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고베 아이낙에서 뛰고 있는 스무 살의 여전사 지소연을 만났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그 안에서 뛰고 있는 선수가 지소연(20)이다. 사와 호마레, 오노 시노부 등과 함께 고베 아이낙에서 공격수로 활약 중인 지소연은 데뷔 해인 올해, 8경기 7골2도움으로 다득점 2위를 내달리며 일본 여자축구 무대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내달 1일,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2012 런던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앞두고 8월 15일 대표팀에 합류한 지소연과 파주트레이닝센터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고베 아이낙 소속으로 한일 교류전을 치른 후 곧장 대표팀에 합류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없었겠다.
▲많이 피곤한 상태다. 어제부터 얼굴에 열꽃이 피는지, 뭐가 막 돋아나기 시작해서 좀 있다 피부과를 다녀오려고 한다. 그래도 오랜만에 대표팀 선수들과 만나서 한국말로 떠들고 얘기하니까 기분은 좋다(웃음).”
―얼마 전 일본 출장 중에 고베에서 지소연 선수 인터뷰하려고 매니지먼트사에 연락을 취했었다. 그런데 선수가 바쁜 일정으로 인해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전해와 많이 아쉬웠다. 현지 생활 모습을 전하고 싶었는데.
▲전혀 모르는 사실이다. 그런 얘길 매니지먼트사로부터 전해 들은 적이 없다. 다음에는 구단으로 직접 연락을 해 달라. 일본에서 만났더라면 더 편하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더 아쉽다.
―고베에는 현재 오릭스 소속의 박찬호, 이승엽 선수가 있다. 두 선수들을 만나 본 적이 있나.
▲아직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오릭스 경기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으려고 했다가 경기 일정과 우리 팀 일정이 맞지 않아서 가보지 못했다. 같은 한국 선수들이고, 굉장히 유명한 분들이라 꼭 만나고 싶다. 박찬호, 이승엽 선수의 집과 내가 살고 있는 집이 꽤 가까운 걸로 알고 있다.
―처음 일본으로 떠날 때 어떤 심정이었나. 미국 진출을 알아보다가 추진 중이었던 팀들이 해체되면서 결국엔 일본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솔직히 가고 싶었던 곳으로 가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행에 대해 큰 만족감을 갖진 못했다. 그러나 어차피 지금이 아니어도 다음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먼저 일본무대에 적응하고 미국으로 가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고베 아이낙에 입단할 때만 해도 지금처럼 호화 멤버는 아니었다. 내가 가고 나서 대표팀 선수들이 많이 들어왔다. 누구보다 사와 호마레와 오노 시노부 선수는 열다섯 살 때부터 국제대회에서 만나 얼굴이 익었던 유명 선수들이다. 그들과 한 팀에서 뛰게 되었다는 사실이 굉장히 기뻤다.
―일본국가대표팀의 주장이자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사와 호마레 선수와 한 팀에서 생활해보니까 어떤 선수라는 생각이 드나.
▲배울 점이 정말 많은 선수다. 멘탈도 강하고, 운동장에서 보여주는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그동안 많이 친해졌고, 나한테 많은 걸 배려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려고 노력한다. 아직 일본어가 서툴다보니 속마음을 얘기할 수 있는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해 안타깝긴 한데, 나이 차이는 많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많이 다가가려고 애쓰는 편이다.
―일본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축구 선수로 지내면서 단체 생활이나 집에서 출퇴근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가 외국에서 혼자 지내는 게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만약 권은솜 선수마저 없었다면, 정말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해외 생활이란 게 만만치 않더라. 7개월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해외 진출한 남자 선수들이 성적을 내지 못하거나 적응하는 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지, 뭐 별 게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는 사실이 많은 걸 힘들게 한다. 미국, 독일도 아닌 한국과 가까운 일본인데도 그 차이가 엄청나다. 지금은 익숙해졌고, 마치 ‘독립군’처럼 잘 버티며 나름 내공도 쌓았는데, 이렇게 되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통역이 생활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나.
▲ 지난 10일 국제여자축구 친선교류전 한국 고양대교눈높이-일본 고베 아이낙 경기에서 고베 지소연이 첫 골을 터뜨린 뒤 기뻐하는 모습. 고베가 2 대 0으로 승리했다. |
―그렇다면 감독이 지시하는 사항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겠다.
