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천수는 한국 축구 팬들에게 자신의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K리그 복귀를 조심스럽게 희망했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
그러나 지난 8월 7일 일본 사이타마현에 위치한 오미야 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오미야 VS 베갈타 센다이와의 J리그 경기에 주전으로 출전한 이천수를 보면서, 그가 지난 1년여간 오미야 팀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재기에 몸부림쳤는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골은 성공시키지 못했지만 후반 교체되기 전까지 이천수는 그라운드 곳곳을 누비며 도움 1개를 기록했고 팀 동료가 골을 성공시켰을 때는 일부러 뛰어가서 안아주며 환호하는 관중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다. 이천수와 인터뷰를 하기로 한 8월 10일, 이번엔 오미야 훈련장이 위치한 시키를 찾았다. 그날은 삿포로돔에서 한일전이 열리는 날이었다. 대표팀 소집이 예정될 때마다 항상 거론됐던 이름, 이천수. 축구 실력보다는 사생활, 인성 등을 이유로 ‘시간이 더 필요한 선수’라고 말했던 조광래 감독의 얘기가 오버랩되면서 삿포로가 아닌 시키에서 오미야 유니폼을 입고 훈련 중인 이천수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6월 오미야 아르디자와 입단 계약을 맺었던 이천수. 오미야에 입단하기 전까지만 해도 오미야란 지역도, 팀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이 팀을 노크했다. 갈 데도 없고, 날 원하는 팀도 없는 상황에서, 운동을 계속하려면 팀이 필요했는데, 그때 절망에 빠진 나에게 손을 내민 곳이 오미야였다. 처음엔 오미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팀 이름도 입에 붙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정작 이곳에서 만난 건 ‘정’이었다. 외국을 떠돌며 사람에 대한 정, 그리움 등에 목말라했는데, 이곳 사람들이 나에게 그 선물을 줬다.”
오미야 아르디자는 지난해 2부로 강등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천수 입단 후 강등권에서 벗어나 당당히 1부에 진입할 수 있었고, 이천수는 서서히 오미야 가족으로 스며들며 간판선수로 입지를 굳혔다. 덕분에 올 시즌을 앞두고 오미야와 다시 1년 재계약을 할 수 있었다. 오미야에는 대표팀 수비를 맡고 있는 김영권도 함께 속해 있다.
이천수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마음을 내비친다.
“지난해 6월 이적동의서도 없이 연습생 신분으로 오미야에 들어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사우디축구협회와 알 나스르 팀에서 국제이적동의서 발급을 거부함에 따라 계약이 이뤄지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 결국 FIFA에서 중재에 나섰고 구단과 정식 계약 후 8월부터 J리그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만약 끝까지 이적동의서를 받지 못했다면, 난 진짜 축구를 그만둬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 나스르가 막판에 이적동의서를 발급해주는 걸 보고, 축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사를 느꼈다. 오미야에서 마음 잡고 축구를 하기까지 무려 6개월가량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J리그 하위팀, 이름조차 생소했던 팀에서 이천수는 절치부심했다. 그 노력을 감독이 알았고, 팀에서도 인정했다. 오미야와 1년 재계약을 맺을 때 이천수는 팀내 최고 연봉(약 10억 원 추정)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팀 관계자들은 물론 감독님까지 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감독님이 말씀하시길, 내가 훈련에 나오지도 않을 거라 생각하셨단다. 한마디로 이들 눈에는 내 이미지가 악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훈련 시간에 늦은 적이 없었고, 아무리 몸이 안 좋아도, 훈련에 빠지지 않았다. 어느 때보다 성실하게 생활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경기장에서 이천수의 존재를 알리는 일 뿐이었다.”
J리그에서 연착륙에 성공한 이천수는 올 시즌이 끝난 후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팀과 다시 재계약을 할지, 아니면 한국으로의 복귀를 적극적으로 추진할지에 대해 많은 생각이 오간다고 털어놨다.
