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잡한 심경 오세훈 서울시장이 8월 26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열린 이임식 도중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 연합뉴스 |
오세훈 전 시장은 정치판의 ‘슈퍼스타 K’였다. 그의 성장기 이력과 정치입문 과정을 보면 전형적인 ‘코리안 드림’이 연상된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엔 며칠씩 굶는 게 다반사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자신이 가장 무상급식을 필요로 했던 ‘배고픈 학생’이었다. 공부만이 그에게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어머니의 재봉틀 덕분에 학창시절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았고 고대 법대 졸업 1년 만인 24세에 사법시험에 합격, 환경변호사의 길을 걸으며 정치입문 기회를 엿봤다. 호남형에다 달변인 그는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게 된다. 그리고 정치자금법 개정안인 ‘오세훈 법안’을 관철시켜 동료의원들의 공분을 샀지만, 16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 국민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줬다. 그 후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빅3’이었던 맹형규 이재오 홍준표 후보를 제치고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의 대항마로 나섰다.
하지만 이번 무상급식 정국을 지나면서 오 전 시장의 이미지는 무참하게 깨졌다. 자수성가의 긍정적 이미지가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영악한’ 정치인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일부의 지적에서 그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오세훈 이미지의 몰락은 그의 정치적 재기를 더욱 어렵게 하는 핵심 요인이다.
진보성향의 한 정치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오 전 시장은 권력지향적인 한국 엘리트들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대체로 이기적이다. 모든 문제를 자신의 관점에서부터 본다. 그 다음에 명분을 갖다 붙인다. 무상급식도 마찬가지다. 급식은 먹는 문제다. 한국인의 ‘밥’ 정서를 그가 잘못 건드린 것이다. 급식을 복지의 전부인 것처럼 비약시켜 그것을 복지 포퓰리즘을 막는 정책의 전위대쯤으로 여기는 천박한 발상이 그를 실패로 몰고 갔다. 오 전 시장은 이번 무상급식 패배를 거치면서 그동안 쌓아온 젊은 대권주자 이미지를 송두리째 날려버렸다”라고 말했다.
소장파의 한 의원은 특히 그가 배수진을 치며 사퇴발표 기자회견을 했던 장면을 지적한다. 그는 이에 대해 “오 전 시장이 사퇴발표 회견을 하면서 5번 눈물을 보인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무릎까지 꿇으며 진정성을 내보이려 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낯설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무상급식에 서울시정 전체가 걸린 것처럼 감정적인 호소를 한 것이 굉장한 역효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울시장 공천을 처음 따냈을 때도 굉장히 말이 많았다. 맹형규 현 행정자치부 장관 같은 경우 수개월 캠프를 운영했고 실질적 시장 선거 준비기간은 몇 년이 걸렸다. 이재오 특임장관과 홍준표 대표도 당시 오랫동안 캠프를 운영하며 서울시장직을 노렸다. 하지만 강금실 후보가 여성에다 호감 가는 이미지로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한나라당이 오 전 시장을 갑자기 끌어들인 것 아닌가. 당시 오 전 시장은 시장직을 인수할 만한 준비가 거의 돼 있지 않았다. 참모도 급조했고 당에서 거의 만들어준 꼴이다. 재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이미지로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던 것이 이번 사태까지 불러 온 것으로 본다. 겉보기만 보고 뽑는 우리의 표심에도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오 전 시장은 이미지의 몰락과 함께 그를 믿어주고 밀어준 여당과 국민들의 신뢰마저 잃었다.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신뢰의 상실은 장기적으로 그를 재기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게 하는 가장 위협적인 요소다. 특히 그와 한때 미래연대 등에서 개혁적인 정치실험을 했던 소장파 ‘동료’들은 이번 무상급식 정국을 보면서 오 전 시장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소장파의 또 다른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오 전 시장 같은) 저런 정치인은 퇴출시켜야 한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사회갈등 유발자다. 복지 포퓰리즘을 막겠다는 이슈를 만든 것 자체가 논리의 비약이자 아집이다. 서울시가 언제 포퓰리즘이 겁날 정도의 파격적인 복지정책을 시행했던 적이 있었느냐. 아직 시행하지도,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가정해서 복지 포퓰리즘을 막겠다고 하니 얼마나 논리의 비약인가. 또한 그는 국민들을 믿지 못한다. 여당이나 서울시의 복지정책이 포퓰리즘으로 흐르면 국민들이 표로써 심판할 것이다. 그의 이번 무상급식 전투는 개인적인 권력욕에서 비롯된 최악의 정치적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두 번이나 서울시장 공천을 따내는 일종의 특혜를 누렸다. 그럼에도 이번 무상급식 정국에서 ‘친정’의 요구를 끝까지 무시한 채 독단적인 방식을 택하고 말았다. 앞으로 그가 정치권에 발을 걸치고 있는 이상, 이 ‘배신’의 문제는 계속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정계개편이 발생해도 다른 정파가 그를 신뢰할 만한 정치인으로 보기는 더욱 쉽지 않다.
