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돔에서 열린 한ㆍ일 국가대표축구팀 친선경기.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쇄도하는 혼다 게이스케를 저지하려 하고 있다. 연합뉴스 |
# 돌발상황에 무너진 한국
8월 10일 오후 9시44분 삿포로 돔 인터뷰 룸. 얼굴이 잔뜩 불거진 채 자리에 착석한 조광래 감독은 “모든 게 예상한 대로 이뤄지지 못해 소극적인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약속드렸던 좋은 경기를 축구 팬 여러분들께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딱딱한 소감을 전했다.
축구 담당 기자들을 만나면 항상 유쾌했고, 종종 농담을 던지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소위 ‘미디어 프렌들리(친 언론관)’의 선두 주자인 조 감독이지만 라이벌에게 패한 뒤 드리워진 어두운 표정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사실 조 감독이 당시 공식 인터뷰에서 아주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결과론이지만 삿포로 원정을 대비하는 동안 점점 대표팀이 원치 않았던 시나리오가 착착 쓰여지고 있었다. 특히 선수 소집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지난 두 시즌 동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맹위를 떨쳐왔던 이청용(볼턴)이 올해 여름 프리시즌 연습 경기 도중(그것도 5부 리그 클럽과의 대결에서)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고 소집에 합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믿었던 손흥민(함부르크)도 감기 몸살과 고열 증세로 차출에 응할 수 없었다는 연락을 해왔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K리그 전남 드래곤즈를 떠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선덜랜드AFC로 이적한 지동원에게는 일본 원정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특별한 혜택을 조 감독이 부여해 정상적인 전력을 갖출 수 없었다.
회복 가능한 손흥민은 차치하고, 9월부터 시작될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을 앞두고 있던 터라 ‘부동의 오른쪽 날개’였던 이청용의 공백은 대표팀 입장에서 대단히 큰 타격이었다.
대표팀은 8월 8일 삿포로 현지에 입성한 뒤에도 내내 이청용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최적의 카드 찾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를 선택하는 데 주력했다. 일단 태극마크를 반납한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맡았던 왼쪽 윙 포워드 자리에 이근호(감바 오사카)가 주인공으로 낙점된 가운데 구자철(볼프스부르크)-남태희(발랑시엔) 등 영건 유럽파가 오른쪽 측면 자리를 놓고 경합했다.
조 감독은 일찌감치 구자철 선발 카드에 좀 더 무게를 뒀으나 해당 포지션에 대한 ‘첫 경험’이란 변수는 무시할 수 없었다. 구자철은 1월 카타르 아시안컵 당시 원톱으로 나선 지동원(선덜랜드)의 뒤를 받치는 섀도 스트라이커 역할을 부여받은 적이 있으나 측면은 낯설었다. 조광래호는 바로 이 점을 간과했다.
결전에 돌입한 이후에도 모든 게 의도와는 정반대였다. ‘포스트 박지성’ 임무를 부여받은 이근호는 실책을 연발하며 결국 일본 특급 카가와 신지(도르트문트)에 결승골의 빌미를 제공했고, 교체 아웃의 수모를 겪었다.
수비진도 불안했다. ‘포스트 이영표’로 올해 초부터 조금씩 자리를 굳혀왔던 김영권(오미야)의 발목 부상과 그를 대신해 교체 투입된 왼쪽 풀백 서브 요원인 박원재(전북)마저 일본의 특급 미드필더 엔도 야스히토의 강한 슛을 얼굴에 맞고 뇌진탕 증세로 병원에 실려 갔다. 박원재가 귀국 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신이 하나도 없다. 벤치에서 축구화 끈을 묶은 것까진 기억나는데, 이후 상황은 전혀 모르겠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
전술의 일부 변화도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당초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계획하고, 일련의 훈련 과정을 통해 최종 선택이 유력해 보였던 4-2-3-1 포메이션 대신 4-1-4-1 시스템이 일본전 당일에 나왔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성용(셀틱)만을 기용하고, 이용래(수원)와 김정우(상주)를 전방 라인업에 가깝도록 포진시켰던 것. 애초에 기성용과 이용래를 더블 볼란치(수비형 미드필더)로 내세운 가운데 김정우를 전진 배치한다는 구상이었지만 다른 선택을 했다.
