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에서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후 3년만에 첫 승을 따낸 넥센 투수 심수창을 만났다.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
7월 31일 전격적으로 LG에서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심수창은 무려 876일 동안 그런 불운에 시달렸다. 심수창은 2009년 6월 14일 잠실 SK 전에 선발승을 거둔 이후 39경기 동안 단 1승도 챙기지 못하며 18연패를 기록했다. 한국 프로야구 최다 연패기록이었다. 미 메이저리그의 앤서니 영이 기록한 27연패와 일본 프로야구 곤도 마사토시가 세운 28연패에 비하면 양호했다. 그러나 심수창의 연패기록은 투수로선 최악의 불명예였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 비는 없고 아침이 찾아오지 않는 밤은 없다고 했던가. 심수창은 8월 9일 부산 롯데전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해 6⅓이닝 1실점 호투로 승리투수가 됐다. 심수창도 그를 응원하던 팬들도 눈물을 흘린 건 첫 승을 따내는데 무려 3년이 걸린 까닭이었다. <일요신문>이 18연패의 사슬을 끊고, 10승보다 더 값진 1승을 따낸 넥센 투수 심수창을 만났다.
―시즌 1승을 따낸 투수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 대단히 수고했다.
▲고맙다. 많은 분이 염원해주신 덕분에 3년 만에 1승을 따낸 것 같다.
―9일 부산 롯데전을 보면서 계속 가슴을 졸였다. 특정 투수를 이렇게 응원해도 되나 하는 가책까지 느낄 정도였다.
▲마운드에 있는 투수는 어땠겠나(웃음). 정말 공 하나하나에 혼을 담아 던졌다. 뭐랄까. 비록 원정경기였지만 많은 분이 내 투구를 보면서 응원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분들의 응원을 배신하지 않으려면 꼭 호투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날 경기에서 6⅓이닝 동안 6피안타 2볼넷으로 1실점 하며 7회 1사 1루에서 오재영에게 공을 넘겼다. 3대 1로 이기는 상황이었고, 투구수 97개를 고려하면 더 던지고 싶다는 욕망이 강렬했을 것 같다.
▲빈말이 아니라 구원투수와 야수 등 동료를 끝까지 믿었다. ‘내가 이 경기를 마무리하겠다’는 생각보단 ‘동료의 희생과 도움을 기꺼이 받자’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오)재영이가 걸어올 때도 절대 서운하거나 아쉽지 않았다. 그저 넥센에 온 이후 2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6이닝 3실점 이하)를 한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9회 말 마무리 손승락이 두 타자 연속 안타를 맞으며 무사 1, 2루가 됐다. 동점 주자가 있는 상황이라 무척 긴장했을 듯싶다. 특히나 올 시즌 손승락이 롯데를 상대로 평균자책 4점대를 기록했던 터라 불안이 가중됐다.
▲정황은 그랬을지 몰라도, 난 절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경기 전 손승락이 “오늘은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형의 승리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었다. 1, 2루 상황에서도 (손)승락이가 벤치에 있는 나를 보며 계속 손가락으로 ‘자기를 믿어라’는 신호를 보냈다. 한국 최고의 마무리가 마운드에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승락이를 믿었다.
―결국 손승락은 나머지 세 타자를 범타와 삼진으로 처리하며 세이브를 기록했다.
▲승락이도 고마웠지만, 야수들에게 정말 고마웠다. 경기 시작 전부터 전 팀원이 신인선수가 된 것처럼 긴장하고 화이팅을 외쳐줬다. 동료의 기를 받으며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다.
―승리투수가 되고 인터뷰에서 “김시진 감독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
▲넥센 와서 두 번 선발 등판했다. 김 감독님은 위기 상황이 찾아와도 날 교체하지 않으시고 계속 믿어주셨다. 그 믿음에 꼭 보답하고 싶었다. 결국 승리투수가 됐으니 감독님의 믿음에 1%는 화답하지 않았나 싶다.
