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스타 출신 로사도 코치와 MLB 공인구로 캐치볼…‘한국 입국’ 전 동료 푸이그에게 덕담
류현진이 2012년 이후 10년 만에 한화 선수단과 스프링캠프를 함께했다. 노사 합의 불발로 MLB 직장 폐쇄가 두 달째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류현진은 원래 1월까지 한국에서 몸을 만든 뒤 2월 초 토론토 스프링캠프가 열리는 미국 플로리다로 떠나 본격적인 시즌 준비를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31년 만의 MLB 직장 폐쇄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미국에 일찍 도착하더라도 구단 시설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고민하던 그는 친정팀인 한화에 “선수단 일정에 방해가 안 되는 선에서 훈련을 함께하고 싶다”고 문의했고, 한화는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류현진 뜨자 거제가 들썩
류현진은 설 연휴가 끝난 3일 경남 거제 하청스포츠타운에 차려진 한화 캠프에 합류했다. 한적하던 야구장 주변은 전국에서 모인 40여 명의 취재진으로 북적였고, 카메라 여러 대가 류현진의 일거수일투족을 포착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류현진은 “10년 만에 이렇게 한화 선수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좋다. 나도 설레고, 즐겁게 훈련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도 미국 애리조나와 일본 오키나와에서 (한화에서의) 마지막 캠프를 치르던 때가 여전히 생생하다”고 웃어 보였다.
2012년은 한국인 최초의 빅리거였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고향팀 한화에 입단해 선수 생활의 대미를 장식한 시즌이다. MLB에서 한국 야구의 위상을 높인 두 거물 투수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뛴 한 해였다. 류현진은 “그때 캠프에 박찬호 선배가 오셔서 신기해하면서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함께 훈련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됐다”고 떠올렸다.
친정팀 동료들을 만난 건 반갑지만, 마음이 마냥 편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류현진은 지난 9년 동안 MLB에서 73승 45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20을 올렸다. 빅리그 10년 차가 된 올해, ‘에이징 커브’ 우려를 딛고 여전히 좋은 투구를 해내겠다는 의욕이 크다. 그런데 시즌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2월을 평소와 다른 루틴으로 보내게 됐다.
류현진은 “(2월이) 선수들에게는 중요한 시기라 (직장폐쇄가) 아쉬운 건 사실이다. 지금 나뿐 아니라 모든 선수가 똑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한다”며 “직장폐쇄가 언제 풀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정상 페이스로 준비하고 있다. 선발 투수로서 시기에 맞는 투구 수를 소화해가면서 차근차근 계획한 대로, 순리대로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화 선수들은 빅리그에서도 정상급 투수로 자리매김한 류현진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류현진은 “특히 장민재가 크게 환영해줬다”며 웃었다. 장민재는 매년 겨울 류현진과 개인 훈련을 함께한, 절친한 후배다. 하지만 류현진을 기다린 건 장민재만이 아니다.
신인 시절 류현진과 함께 뛴 주장 하주석은 “젊은 투수들에게 엄청난 도움이 될 것 같다. 현진이 형은 항상 한화에 애정을 갖고 있으니, 후배들에게 미국에서 경험한 부분을 많이 가르쳐 줄 거다. 나 역시 많은 걸 배울 기회”라며 “가장 먼저 ‘한화에 언제 다시 돌아올 거냐’고 물어 보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류현진 이후 처음으로 한화 국내 투수 14승을 올린 김민우도 “류현진 선배님은 워낙 대단한 선수 아닌가. 훈련하는 걸 옆에서 보기만 해도 선수들이 충분히 얻을 게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좀 더 배우고, 얻어가겠다”고 했다.
이뿐 아니다. 올해 신인 2차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한화에 지명된 투수 박준영은 지난달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류현진 선배님 경기를 많이 봤다. ‘한국 선수도 MLB에서 저렇게 잘할 수 있구나’ 싶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며 특별한 ‘팬심’을 고백했는데, 프로 첫 스프링캠프를 바로 그 롤모델과 함께하는 행운을 잡았다. 박준영은 “쑥스러워서 차마 말을 걸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기분 좋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류현진 역시 친정팀에 힘을 불어넣고 싶은 의지가 크다. 한화는 지난 2년간 최하위에 그쳤고, 올해도 하위권 전력으로 분류된다. 리빌딩에 한창이라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꾸려나가고 있다. 류현진은 한화의 후배들에게 ‘실수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실수한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후배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다른 사람이 아닌) 본인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반드시 한화로 돌아와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거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고 거듭 약속했다.
