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남지 연못 한가운데는 포룡정이라는 멋진 누각이 세워져 있다. |
백제문화제(10월 1일~9일)는 아직 멀었고, 후텁지근한 날씨 또한 여전한데도 부여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백제의 유적지가 많은 곳이기는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궁남지의 연꽃 때문이다.
부여는 백제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수도였던 곳이다. 백제는 성왕 때인 538년 오늘날의 부여인 사비로 천도를 단행했다. 왕권과 국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백제는 이곳 사비에서 화려하게 불꽃을 태우다가 678년 마침내 소멸했다. 부여읍 동남리에 자리한 궁남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이다. 언제 정확히 축조가 되었는지는 확실히 알려진 바 없지만 궁남지가 별궁터에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추정하자면 사비성이 조성되던 그 즈음일 것으로 보고 있다.
궁남지는 무왕의 탄생과 관련이 깊다. 무왕은 선화공주와의 사랑이야기로 유명한 서동이다. 법왕이 궁남지 주변에 살던 시녀와 통하여 낳은 자식이 바로 무왕이다. 선화공주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치는 않다. 삼국유사에는 그렇게 전하지만, 다른 사서에는 천명과 덕만 두 사람만 진평왕의 딸로 기록되어 있다. 부여 사람들은 궁남지를 마래못 또는 마래방죽이라고도 일컫기도 한다. 왕인 아버지와 미천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서동은 저자에서 마를 캐다 팔며 살았다. 서동은 마를 캐는 아이, 맛동을 말한다. 마래못의 ‘마래’는 ‘마애’, 즉 ‘마아이’ 서동이다.
▲ 어린이들이 연꽃밭 한쪽에 설치된 수차를 돌려보는 모습. |
궁남지에는 홍련이 주를 이루지만 백련, 수련, 가시연, 대하연, 빅토리아연 등 10여 종의 연꽃들이 자태를 뽐낸다. 가시연과 빅토리아연은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다. 이달 말쯤이면 꽃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꽃의 여왕 빅토리아연은 1801년 남아메리카에서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진 것으로 현재 아마존강 유역에서 자생한다. 연잎이 무려 직경 1.8m까지 자란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쟁반이 물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번 보면 누구라도 반하고 마는 빅토리아연은 이곳 궁남지 외에 국내에서 볼 수 있는 곳이 경기 시흥의 관곡지 등 2~3곳에 불과하다.
연은 그 뿌리를 진흙에 대고 있지만, 누구보다 청초한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꽃말도 ‘순결’이다. 단지 관상용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연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고마운 녀석이다. 뿌리, 꽃, 잎, 연밥(씨) 등 모두가 약재다. 뿌리는 지사제로도 사용되고, 꽃은 출혈이 있을 때 특효다. 혈당관리에도 꽃이 좋다. 연잎은 위장기능에 효과가 있고, 종합영양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 연밥은 신장과 기력증진에 도움이 된다. 약재나 마찬가지지만, 요즘은 음식으로도 개발이 되어 연을 섭취하기가 쉬워졌다.
궁남지는 물새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연못에 먹거리가 많아 물까마귀, 물닭, 논병아리, 쇠오리 등의 물새들이 궁남지에 기대어 살아간다. 사람이 낯설지 않은 이 새들은 어지간히 접근해도 놀라 달아나지 않는다.
궁남지는 산책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둑방을 따라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버드나무가 그늘을 드리워 햇빛을 피하기에도 그만이다. 벤치도 군데군데 마련돼 있다. 사람들이 궁남지를 찾을 때, 반드시 거쳐가는 곳은 포룡정이다. 연못 한 가운데 섬이 있고, 거기에 멋진 정자가 하나 서 있다. 섬은 최초 조성 당시부터 있던 것이다. 포룡정은 1971년 섬을 복원하면서 지었다. 포룡정이라는 이름은 ‘용을 품은 정자’라는 뜻이다. 여기서 용은 서동의 아버지인 법왕을 가리킨다. 포룡정의 현판은 부여 출신인 김종필 전 총리가 쓴 것이다. 포룡정 주변으로는 분수가 쉬지 않고 뿜어댄다. 햇살이라도 쨍하니 비추면 분수 물줄기 끝에 무지개가 걸린다.
▲ 백마강 황포돛배. 오른쪽은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재현한 백제문화단지. |
정림사지는 부소산성에서 약 1㎞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사비시대를 대표하는 절이다.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다. 사비 천도와 동시에 세워졌는지 아니면 훨씬 이후에 세워졌는지 알 수 없다. 이 절 자리에는 국보 제9호로 지정된 오층석탑이 있다. 완벽에 가까운 비례의 형식미와 세련된 마감이 돋보이는 석탑이다. 정림사는 백제 멸망 이후에도 한동안 유지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는 보물 제108호에 이름을 올린 석불좌상이 하나 있다. 미소가 은은한 이 석불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문화단지도 들러봐야 할 곳이다. 백제의 역사를 충실히 재현한 곳이다. 약 100만 평의 부지에 6900억 원의 자금을 투입해 만든 이 단지에는 왕궁과 생활마을, 고분공원 등이 실제처럼 만들어져 있다. 역사문화관에는 백제가 걸어온 길을 한눈에 보여주는 각종 유물과 자료가 빼곡하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길잡이: 경부고속국도→천안논산간고속국도→정안IC→23번국도→공주→백제큰길→부여.
▲먹거리: 쌍북리 부여초등학교 옆에 김해뒷고기(041-835-8870)가 있다. 어느 부위가 정말 맛있는지 아는 정육업자들이 ‘몰래 뒤로 빼돌려 먹었다’고 해서 ‘뒷고기’다. 삼겹살, 갈비살, 목살 등 사람들이 많이 찾는 부위가 아니다. 간막이살, 항정살, 가브리살 등 소량이라 대형매장에서는 판매가 불가능한 부위를 흔히 뒷고기라고 한다. 어떤 곳에서는 인기부위를 다 도려내고 남은 ‘막고기’를 뒷고기로 팔기도 하는데, 부여의 김해뒷고기는 정직하다. 가격도 1인분 3900원으로 아주 저렴하다. 부소산성 입구 백제의집(041-834-1212)에서는 깔끔한 연밥정식을 맛볼 수 있다.
▲잠자리: 부여읍내에 우수숙박업소 ‘굿스테이’로 지정된 크리스탈모텔(041-835-1717), 아리랑모텔(041-832-5656) 등을 비롯해 백제관광호텔(041-835-0870) 등 숙박업소가 많다. 규암면 합정리 백제문화단지 근처에는 롯데부여리조트(041-939-1100)이 있다.
▲문의: 부여군사적지관리사무소 041-830-2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