들도 대거 등장했다. 그렇게 한나라당은 ‘늙은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이미 벗어났는데, 앞장서서 그런 발언을 했다는 건 본인이 불안하니까 선수 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역시 친박 성향으로 분류되는 B 의원 역시 “단순히 선수가 높다고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선일수록 지역 현안에 대해 더 잘 꿰고 있으며 지역민들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입장. B 의원은 “지역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라도 중앙 정가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다선 의원이 더 이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부 중진 의원들은 지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부산 지역의 경우 김형오 전 의장(5선), 김무성 전 원내대표(4선), 정의화 국회부의장(4선), 안경률·서병수·허태열 의원(3선) 등 3선 이상이 6명으로 지역구 의원 18명 중 무려 3분의 1에 달한다. 하지만 몇몇 의원을 제외하고는 지역민들의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부산 지역의 한 초선 의원은 “당에서도 ‘얼굴’ 격인 인지도 높은 의원들이 부산에 상당수 포진되어 있으나, 지역민들은 중앙당에서의 인지도보다는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이들을 원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친이계 의원들 사이에서도 물갈이론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부산 기장군의 안경률 의원(3선)은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당이 지나친 물갈이를 하다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함부로 발언할 게 아니라 국민에게 다가가는 정책을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친이계의 3선 C 의원은 “원론적인 이야기 아니겠느냐”며 담담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물갈이 얘기는 선거 때마다 나오는 얘기이고, 40% 역시 이미 여러 번 나왔던 말”이라는 것. C 의원은 ‘총선 물갈이론’ 자체가 홍준표 대표를 둘러싼 당 지도부의 ‘정치적 발언’이라는 시각을 내비췄다. “하반기 정국을 앞두고 정치적인 이슈나 구호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총선 물갈이론을 내세운 것 같다. 아직 공천 심사위원회 등 총선 조직이 마련되지도 않았는데 구체적인 룰 자체가 나올 수가 없다. 현재 발언은 단순히 정치적 구호로 보인다”는 것.
친박계 의원 중에서도 비교적 ‘냉정한’ 입장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역시 3선인 친박계 D 의원은 “18대 총선 때처럼 친박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배제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공천을 당대표가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김정권 사무총장의 발언은 그저 사무총장으로서의 발언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