#캐치볼 첫 상대는 ‘올스타 투수’ 로사도
인터뷰를 마친 류현진은 오후 훈련 시작 전 하청스포츠타운에 모여든 어린이 팬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 또 한화 선수단의 환영 박수 속에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러닝과 캐치볼 등으로 몸을 풀었다. 대럴 케네디 한화 작전·주루 코치는 훈련 전 둥글게 모인 선수들에게 류현진을 소개하면서 “이 기회를 놓친다면 바보다. (류현진에게) 무엇이든 질문하라. 여러분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독려했다. 류현진 역시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류현진은 캐치볼을 앞두고 마땅한 상대를 찾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다. 한화 선수들은 KBO리그 공인구로 캐치볼을 했지만, 류현진은 MLB 공인구인 롤링스 공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가장 적절한 인물이 나타났다. 난감해하며 서 있던 류현진에게 호세 로사도(48) 한화 투수코치가 다가와 캐치볼 파트너를 자청했다. 왼손 투수였던 로사도 코치는 캔자스시티 로열스 소속이던 1997년과 1999년 두 차례 MLB 아메리칸리그 올스타로 뽑힌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류현진도 LA 다저스 시절이던 2019년 올스타전에 내셔널리그 선발 투수로 출전한 경험이 있다.
빅리그 올스타 출신인 전·현직 투수들이 캐치볼을 하는 뜻밖의 명장면에 주변 한화 관계자들의 감탄사가 터졌다. MLB 마운드에 섰던 외국인 투수 닉 킹험이 곁으로 다가와 흥미롭게 지켜보기도 했다.
로사도 코치는 투수조 훈련이 끝난 뒤 “캐치볼 파트너가 없는 것 같아서 내가 먼저 다가갔다. 류현진은 한국을 대표하는, 높은 레벨의 선수다. 함께 캐치볼을 해서 영광이었고, 코치로서 좋은 경험을 했다”고 몸을 낮췄다. 로사도 코치는 또 “이번 캠프를 통해 류현진과 한화 선수들이 서로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은 류현진이 가진 것을 많이 배울 수 있을 거고, 류현진도 (이런 시기에) 한화와 함께 훈련하는 게 시즌 준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반겼다.
#다저스 옛 동료 푸이그도 한국 왔다
류현진이 친정팀 한화에서 모처럼 추억에 젖은 날, 또 한 명의 옛 동료가 한국 땅을 밟았다. 2013년 류현진과 다저스에서 빅리그 생활을 함께 시작했던 야시엘 푸이그(32)다. 올해 키움 히어로즈와 계약해 KBO리그에서 뛰게 된 푸이그는 이날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자가 격리를 시작했다.
류현진과 푸이그는 2013~2018년 다저스에서 함께 뛴 사이다. 더그아웃에서 푸이그가 류현진에게 친근하게 장난을 치는 모습이 TV 중계 화면에 자주 잡히기도 했다. 푸이그는 다저스 시절 놀라운 신체 능력으로 주목받았지만, 잦은 지각과 돌출 행동으로 물의를 빚어 2020년부터 MLB에서 뛰지 못했다. 키움이 큰 맘 먹고 푸이그를 영입했다는 소식에 한국 야구팬의 관심이 쏟아졌다.
류현진은 푸이그와 관련한 질문을 받자 “푸이그가 한국에 온 건 대단한 도전인 것 같다”며 “한국 야구가 처음이라 낯설긴 할 것이다. (쿠바 출신인) 푸이그가 미국에 처음 갔을 때처럼 빨리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 적응만 잘하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새 출발을 응원했다. 이어 푸이그의 자유분방한 성격 얘기가 나오자 “미국과 한국은 더그아웃 문화에 차이가 있지만, 푸이그가 억지로 자신의 성격을 바꿀 필요는 없다”며 “푸이그처럼 파이팅 있는 선수가 벤치에 필요할 수 있다. 성격이 착한 선수라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감쌌다.
관건은 푸이그와 키움 선수들의 ‘케미’다. 악명 높은 푸이그의 존재감과 유명세가 기존 한국 선수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류현진은 “처음에는 (다른 선수들이) 푸이그에게 다가가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곧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푸이그 역시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첫 번째 한국인 친구’인 류현진에게 한국 도착 사실을 알렸다. 다저스 시절 류현진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나의 형제여, 나는 지금 당신의 나라에 있다. 곧 만나게 되길 빈다. 보고 싶다”고 썼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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