―연패투수는 야수의 희생, 타선의 지원 그리고 코칭스태프의 믿음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 하지만 투수의 마음이 강하지 않다면 그 모든 지원과 믿음은 무용지물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마운드에 섰는지 궁금하다.
▲(잠시 고민하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바뀌었다. 연패를 거듭하다 보니까 계속 수렁으로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야구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그러다 LG에 있을 때 심리치료를 받았다. 심리치료 선생님이 그러셨다. “넌 이미 올 시즌 7승을 거둔 투수다. 이번에 던지면 8승을 하는 거다. 연패는 잊고 8승에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등판하라”고.
―롯데전에서 그렇게 했나.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넌 오늘 8승에 도전한다’면서 자기최면을 걸었다. ‘18연패나 9연패나 거기서 거기’라고 자꾸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상할 정도로 힘이 났다. (한숨을 내쉬며) 1승이 100승을 하는 것보다 힘들지 누가 알았겠나(웃음).
7월 31일 넥센 송신영, 김성현이 LG 유니폼을 입으면서 박병호와 함께 넥센으로 와야 했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트레이드가 활성화됐다면 모를까, 아직 한국 프로야구에서 트레이드는 주전 자리를 잡지 못한 선수가 팀에서 밀려나는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 넥센으로 트레이드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트레이드는 다른 선수들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막상 그게 내 이야기라고 하니까 정말 숨이 딱 멎는 것만 같았다. LG와 박종훈 감독님이 무척 서운하게 느껴졌다. 그래 버림받은 느낌이었다고 하면 정확할 것 같다.
―넥센이나 LG나 같은 서울 연고지 팀이지만, 심리적 거리는 부산 롯데만큼이나 멀다. 특히나 코칭스태프와 선수를 비롯해 전체적인 팀 분위기가 크게 달라 넥센에 동화하는 게 쉽지 않았을 듯싶다.
▲왜 아니었겠나. 넥센 선수들과 다 아는 사이였지만, 같은 팀에서 뛴다는 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넥센 팬들께서 우리를 불편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 (박)병호와 넥센에 와서 숙소에 있는데 어디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온종일 둘이서 숙소 안에만 있었다. 다행히 넥센 선수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줘서 빠르게 팀에 적응할 수 있었다.
―누가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나.
▲김민우 김성태 손승락 같은 선수들이 먼저 다가와 줬다. 그리고서 다른 선수들도 찾아와줬다. 넥센 팀 분위기는 참 가족 같다. 뭔가 끈끈한 정 같은 게 있다.
―LG 조인성이 그러더라. “심수창이 트레이드되고나서 자기한테 전화해 깜짝 놀랐다”고 말이다.
▲넥센으로 가면서 몇몇 LG 선수들에게만 전화했다. (조)인성이 형은 2009년 8월 마운드 위에서 나와 언쟁 아닌 언쟁을 하면서 특별한 일에 얽힌 적이 있다(웃음). 나 때문에 마음고생도 심했고. LG를 떠나면서 내가 먼저 인성이 형한테 전화해야겠다 싶었다.
―전화를 받은 조인성이 뭐라고 하던가.
▲내가 “형, 그간 죄송했습니다”하니까 인성이 형이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하다. 수창아”하더라.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눈물을 글썽이며) LG에 있으면서 인성이 형이 내 1승을 챙겨주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눈과 마음으로 절절히 느낄 정도였다. “형이랑 LG에서 오랫동안 잘하고 싶습니다”하는데 인성이 형도 정말 마음 아파하는 게 느껴졌다.
―투수 봉중근과도 특별한 관계 아니었나.
