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정대철 대표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신당추진위 구 성안 강행처리에 부정적이었으나 9일 당무회의에선 구주 류의 반발을 따돌리는 ‘기민한’ 몸놀림을 보여줬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방일기간중 신당추진위를 당무회의에 상정, 무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신당 불씨를 확실히 살려놓아야 한다는 의지를 민주당 신주류측에 전달했고 이에 따라 신주류측의 행보가 다급해졌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주말부터 가시화된 신주류 핵심인사들의 태도 변화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신주류측은 지난 9일 열린 당무회의에서 구주류측의 조직적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신당추진기구 구성안을 전격 상정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정대철 대표가 섰다.
정 대표는 지난 4일 당무회의에서만 해도 “신당은 분당으로 가서는 안되며 정대철 사전에 그런 것은 없다”고 말하는 등 신당추진기구 구성안의 강행처리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었다.
그러나 정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구주류측이 당무회의 장소를 당사에서 국회 예결특위 회의실로 변경한 것을 문제 삼으며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 전략)에 나서자 몇 차례 설득 발언을 하다 기습적으로 “그럼 신당추진기구 설치에 관한 것을 상정해 토의토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당황한 구주류의 김충조 의원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의장석으로 뛰어나가면서 “상정 안된 겁니다”라며 저지에 나섰지만 정 대표는 “지금 상정된 겁니다”라고 일축했다.
신주류의 좌장인 김원기 고문도 마찬가지다. 김 고문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지둘려’라는 별명답게 서두르지 않고 구주류의 동의하에 만장일치로 신당추진기구 구성안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혀왔다.
그러나 김 고문은 이날 당무회의 한시간 전 열린 신주류 주요 인사 모임에서 전례 없이 강경한 목소리로 신당추진기구 구성안 상정 의지를 피력했다.
김 고문은 국회 귀빈식당에서 신주류 의원 30명이 참석한 모임에서 “신당 추진과 관련해 협상을 위해 온건한 자세를 취한 것이 잘못 해석되는 경향이 있었다”며 “오늘 어떤 일이 있어도 (구성안을) 제안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신주류측의 입장 변화는 9일 당무회의를 위한 치밀한 준비작업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신주류측은 지난 주말과 이날 당무회의 직전 잇따라 모임을 갖고 구성안 상정을 위한 시나리오를 짰다. 지난달 30일, 지난 2일과 4일 3차례 당무회의에서 구주류측의 조직적인 방해전략에 밀려 신당추진위 구성안을 상정조차 못한 것을 거울삼은 것이다.
우선 신주류측은 회의장을 당사 4층 회의실에서 국회 예결특위 회의실로 변경했다. 당사 회의실 회의에서 구주류의 박상천 정균환 최명헌 의원 등이 당무회의 의장으로 신당추진위 구성안을 상정할 정대철 대표를 양측에서 포위해 기습 상정을 막은 사태가 벌어졌던 점을 감안, 의장이 당무위원들과 떨어져 회의장 중앙 상단에 앉을 수 있는 예결특위 회의실을 선택한 것이다.
국회 예결특위 회의장 선택에는 조직적인 반발에 나서고 있는 당료들의 출입을 원천봉쇄하려는 의도도 담고 있었다. ‘분당 저지를 위한 중앙당 실국장 17인 모임’과 당내 부위원장단등은 지난 4일 당무회의에서 회의실 벽에 ‘분당으로 가는 의사결정은 안된다’는 등의 플래카드를 2개나 걸고 이의 철거를 지시하는 정 대표 등 신주류측과 몸싸움까지 불사하는 등 통상적인 당 운영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을 연출하며 신주류측을 압박했었다.
