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프로그램에서 ‘공포의 수용소’ 다큐 제작…“카메라 피해 도망가는 임 목사 모습 마치 빌런 같았다”
12년 동안 복지원 철창 뒤에서 행해졌던 수많은 폭력과 살인, 그리고 불법 감금의 실태가 세상에 드러난 지 34년이 지났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끔찍한 범죄 가운데 하나인 ‘형제복지원’ 사건. 이제 이 사건을 바라보는 눈은 비단 국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아랍권 국제 방송인 알자지라의 시사 프로그램 ‘101 이스트’에서는 2021년 12월 형제복지원 사건을 재조명해 ‘공포의 수용소’(South Korea's House of Horror)라는 제목으로 5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호주 기자들로 구성된 제작진들은 호주로 흘러 들어간 박인근 원장 일가의 재산과 복지원의 이사였던 임 아무개 목사의 행방에 주목했다고 했다.
일요신문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마리 안 졸리 기자와 수잔 김 PD를 1월 25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2시간 가까이 화상 회의 플랫폼 ‘줌’을 통해 인터뷰했다. 취재를 맡은 마리 안 졸리는 ‘말레이시아 나집 전 총리의 부패스캔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을 다수 취재한 베테랑 기자다. 그는 “오랜 시간 많은 사건을 취재해보았지만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일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마리 안 졸리를 도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수잔 김 PD는 “마리 안 졸리와 2016년 처음 형제복지원 사건을 접한 뒤 꼭 취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2020년 5월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본격적으로 사건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며 “일요신문과 부산일보 기사,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등을 보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접했고 호주에 남겨진 박 원장 일가의 재산과 임 목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동안 국내 언론에서 쉽게 취재하지 못했던 호주 교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한편, 박 원장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골프장을 방문해 임 목사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특히 임 목사로부터는 선뜻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답변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승낙을 받은 다음날, 임 목사는 돌연 “교회에 폐가 될까봐 안 되겠다”며 인터뷰를 취소했다.
임 목사와 30분가량 통화를 한 수잔 김 PD는 “우리가 만난 피해자들은 ‘죽기 전에 꼭 한 번 사과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임 목사에게 해명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며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끝내 만남을 피했다”고 말했다.
임 목사는 반성은커녕 모든 것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수잔 김 PD는 “임 목사도 제작진이 취재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이미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는 상태였다”며 “전화로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뭘 사과하라는 말이냐’라고 되물었다. 형제복지원에서 이사로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웃으면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고 회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제작진이 이들의 가족 교회를 직접 방문하자 격앙된 모습을 보이며 황급히 자리를 떠나기도 했는데. 마리 안 졸리 기자는 이 모습이 마치 “빌런(범죄자)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임 목사와 박 원장의 딸이 크게 화를 냈다. 제작진을 향해 ‘만지지 말라’고 경고하는가 하면 매우 격앙된 모습으로 차에 오르며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그에게서 목사로서의 자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임 목사는 한국에서의 과거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호주 교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교민들은 임 목사가 그저 복지원에서 일한 여러 직원 가운데 한 명이었을 뿐, 실질적으로 범죄에 가담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마리 안 졸리와 수잔 김은 “임 목사가 형제복지원에서 이사였다는 사실을 아는 교민들은 없었다. 대부분 그가 형제복지원 내 교회의 목사였으며 그 교회 역시 평범한 교회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형제복지원 사건이 한인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지면서 교회 규모를 더 키우지는 못했지만 임 목사는 다른 교회에 설교를 다닐 정도로 유명 인사였다”고 말했다.
한편, 박 원장의 셋째 딸과 그 사위는 박 원장이 1995년 매입한 땅과 골프장을 다시 매물로 내놓은 상태다. 복지원의 실상이 드러난 이후 서둘러 이를 처분하려는 목적으로 보이는데, 생각처럼 쉽게 팔리진 않는 것으로 보인다. 골프장의 원래 가치보다 더 비싼 가격에 내놓은 탓이다.
마리 안 졸리 기자는 “골프장은 2019년부터 매물로 나왔는데 그 동안 잘 팔리지 않았다. 인근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박 원장 일가가 시세보다 더 높은 금액에 땅을 내놓았다”며 “직접 보니 골프장이나 테니스 코트 등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상한 점은 이런 상태에서도 불구하고 임대비 명목의 수익은 꾸준히 들어왔다는 것이다”라고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이 골프장이 제3자에게 매각되면 박 원장 일가의 재산을 몰수하는 일은 첩첩산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진실화해위원회와 한국 정부가 임 목사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리 안 졸리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일부 교민들은 임 목사 및 박 원장 일가와 아는 사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조차 꺼려하고 또 부끄러워했다. 그런데 정말 부끄러운 일은 이런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덮고 묵인하는 것”이라며 “2016년 박인근이 사망했으니 이제 그 안에서 있었던 일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임 목사다. 진실화해위원회와 한국 정부가 임 목사를 송환해 증언대에 세우고 횡령 혐의가 드러나면 자산에 대한 동결 조치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자지라 ‘101 이스트’의 형제복지원 다큐멘터리 ‘공포의 수용소’(South Korea's House of Horror)는 유튜브에서도 시청할 수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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