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훈 전 시장이 21일 기자회견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밝히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유장훈 기자 |
이와 관련, <일요신문>은 오 전 시장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던 8월 12일부터 투표일인 8월 24일 사이에 포착했던 몇몇 중요한 장면들을 공개한다.
# 박근혜·김문수에 실망
오세훈 전 시장이 ‘대권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유에 대해 해석이 분분했지만 무상급식 논란에서 선을 긋고 있던 박근혜 전 대표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란 게 정설이었다.
오 전 시장 측은 30%대 중반 이상의 고정적인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박 전 대표가 적극적으로 협조할 경우 투표율이 적어도 5~7%가량 오를 것으로 기대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오 전 시장은 불출마를 밝히기 직전 몇몇 친박 진영 인사들을 접촉했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 친박 전직 의원은 “(오 전 시장은) 자신이 ‘박근혜 대항마’라는 인식을 심기 위해 주민투표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세간의 관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면서 그 일환으로 대선에 나가지 않을 것임을 조만간 공식화하겠다고 전해왔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오 전 시장의 ‘SOS’에 친박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일요신문> 1006호 참고). 박 전 대표 핵심 측근인 유승민 최고위원은 “무상급식으로 당이 수렁에 빠졌다. 지금이라도 이 문제에 거리를 두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표 역시 “제가 말할 입장이 아니다”라며 기존의 신중한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대해 오 전 시장은 지인들에게 섭섭한 감정을 여러 차례 토로하기도 했다. 오 전 시장은 사석에서 한 수도권 현역 의원에게 “민주당은 지역구 가서 선거 운동하는데 한나라당은 소극적으로 돕는다. 유승민은 경제학자라면서 무상급식 찬성하는 게 맞느냐. 이제부턴 ‘친박’ 경제학자라고 해야 한다. 친박들은 박근혜 잘 모시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며 서운한 속내를 털어놓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 24일 무상급식 찬반 투표를 하고 나오는 오세훈 전 시장 부부. 유장훈 기자 |
이에 반해 오 전 시장이 고마움을 나타냈던 정치인도 있었다. 오 전 시장의 대권 불출마 선언 이후 박 전 대표를 견제할 차기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정몽준 의원이다. 오 전 시장은 “(정몽준 의원이) 가장 잘 도와준다. 고맙다. 대선 때 도울 일 있으면 돕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한나라당 경선과 대선에서 오 전 시장의 역할이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것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 다급했던 심야 3인 회동
지난 8월 20일 늦은 시각 서울 시내 모처에 임태희 비서실장과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전 시장이 8월 21일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중대발표를 할 것이란 얘기가 ‘설득력 있게’ 퍼져나갈 때였다. 임 실장이 먼저 홍 대표와 오 전 시장에게 회동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오 전 시장이 투표율과 서울시장직을 연계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보고받았다. 당사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다보면 조금 더 나은 방법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 (임 실장이) 마련한 자리였던 것으로 안다”고 털어놨다. 이날 회동에서 오 전 시장은 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투표율 미달 시 서울시장 사퇴 표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홍 대표와 임 실장은 대권 불출마까지 선언한 마당에 굳이 서울시장까지 내던질 필요가 있느냐며 만류했다. 남은 기간 동안 총력을 기울여 밀어주겠다는 약속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오 전 시장이 물러난 후 10월 26일에 치러질 보궐선거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권 핵심부로부터 무상급식 투표 협력을 다짐받은 오 전 시장은 새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투표율이 개표 충족요건인 33.3%를 넘지 못하더라도 10월로 예정된 서울시 국정감사를 마친 이후에 그만두겠다는 ‘절충안’을 제시한 것이다. 공직선거법상 9월 말 이후에 사퇴하면 서울시장 선거는 내년 4월 총선과 함께 치러지게 된다. 오 전 시장으로선 사퇴를 표명함으로써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여권의 우려를 불식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 전 시장은 지난 8월 26일 기자회견을 자청, ‘즉각 사퇴’ 의사를 밝혔다. 홍 시장과 임 실장이 8월 25일 오 전 시장을 만나 이를 만류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놓고 청와대 내부에서는 “오 전 시장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며 불쾌해하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오 전 시장 측이 먼저 ‘10월 사퇴’를 제안해놓고 투표가 끝나자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
▲ 26일 서울시장 전격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시청을 나서는 모습. 윤성호 기자 |
이에 대해 오 전 시장 측 관계자는 “도와준다고 했던 한나라당이 뭘 했느냐. 먼저 약속을 파기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 선거 직전 이미 ‘식물 시장’
정치권에선 오 전 시장이 대선에 불출마하고, 가까스로 재선에 성공한 시장 자리까지 던진 데에는 그만큼 사정이 절박했기 때문이라는 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야권은 물론 여권 내에서조차 부정적 시선이 우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오 전 시장이 ‘무상급식’이라는 복지 정책에 ‘올인’을 한 데에는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중앙일보>는 오 전 시장의 고등학교(대일고)-대학교(고려대) 선배인 박형준 청와대 사회특보가 이번 무상급식 투표의 ‘막후 기획자’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 특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이없는 기사를 보고 씁쓸했다”며 부인했다. 또한 오 전 시장 고등학교 선배인 한 언론사 간부의 ‘배후설’도 공공연히 돌고 있다. 서울시의 한 전직 고위간부는 “특정 인사들이 오 전 시장의 눈과 귀를 막았다는 게 상당수 직원들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선거 막판 오 전 시장 측근 중 일부는 몇몇 보수 언론사의 여론조사를 근거로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기도 했다. 해당 언론들은 오 전 시장이 ‘눈물의 기자회견’을 통해 시장직 사퇴 의사를 밝힌 이후 투표율이 3~7% 상승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주장했다. 오 전 시장 주변에서 ‘한번 해볼 만하다’는 기대감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투표 3~4일 전부터 서울시 내부에선 오 전 시장이 물러나고 10월 보궐선거를 통해 신임 시장이 선출될 것이란 얘기가 기정사실처럼 오갔다고 한다. 투표 전부터 오 전 시장은 사실상 ‘식물시장’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앞서의 서울시 전직 간부는 “오 전 시장이 의욕을 갖고 추진했던 한강 르네상스, 경인 아라뱃길 사업 등을 맡고 있는 실무진들이 관련 업무에서 손을 놨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차피 새로운 시장이 오면 재검토 지시가 내려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면서 “오 전 시장이 몇몇 지인들에게 ‘33.3%를 넘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는데 명백한 오판으로 결론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