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언어로 자연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귀로 듣고 냄새로 상상해 자연의 형상을 탐험해가는 시각장애인. 우리가 때론 놓치고 지나치는 것들이 그들의 감각 안에 있다.
시각장애인의 손끝 감각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알아가는 새로운 시도의 자연다큐 UHD 환경스페셜 '실감 터치, 나는 보았네' 편은 국내방송 최초의 점자 원고 내래이션과 함께 한다.
"영상 속으로 직접 들어가서 경험하는 것 같아요."
시각장애인들의 문화와 자연유산에 대한 접근성을 넓히기 위해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은 디지털 문화유산 이동형 체험관을 운용중이다. 세계 최초로 3면 입체 영상과 연동된 점자 이미지를 통해 시각장애인은 화면 해설과 함께 시공간을 넘나드는 영상 속 이미지를 촉각 패드로 체험하게 된다.
바람꽃의 꽃대, 어름치의 지느러미 그리고 설악산에 깔린 구름까지 촉각 패드로 만나는 자연 유산 미디어 실험이 방송사상 최초로 시도됐다.
시각장애인이 자연 다큐 원고를 직접 읽는다. 제작진이 작성한 원고를 하나하나 점자로 옮겨 내레이션을 시도한 고수빈 씨. 그녀는 7살 이후로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지만 당연히 할 수 없다고 여긴 일들을 도전적으로 해내고 있다.
내레이션 읽는 속도와 정확도는 제작진을 놀라게할 정도였다. 다큐에 사용된 음악도 직접 피아노로 연주해 섬세하고 상상력 있는 감성이 살아있다.
"안 보이고 난 후로는 내막을 찾아서 그립니다."
네모난 캔버스엔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들이 좀 특별하게 표현돼 있다. 울퉁불퉁한 새싹, 볼록볼록한 꽃잎 그리고 거칠거칠한 나무기둥까지. 그리고 그 그림을 더듬더듬 완성해 가는 한 사람. 박환 씨는 붓 대신 손으로 입체감을 살려 그림을 그리는 시각장애인 화가이다.
전에는 시각적인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표현했다면 시각장애인이 된 후로는 숨겨진 생명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박환 씨. 그의 독특한 작품을 시각장애인 고수빈씨가 손으로 만져가며 작품의 내용을 파악해간다.
두 사람이 궁극의 감각과 상상력을 동원해 한 폭의 캔버스에서 발견해내는 것은 할머니의 집과 오래된 나무 한 그루였다. 두 사람은 단순하지만 심오한 작품의 주제까지도 공유한다.
바람꽃, 어름치, 물닭, 별자리 그리고 반딧불이. 촉각의 지도를 따라 하나씩 하나씩 점을 이어 선을 그리고 자연의 형상을 새롭게 그려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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