▲ 민주당 김충조 의원은 9일 당무회의에서 정대철 대표의 신당추진위 구성안 기습상정을 저지하려 했으나 결국 실 패했다. | ||
신주류측은 구주류측의 ‘회의 기선잡기’ 전술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했다. 지난달 30일 열린 당무회의에서 구주류측은 느닷없이 이강철 대구시지부장 내정자의 인선 문제와 4·24 재·보선 ‘패배 책임론’을 들고 나와 신당추진위 구성안 논의 자체를 막고 신주류 지도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이날 당무회의에서도 구주류측은 역시 회의장을 예결특위 회의실로 변경한 것을 문제 삼으며 기선 잡기에 나섰다. 특히 구주류측은 정 대표를 겨냥, 대표가 예결위원장석에 함부로 앉아선 안되며 의원이 아닌 당무위원이 예결위 회의실의 의원 자리에 앉아선 안된다고 신주류를 몰아쳤다.
그러나 신주류측은 당황하는 기색없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특히 신주류의 임채정 의원은 구주류측이 “정 대표가 예결위원장석에 앉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정 대표를 비판하자 자신의 앞자리에 앉은 구주류 핵심 박상천 최고위원을 겨냥, “내 앞에는 회의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다”고 비꼬기도 했다.
신당추진기구 구성안 기습상정도 사전에 준비한 듯 자연스럽게 이뤄져 구주류가 반발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정대철 대표는 이미 제안된 당무회의 의제 2개를 처리하다가 말미에 갑자기 신당추진위 구성안을 상정한다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김충조 의원 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지만 이미 ‘버스가 지나간 뒤’였다.
신주류는 또 조직력 강화에도 신경을 썼다. 신주류측이 그간 당의 공식회의 참석률이 저조한 데다 지난 4일 당무회의에서 오전까지 신주류가 어느 정도 자리를 지키다 오후에 모두 자리를 빠져나가 신당추진위 구성안 상정에 실패한 점을 감안한 것이다.
신주류측이 이처럼 전례 없이 치밀한 전략전술을 세워 당무회의에 임한 것은 역시 노 대통령의 의지 표시가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노 대통령의 일부 핵심측근들은 지난주 초부터 신당 논의가 흐지부지해지면서 ‘중도통합론’까지 등장하자 신주류 중진인사들에게 ‘노 대통령의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구주류의 강경파를 배제하고 양측 중도파들이 신당을 주도할 경우 당초 노 대통령과 신주류 핵심들이 추구했던 신당의 취지를 살릴 수 없게 되고 이는 노 대통령의 개혁 및 17대 총선 구상을 뒷받침할 수 없다는 것이 골자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중도통합론이 신당 추진의 대세가 될 경우 현역의원들은 대부분 차기 총선에서 그대로 공천되고 노 대통령이 전략지역으로 꼽고 있는 영남권 진출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현재 노 대통령이 영남권 공략 전위대로 생각하고 있는 인사들은 청와대 등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거나 노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 등으로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만 지역기반은 거의 없는 편이다. 따라서 당이 하부구조부터 환골탈태하지 않을 경우 대세로 자리잡은 ‘상향식 공천제’하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신주류 강경파들이 신당주도세력에서 소외되면 신당이 출범하더라도 개혁성이나 노무현 색깔을 찾기 힘들게 되고 또다시 대선 때와 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청와대측은 “신당은 민주당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개입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대선이후 신주류 핵심인사들이 청와대와의 교감 후에 그전 행태에 비해 ‘개혁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청와대측과 교감을 가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주류측의 이 같은 적극적 행보가 신당추진위 구성안 채택과 추진위의 본격적인 활동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 실제로 정대철 대표나 김원기 고문 등은 여전히 추진위 구성안 표결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구성안 표결을 강행할 경우 민주당의 내분은 분당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책임은 표결을 강행한 신주류에게 넘어와 신당의 입지를 급격히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신당추진위 구성안이 당무회의에 공식 상정된 것만으로도 신주류측은 한때 손아귀를 거의 빠져나갔던 신당 추진 주도권을 되찾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신주류측은 이처럼 1단계로 일단 신당 창당의 주도권을 되찾은 뒤 이를 기반으로 중도파를 적극 설득하고 구주류 핵심을 고립시켜 2단계에서 만장일치 수준으로 신당추진위 구성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김영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