▲LG를 떠나면서 가장 눈에 밟힌 선배가 (봉)중근이 형이었다. 중근이 형은 친형처럼 나를 아꼈던 선배다. 내가 등판한 경기를 하나하나 분석해주고 조언해주던 이가 그 형이었다. 중근이 형이 그랬다. “내가 처음 LG에 입단했을 때 만났던 투수들이 다 떠나고 이젠 김광삼과 이동현밖에 남지 않았다”고. 요즘 중근이 형이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 뒤 재활에 매달리고 있다. 힘든 시간을 보낼 중근이 형한테 정말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2007년 KIA 윤석민을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제목이 “시즌 최다패 투수의 심경”이었다. 그해 윤석민은 28경기에 등판해 7승18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며 ‘역대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패 2위 투수‘라는 불명예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올 시즌 윤석민은 다승, 평균자책, 탈삼진에서 1위를 달리며 투수 3관왕에 도전하는 한국 최고의 오른손 투수로 우뚝 섰다.
▲모르겠다. 나도 (윤)석민이처럼 연패 뒤에 재기할 수 있을지. 하지만, 올 시즌 꼭 이루고 싶은 목표는 있다.
―그게 뭔가.
▲내가 승리투수가 되고 안 되고는 이젠 솔직히 마음을 비웠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남은 선발 등판에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해 팀 승리에 기여하고 싶다. 그게 투수가 할 일이란 걸 1승을 따내고서 알았다.
―2:2 트레이드가 끝나고 나서 넥센 김시진 감독이 “심수창이 마음껏 투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말을 했다. 여기서 ‘마음껏 투구’라는 말은 어떤 뜻이었을까.
▲일단 감독님께서 날 편안하게 해주려고 하신 말씀 같다. 사실 많은 분이 오해하시는데 LG에 있을 때도 내가 던지고 싶은 공을 던졌다. 야구는 어디에서 하나 똑같다. 이제 마음에 부담을 덜었으니 감독님 말씀처럼 마음 편하게 투구하고 싶다.
―LG에선 선발과 중간을 오갔다. 넥센은 일단 선발로 계속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선발과 중간 가운데 어느 보직이 자신에게 맞는가.
▲선발이 낫기야 낫다. 하지만, 중간에서 잘 던져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팀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나. 솔직히 감독님이 어느 보직을 명령하셔도 흔쾌히 따를 생각이다.
―포수 허도환과의 호흡에 대해 묻는 야구팬도 무척 많다.
▲(허)도환이는 대단한 포수다. 경력은 화려하지 않지만, 엄청나게 열심히 한다. 내가 2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거두고 첫 승에 성공한 것도 다 도환이 덕분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았나.
▲8월 3일 대구 삼성전은 내가 넥센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던지는 날이었다. 그날 5회까지 3실점으로 막았는데, 6회 진갑용,정형식을 볼넷으로 출루시키면서 1사 1, 2루 위기를 맞았다. 그때 내가 폭투를 기록하며 공이 뒤로 빠졌는데, 진갑용 선배가 3루로 뛰고 있었다. 당시 도환이가 엄청나게 빨리 뛰어가서 공을 잡고 3루로 던졌다.
―결과는?
▲(주먹을 쥐며) 진 선배가 태그아웃 되고 다음 타자 김상수가 외야 플라이로 물러나면서 위기에서 벗어났다. 9일 롯데전에서도 도환이가 내 폭투에 허벅지를 정통으로 맞았다. 하지만 아픈 기색 없이 2루에서 3루로 뛰던 황재균을 잡아냈다. 내가 승리투수 요건을 갖춘 것도 그때의 호수비 덕분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보니까 도환이 허벅지에 주먹보다 훨씬 큰 멍이 들어 있었다.
―넥센이 LG 같은 인기구단이 아니란 게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팬들의 관심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고 팀 성적에 대한 부담도 덜하기 때문이다.
▲LG에 있을 땐 참 많은 오해에 시달렸다. 집에 가려고 나이트클럽 앞을 지나가면 다음날 구단 홈페이지 게시판에 “심수창이 훈련은 안 하고 나이트클럽이나 간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신천 먹자골목에서 호프집을 하시던 부모님도 나 때문에 가게를 정리했었다. 간혹 쉬는 날 가게에서 부모님을 도와 드렸는데 하도 주변에서 “심수창이 하라는 야구는 안 하고, 술집에서 아르바이트한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LG보다 넥센이 행동은 자유로울지 싶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