▲ 한일전이 열린 지난 10일(한국시간) 이천수는 도쿄 인근에 마련된 구단 연습장에서 훈련에 집중하다 동료와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
이천수가 한국으로 복귀하려면 사우디아라비아 알 나사르로 이적할 당시, 불거졌던 전남과의 ‘숙제’를 풀어야만 가능하다. 이에 대해 이천수는 이전과 달리 충분히 사과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 겨울, 한국에 들어왔을 때 박항서 전 전남 감독한테 여러 차례 전화와 문자를 통해 진심으로 사과의 뜻을 밝혔고, 전남 구단 측에도 간접적인 루트를 통해 연락을 취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난 이름이 알려진 선수라는 이유 하나로 모든 죄를 다 뒤집어썼다. 어떤 변명도, 설명도 통하지 않았다. 내 이름으로 벌어진 일이다 보니 결국엔 내가 나쁜 놈이 됐고, 그로 인해 K리그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억울한 면도 있고, 아쉬운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K리그로 복귀할 수 있다면 어떠한 노력이라도 기울이고 싶다. 언론을 통해 ‘이천수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여러 분들이 자주 얘기하시는데, 말만 하시지 말고, 나한테 그런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다. 어떠한 변명보다 모든 게 나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니까,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다. 문을 열어 놓으시면, 얼마든지 전남 구단을 찾아갈 생각이 있다.”
이천수는 전남 정해성 감독이야말로 축구선수 이천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축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운동장에서만큼은 최고가 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나쁜 선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계실 것이라고 믿었다.
이천수는 2014브라질월드컵을 향해 항해를 시작한 조광래호와 아직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대표팀 명단이 발표될 때마다 기대를 모으는 ‘이름’이긴 하지만 조광래 감독은 유독 이천수에 대해선 축구 실력이 아닌 사생활 문제를 거론하며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J리그에서 잘 뛰다가도 대표팀 A매치가 열릴 때마다 잠깐 동안 슬럼프를 겪곤 했다. 항상 이천수라는 이름 뒤에 사생활이란 단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다 보니까 은근히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도대체 사생활이란 게 무엇인가. 나는 음주운전을 한 것도, 마약을 한 것도 아니지 않나. 연예인도 불미스런 일에 연루됐을 때 1년 후에는 다시 복귀 과정을 거친다. 하물며 왜 나한테는 유독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시는지 모르겠다. 전남과의 문제는 내 탓만은 아니다. 하지만 내 탓으로 돌아왔고, 그걸 풀려고 나 또한 노력했고, 앞으로도 더 노력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사생활 운운하는 얘기가 안 나오게 될까. 대표팀에 뽑히지 않는 이유가 경기력이 아닌 사생활과 선수단 분위기를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면, 오미야 감독님이나 코칭스태프한테 직접 물어봐주셨으면 좋겠다. 이천수가 오미야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이천수는 자신을 직접 가르치지도, 직접 대화도 안해본 사람이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판단을 내릴 때, 가장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는 뭐든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 5분이라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뛸 수만 있다면, 그조차 감사한 마음을 갖겠다. 처음에 5분이었다면 이후 실력을 길러 출전 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경기력으로 보여주면 된다. 그런데 그 기회를 갖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도 난 기다릴 것이다.”
2010남아공월드컵 승선 기회를 놓치고 방황의 시간들을 보냈다는 이천수. 그러나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자신을 돌이켜봤을 때, 그 앞에 또 다른 미래가 존재했다고 한다. 바로 브라질월드컵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브라질월드컵은 나와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다시 이전의 이천수로 살아나는 걸 느끼면서, 또 다시 월드컵에 도전하고 싶어졌다. 물론 2002, 2006년 때보다 패기와 파워는 떨어질지 몰라도 후배들을 독려하고, 주장을 도와서 대표팀을 하나로 만들어갈 수 있는 선배 역할을 해보고 싶다. 감독님도 선수들을 잘 만나야겠지만, 선수는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축구인생이 좌지우지된다. 조광래 감독님이 나한테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달게 해주시는 분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천수에게 국가대표란?” “전부다. 축구인생 최고의 전성기와 절정기가 모두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였다. 그래서 꼭 그 태극마크를 되찾고 싶다. 정말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이타마현 시키=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