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서북경찰서는 지난 8월 2일 새벽 6시께 부인 정 아무개 씨(36)와 돈 문제 등으로 말다툼을 벌이다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남편 박 아무개 씨(37)를 붙잡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박 씨는 법적으로 여성이지만 유방을 절제하고 남자행세를 하며 살아왔다. 정 씨는 법적으로는 남성이지만 성전환 수술 뒤 여성으로 살아왔다. 두 사람은 지난 2004년부터 지난달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해 온 부부였다. 하지만 금전적인 문제로 자주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두 사람은 결국 지난달 20일 이혼했다. 그로부터 10여 일 지난 2일 남편은 아내를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7년여의 결혼생활을 비극으로 끝낸 트랜스젠더 부부의 살인 사건 내막을 알아봤다.
박 씨와 정 씨는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부부와 다름이 없었다. 남자치고는 170㎝가 채 안 되는 다소 작은 키지만 짧은 머리에 덩치가 있던 박 씨는 누가 봐도 건장한 남성의 모습이었다. 박 씨는 견인차·콜밴 운전기사로 일했을 당시에도 동료들에게 “형님” “선배”라고 부르며 철저히 남성으로 살아왔다. 때문에 동료들도 박 씨를 남자로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박 씨는 법적으로는 엄연히 여성이었다.
반면 부인 정 씨는 긴 생머리에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누가 봐도 틀림없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정 씨 역시 법적으로는 남성이었지만 성전환 수술을 받아 영락없는 여성의 모습을 갖췄던 것으로 전해졌다.
1999년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교제 당시에도 이런 서로의 성적 취향을 알고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5년여 교제 끝에 두 사람은 2004년 정식으로 결혼에 이르렀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부인 정 씨는 술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며 남편 박 씨의 빚을 갚아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최근 박 씨가 운전기사 일을 그만두고 특별한 직업 없이 지내면서 다툼은 잦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박 씨가 인터넷 도박 게임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증폭됐다. 경찰조사 결과 박 씨는 인터넷 도박 게임에 빠져 부인 정 씨가 모은 5000만 원을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두 사람은 지난달 20일 협의 이혼했다. 4주간의 이혼 숙려 기간제도에 따라 오는 8월 20일이면 남남이 되는 두 사람이었지만 지난 2일 결국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사건 당일 새벽 6시께 술에 취한 남편 박 씨는 부인 정 씨의 아파트로 찾아가 돈 문제로 정 씨와 심한 말다툼을 벌였다. 다툼 후에도 분이 풀리지 않던 박 씨는 결국 잠들어 있던 아내를 목 졸라 살해했다.
이후 박 씨는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오후 1시 30분경 동네 선배인 A 씨에게 전화해 “집에 일이 있다. 술 한잔 하자”고 말했다.
천안시 동남구 유량동의 한 오리고깃집에서 A 씨를 만난 박 씨는 술을 마시던 중 “오늘 새벽에 아내를 목 졸라 살해했다”고 고백했다. 처음 박 씨로부터 이 소리를 들었을 때 A 씨는 너무 놀랬고 한편으론 섬뜩한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A 씨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박 씨와 함께 정 씨의 아파트로 향했다.
집에 들어선 A 씨는 소파에 가지런히 누워 있는 정 씨를 발견했다. 긴 머리에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 마치 자고 있는 듯했다. 김 씨는 우선 생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 씨의 코에 손을 갖다 대 숨을 쉬는지 살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음으로 A 씨는 맥을 짚어봤다. 역시나 싸늘한 시신이 돼버린 정 씨의 맥은 뛰지 않았다. 박 씨 말대로 정 씨의 목에는 졸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정 씨의 사망을 확인한 A 씨는 “경찰에 신고하자. 도망가지 말라”며 침착하게 박 씨를 설득했다. 지난 8월 2일 오후 6시 10분께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에 출동한 천안 두정지구대 소속 경찰관은 현장에서 A 씨와 함께 있던 박 씨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의 출동에 박 씨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자신의 범행을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관계자는 “박 씨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지만 살해동기 등에 대해선 추가로 조사 중이다”고 밝혔다.
경찰은 정 씨의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맡기기로 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