물론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난 우리 선수들이 좀 더 공격적으로 했으면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다. 수비 포지션에서도 이영표처럼 공격적인 선수들을 투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던 조 감독은 홈 어드밴티지를 등에 업고 강하게 공격 축구를 펼칠 일본을 상대로 ‘정공법’을 펼치기 위해 대처 전략을 준비한 것이다.
결국 조 감독이 원했던 ‘만화 축구’는 바로 일본이 했다. 전방 프레싱도, 동경의 대상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FC바르셀로나가 추구하는 완벽하고 화려한 패싱 축구도, 늘 강조하곤 했던 ‘포어 체킹’도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 치밀하게 준비한 일본
일본은 치밀하게 준비했다. 자국 J리그에서 활약하는 젊은 국내파를 따로 불러 소집시켜 강화 훈련을 했고, 해외파는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대로 정상적인 일정에 따라 손발을 맞췄다. 이에 반해 한국 대표팀은 항상 시간에 쫓겨 왔다. A매치가 펼쳐질 때면 조광래호는 2~3일 앞두고 파주NFC에 모여 두어 차례 호흡을 맞춘 뒤 실전에 임했다.
정황이 이럴진대 조직력이 완벽하길 바라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케로니 감독이 일본의 젊은 국내파 선수들을 조련한 8월 1일부터 3일까지의 시간 동안, 한국에선 새로이 몸담을 팀을 찾지 못한 채 방황 중인 ‘캡틴’ 박주영(AS모나코)이 개인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조 감독의 주장 기량 되살리기 프로젝트에 따라 박태하 수석코치와 서정원 코치, 브라질 출신의 가마 리마 피지컬 코치까지 3명의 코치진이 달라붙었지만 100% 몸 상태를 회복할 수는 없었다. 이런 짧지만 소중했던 강화 훈련을 통해 자케로니 감독은 일본 올림픽 대표팀에서도 뛰는 22세의 스트라이커 기요타케 히로시(세레소 오사카)를 선발했고, 기요타케는 전반 35분 컨디션이 좋지 않던 오카자키 신지(VfB 슈투트가르트)를 대신해 투입된 뒤 후반 8분과 10분 2차례에 걸쳐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A매치 데뷔 전에서 평생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한국전에서의 기적을 새내기가 직접 작성한 셈이었다.
현장에서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일본 내 최고 유망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기요타케에 대한 유럽 클럽들의 관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닛칸스포츠>의 8월 10일자 보도에 따르면 마르세유, 릴OSC(이상 프랑스), 페예노르트(네덜란드) 등이 스카우트를 한·일전에 파견했다.
특히 <닛칸스포츠>는 릴이 당초 박주영의 영입을 강하게 희망했지만 보다 젊은 에이스에게 눈을 돌렸고 결국 기요타케에게 시선이 꽂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단 한 번의 평가전이었지만 유럽 축구 스카우팅 마켓에서 한 걸음 뒤처지게 됐다는 쓰라린 아픔도 고스란히 한국 축구가 떠안게 됐다.
한국의 선수 소집은 이번 원정에서 굉장히 심각했다. 기성용은 셀틱에서 주말 리그 경기를 마치고 삿포로로 이동하던 중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트위터를 통해 “지금 내 상태를 보니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이라며 지친 몸 상태를 여실히 드러냈다. 그리고 기성용과 차두리가 삿포로 현지에 당도한 것은 8월 9일로 이날 딱 한 번 동료들과 풀 트레이닝을 진행하고 곧바로 경기에 나섰다.
일본 자케로니호에 발탁된 14명의 유럽파는 전부 8일까지 캠프 입소를 완료했고, 두 번에 걸쳐 호흡을 맞췄다. 과거 한국전에선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던 혼다 게이스케(CSKA 모스크바)는 0-1로 뒤진 한국의 추격이 막 탄력을 받으려던 후반 초반에 쐐기골을 터뜨리며 다시 한 번 주가를 폭등시켰다.
