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민주당 대표실에서 가진 수해대책 토론회에서 손학규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지난 8월 10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출입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자신의 지지율 제고 방안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뒤지는 것은 물론 야권 대선주자 1위 자리도 아직 정치활동을 개시하지도 않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 내준 그였지만, 다소 예민할 수도 있는 질문에 그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가 여론에 둔감해서일까? 아니면 아직 여유롭게 호기를 부려도 될 만큼 그가 처한 상황이 녹록한 걸까? 둘 다 아닌 것 같다. 그의 무덤덤함 속에는 2012년 12월 19일을 향한 손학규의 플랜, 즉 집권 전략이 담겨 있는 듯하다. 지지율 반등을 위한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안팎의 지적을 비웃기라도 하듯 손 대표는 ‘누가 뭐라든 내 길을 간다’는 일종의 ‘마이 웨이(My Way)’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손 대표의 대선 전략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손학규식 마이 웨이’란 현장 진보, 대안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는 진보를 말한다. 그의 말을 빌어 쓴다면 ‘민생진보’다. 말로만 떠들어서는 안되고 국민들 마음 속에 ‘나라를 맡겨도 되겠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진보가 돼야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 대표가 이날 간담회에서 지난 1월부터 자신이 벌여온 현장 활동 ‘동고동락 민생실천’ 프로그램의 성과를 평가한 대목은 이 같은 그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그는 “민주당이 한국 사회 대립의 일선 현장에 있고, 단순히 있는 게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고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또 “대기업의 횡포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해 삼성과 SK의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 사업(MRO)’ 포기나 사회적 기업 전환 같은 진전된 반응을 이끌어냈다”면서 “이는 민주당이 실질적으로 얻어낸 성과이고, 우리는 변화를 선도해 나간다는 자부심이 있다”고도 말했다.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진보가 살 길’이라는 손 대표의 고집 앞에선 당 안팎의 비판도 어림없는 모양새다. 정동영 천정배 최고위원 등이 한진중공업 농성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희망버스’ 동행을 수차례 요구했음에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이정희, 권영길, 심상정, 노회찬 등 다른 야당 대표들이 하나같이 몰려가 물대포를 맞을 때에도, 공개석상에서 노골적인 비판이 잇따를 때에도 손 대표는 ‘희망버스’ 출정에 대해서는 “정동영 최고위원이 맡아서 잘 해달라”고 말할 뿐이었다. 오히려 손 대표는 “지금도 ‘희망버스’를 안 탄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당대표로서 내가 할 일이 따로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과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야권 통합 논의에 당대표가 직접 나서라는 정세균 최고위원 등의 요구에 대해서도 손 대표는 손사래를 쳤다. 당 야권통합특위 위원장인 이인영 최고위원에게 통합 협상을 위임한 채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손 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 “제1야당은 책임이 있고, 제1야당이 움직이려면 적절한 시기와 형태를 골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4ㆍ27 재ㆍ보궐선거 당시 전남 순천과 경남 김해을 국회의원 선거를 다른 야당들에 양보했던 사실을 강조했다. 말로만 요란 떨지 않았을 뿐 야권 통합을 위해 누구보다도 헌신하고 희생했다는 것이다.
손 대표의 이 같은 행보는 선명성이 생명이랄 수 있는 야당 대표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고만고만한 야권 대선주자들과 도토리 키재기하듯 지지율 경쟁을 벌이고 있는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손 대표는 왜 이처럼 ‘마이 웨이’를 계속하고 있을까.
우선 그의 소신이 그런 것 같다. 손 대표는 자신의 정치관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는데 정치를 기준으로만 보면 그런 얘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정치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저축은행 사태 현장에 찾아가 얘기를 듣고 구체적 해법을 제시하는 것, 그 이상의 정치가 있겠나. 대기업 횡포를 구체적으로 적나라하게 제시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이상의 정치가 있나. 내가 하는 정치가 가장 바른, 가장 옳은 정치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정치를 왜 싫어하는가. 국민이 싫어하고 혐오하는 그 정치를 하지 않으면 정치 단수가 낮다? 그것은 거부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손 대표의 ‘마이 웨이’는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한 차별화 전략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노무현의 성공’을 목도했던 다른 야권 대선주자들 대부분이 선동가형 이미지, 승부사형 이미지를 구축하려 애쓰는 것과는 정반대다. 멋드러지고 감정이 북받쳐 오르게 하는 연설, 선두에 서서 대여 투쟁을 이끄는 모습으로 국민들의 ‘심장’을 두드리기보다는 차갑고 냉철한 판단으로 성과를 냄으로써 안정적이고 검증된 지도자의 이미지를 국민들의 ‘머리’에 심으려 한다는 것이다.
손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이와 관련, “당장은 지지율을 반등시키지 못하더라도 손 대표가 자기 페이스, 자기 색깔을 잃고 ‘좌클릭’해선 안된다. 그랬다간 ‘본 게임’에서 발목잡힐 수 있다”고 말했다. 진보 세력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고려할 때 선동가형ㆍ승부사형 지도자로는 승산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한 전략이라 해도 손 대표의 ‘마이 웨이’가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우세한 상황이다. 손 대표가 한나라당을 버리고 진보 진영에 몸 담은 지 4년, 민주당 대표가 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국민들 속에 존재감 있는 지도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이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되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에서 전략통으로 꼽히는 한 의원은 손 대표 대권전략의 심각한 결함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손 대표의 ‘마이 웨이’는 그가 야권 단일후보가 돼야, 다시 말해 본 게임에 가서야 빛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자리까지는 자동으로 가는 게 아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