▲당연히 못 알아들었다. 그냥 감으로 움직였다. 이렇게 해서 아니라고 하면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고, 그것도 아니라면 또 다른 플레이를 하고…, 그렇게 7개월이 흘렀다. 이젠 감독님이 하시는 말씀을 대충은 알아듣고, 선수들과의 의사 소통도 조금은 편해졌다.
―일본 데뷔골이 세 경기째 터졌다. 그것도 해트트릭이었는데, 지소연 선수한테 큰 의미가 있는 해트트릭이었을 것 같다.
▲한국에서 잘한다고 평가받는 선수를 데려왔는데, 골도 못 넣고, 플레이도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는지, 시즌 초반에는 선수들이 나한테 뭐라고 하는 애들이 많았다. 내가 그들의 말을 알아 듣지는 못했지만, 분위기상 결코 좋은 내용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속으로 많이 부대꼈다. 자존심도 상했고, 억울한 부분도 있었고. 아마추어 팀에서만 뛰다가 성인팀에선 처음 뛰는 터라 더욱 우왕좌왕했던 것 같다. 다른 선수들이 골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골에 대한 부담이 더욱 가중됐었다. 그러다 세 번째 경기에서 3골을 터트린 것이다. 그 후론 나한테 뭐라고 하는 선수들이 없더라.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고, 골도 터트리고, 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는지, 지금은 날 인정해주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외국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지소연 선수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
▲다른 나라였다면 이런 감정이 덜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본이라서 더더욱 애국심이 크게 작용한다. 난 고베에서 한국 대표 선수로 뛰는 거나 마찬가지다. 내가 못하면 한국이 욕을 먹을 것 같아 사명감 갖고 진짜 열심히 생활했다. 누구보다 일본인한테는 지기 싫어 이를 악물고 뛰어다녔다. 스스로 ‘이러다 진짜 애국자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한 승부욕과 투쟁심이 발동했다. 일본여자축구가 월드컵 무대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장면을 일본 고베에서 지켜보는데 오기가 발동하더라. ‘일본도 했는데, 우리는 더 잘할 수 있다’는 각오를 혼자 다지곤 했다.
―고베 아이낙과 2년에 연봉 400만 엔(약 5500만 원)에 계약했다. 1년을 뛴 다음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1+1의 형태로 알고 있는데, 올시즌 이후의 진로에 대해 계획을 세웠나.
▲첫 시즌치고는 꽤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면서 고민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아직 더 일본에 머물고 싶은 마음도 있고, 다시 미국 진출을 추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일단 올림픽예선전을 끝낸 뒤 진지하게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연봉 400만 엔이, 일본여자축구에선 많은 편인가? 아니면 적은 편인가?
▲일본도 여자축구가 활성화된 게 최근의 일이라 선수들 연봉이 상당히 저렴하다. 난 다른 선수들에 비해 연봉을 많이 받는 축에 속한다. 아무래도 외국인선수다보니 몸값이 높을 수밖에 없다. 다음 시즌에는 일본이 월드컵 우승도 하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선수들 연봉이 상향 조정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래도 1순위 신인 선수 연봉이 3000만 원인 한국보단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본다.
―9월 1일부터 중국 선전에서 런던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전을 치른다. 팀의 주 공격수로서 책임감이 막중할 것 같은데.
▲중국, 일본, 북한과 차례로 맞붙는데, 매 경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 내가 일본에서 보고 배운 걸 동료 선수들에게 제대로 전달해서 일본을 상대로 싸울 때는 더 좋은 플레이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인터뷰때마다 하는 얘기가 있다. 일본 대표팀 선수들 중 7명이 고베 아이낙 소속인데,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느낀 점이라면, 그들이 강하긴 해도 못 넘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기려는 마음이 강하다면 우리한테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인터뷰 말미에 지소연에게 ‘지소연한테 올림픽이란?’이란 내용의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속사포처럼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전하던 그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하기가 너무 어려워요”라며 맑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다음 날보충 질문을 위해 전화통화를 하다 같은 질문을 또 했다. 역시 그의 대답은 ‘어렵다’였다. 아마도 지소연은 올림픽이 자신한테 어떤 의미인지를 직접 경기장에서 보여주려는 게 아닐까. 시원한 골 세례와 함께 말이다. 한국 여자축구의 대들보로 성장한 지소연은 아직 보여줄 게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나이 이제 겨우 스무 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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