일본축구협회(JFA) 실무 관계자의 표현대로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다’던 자케로니 감독은 정확히 한국의 약점만을 찔렀다. 카가와 신지는 아예 대놓고 “패스를 하면 공간이 생겼고, 드리블을 하면 한국 수비수는 따라오지 않았다”며 조롱했다. 한국 유럽파는 일본 유럽파에게 맥을 못췄다.
분위기에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삿포로 입성 첫날에 조광래호가 훈련장으로 배정받은 곳은 충격에 가까웠다. 축구 인프라에서 아시아 최고를 자랑하는 일본이지만 한국 쪽에 시라하타야마 경기장을 내줬다. 삿포로 시내 외곽에 떨어진 이곳 잔디 상태는 엉망이었다. 그라운드는 군데군데 움푹 패여 있었고, 조명 시설이 좋지 못해 가까운 동료들에게 패스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었다. 또한 수많은 모기들과 이름 모를 벌레들이 곳곳에 출몰해 선수들은 틈날 때마다 손을 휘젓고 피부가 노출된 부위를 긁어대는 이중고를 치러야 했다.
일종의 텃세였다. 조 감독과 코치들이 “평생 이렇게 허술한 그라운드를 일본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두른 것도 괜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시라하타야마 경기장을 내주도록 한 것도 JFA의 치밀한 계산에서 이뤄진 시나리오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보면 일본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고, 당시 나돌았던 ‘자케로니가 직접 한국에 나쁜 훈련장을 제공하도록 주문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더라도 할 말이 없다. 한바탕 이색적인(?) 훈련장 환경 적응에 애를 먹은 조광래호는 돔구장에서의 최종 훈련도 힘겹게 진행했다. 돔구장 경험이 거의 없는 선수들은 내내 “왠지 답답하다. 호흡이 불편하다”고 호소했다.
조명 역시 탁 트인 일반 스타디움과는 차이가 있었고, 공기 밀도의 차이로 일반 스타디움에 비해 볼의 속도에 영향을 끼쳤다. 한국 골문을 지킨 수문장 정성룡은 “꼭 남아공에서 일어난 걸 되풀이하는 것 같다”고 했다. 고지대에서처럼 볼을 컨트롤하는 데 어려웠다는 의미었다.
# 대표팀 부활 프로젝트
주변 정황도 이래저래 좋지 못했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전 일본 대표 마쓰다의 추모 분위기는 ‘마쓰다의 영전에 승리를 바치겠다’고 선언한 일본 선수들이 정신력을 고취시키는 데 매우 적합한 요소였다.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에서의 ‘원숭이 세리머니’로 가장 많은 일본 안티 팬을 거느리게 된 기성용에 대한 적대적인 시선과 일방적인 야유도 가뜩이나 피곤한 기성용을 괴롭혔다. 또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이 한·일전 당일 이뤄져 선수단 내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다행히 모든 걸 앗아간 건 아니다. 화합과 위기의식이라는 소중한 선물도 함께 안겼다. 한·일전 패배 직후, 항간에서는 한바탕 올림픽 홍명보호와 연계된 선수 차출과 관련한 조율 문제로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대립각을 세운 대한축구협회 내 고위층이 잔뜩 벼르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단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조중연 협회장은 경기 직후, 조 감독의 어깨를 두드리며 “한국 축구를 다시 일으켜 보자”는 격려의 메시지를 던졌다. 조 회장과 함께 경기를 관전한 김진국 전무와 이회택 부회장 등 협회 고위층들도 대표팀의 아픔을 이해하면서 “대표팀을 되살리자”는 데 동참하는 긍정의 화합 모드가 엿보였다.
항상 하늘을 찌를 듯, 잘나가던 선수들도 ‘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박주영, 차두리, 기성용, 김정우 등 모두가 한 목소리를 냈다. “이번 패배를 통해 값진 경험을 했다. 일본이 잘한 것도 크지만 우리가 못했다. 반성하고, 우리의 지금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삿포로=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