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명은 봄에 태어나 여름에 번성하고 가을에 무르익어 겨울에 소멸한다. 그리고 겨울의 초입 한 생의 마감을 위로하고 다음 생을 기약하는 눈, 서설이 내린다.
'버들치 시인' 박남준이 한반도에서 가장 늦게 가을과 겨울이 도달하고 가장 먼저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두륜산에 올라 자연이 건네는 위로를 전한다.
지리산 자락에 살며 풀꽃과 나무, 벌레, 새, 별 등 자연을 소재로 시를 쓰는 '버들치 시인' 박남준. 에너지를 덜 쓰는 삶을 살기 위해 산에 들어온 시인은 화장실 거름으로 텃밭 채소를 살찌우고 그 밭에서 난 채소를 먹고 산다.
되도록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는 시인에게 자연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순환은 경이로운 이벤트. 한반도의 마지막 가을을 배웅하기 위해 길을 나선 시인이 두륜산에서 생의 순환을 엿본다.
해발 703m 백두대간의 땅끝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두륜산은 동백나무 등 상록활엽수림과 신갑나무 등 낙엽활엽수림, 소나무 등 침엽수림이 혼생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 천연기념물 173호로 지정된 왕벚나무 자생지이면서 멸종위기 야생동물 삵, 팔색조, 솔개, 비단벌레 등 야생동식물의 생태계가 매우 다양하고 우수해 환경부에서 생태계 변화관찰지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늦게 가을이 찾아온 두륜산 자락 지난 계절 나무와 곤충을 살찌우던 푸른 잎은 작별의 계절을 맞이해 붉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제 역할을 끝낸 단풍은 낙엽 비가 되어 내리고 물길을 따라 흘러 흘러 흙으로 돌아간다. 담비와 다람쥐는 겨울 양식을 미리 준비하고 애기사마귀는 품고 있던 알집을 떨어뜨리고서야 치열했던 한 생을 마감한다.
시인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고즈넉한 산속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순간에도 자연의 순환, 그 아름다운 질서는 흐르고 있다.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 한 송이도, 불어오는 한 줌 바람도, 시인에겐 자연의 모든 것이 스승이다. 자손을 퍼뜨리려고 빨간 열매로 새들을 유혹하는 청미래덩굴, 따뜻한 햇볕 아래 철모르고 피어 있는 고운 진홍색 철쭉, 두륜산 가련봉 어귀에서 세찬 바람을 피해 바위틈에 몸을 숙이고 저 홀로 단단하게 서 있는 쑥부쟁이. 두륜산에서 만난 모든 생명은 그들의 인생으로 저 나름의 시를 쓰고 있다.
한 생이 저문 자리 소복한 눈이 내려앉은 두륜산 중턱에서 시인은 묻는다. 우리 삶은 자연의 한 페이지에 어떤 시를 쓰고 있는가.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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