오 전 시장이 사퇴를 하면서 일각에서는 “차차기 2017년을 바라보고 보수의 아이콘으로 남아 있으면 언젠가는 그에게도 기회는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친이계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여당에 지원세력이 거의 없는 오 전 시장으로서는 무상급식 정국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방식과 진정성 모두에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다음 정권이 복지정책을 중요한 국정운영 테마로 삼을 경우 이에 대한 손익계산서가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다음 2017년 대선이 이제 막 불붙고 있는 복지에 대한 평가의 선거가 될 수 있다. 그때 무상급식 전면시행 반대를 주장했던 오 전 시장이 무분별한 복지 포퓰리즘을 지켜낸 ‘잔다르크’ 역할을 했다며 평가를 받는다면 정치적 재기의 공간도 열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복지논란 프레임이 그때까지 그대로 이어져 그가 평가받을 만한 공간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인물과 이슈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디지털 민주주의의 역동성과 가변성에서 볼 때 오 전 시장이 그의 정치시계를 2017년에 맞춰 논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했다.
오 전 시장의 정치 스타일을 비판하는 또 다른 목소리도 있다. 앞서의 소장파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이번 25.7%의 투표율에 대해 보수층의 결집이라느니, 사실상 여당의 승리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25.7%의 서울시민들이 모두 오 전 시장과 한나라당을 지지해서 투표장으로 갔겠느냐. 아니다. 불안해서 간 것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너무 예산이 집중되면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 자칫 정책이 포퓰리즘으로 흐를까 싶어 투표한 것이다. 좌파의 준동도 염려해서 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치인이 시민들의 신뢰를 볼모로 잡고 불안감 불신감을 조장하면 되겠느냐. 오 전 시장의 주민투표 추진 본질은 정책에 대한 가부를 묻는 게 아니라 표심을 협박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나쁜 정치인이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오 전 시장의 향후 정치적 미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점집이나 찾아가 보라고 해라. 인생을 도박에 맡기는 사람이 무슨 미래가 있겠느냐.”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백전노장과 신상 ‘저울질’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물러나자 여야에서 시장을 노리는 정치인들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자천타천 후보감들이 20여 명을 상회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들의 이름은 한 차례 이상 하마평에 올랐던 적이 있는 ‘식상한’ 후보들이다. 일단 청와대는 긴급대응팀을 구성해 전략후보 찾기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유인촌 전 문화부 장관은 이미 후보군에 올라있지만 청와대가 계속 유력주자로 분류하고 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백용호 정책실장도 ‘믿을 만한’ 전략후보감이라고 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여권에서 10여 명의 후보군이 거명되고 있지만 청와대가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 중이다. 이번에는 대중적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능력 위주 인사에 청와대가 공감하고 있다. 무상급식 논란에서 민심을 확인했기 때문에 중립성향의 인사를 찾는 것도 고려중이다. 현재의 여당 후보들만으로 패배가 뻔히 보이는 전쟁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파격적인 새 인물 영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여당에서는 나경원 의원이 한명숙 전 총리에 이어 여야 후보 통틀어 지지율 2위를 달리고 있을 정도로 서울시장직에 가까이 가 있다. 하지만 나 의원은 ‘박근혜’의 벽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여성 최초로 대권을 노리는 박근혜 전 대표가 여성 서울시장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중첩으로 박 전 대표의 여성 대권후보 희소성이 떨어져 대권가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여당에는 이밖에 원희룡 의원이 나 의원의 뒤를 추격하고 있다. 하지만 여당에는 신선한 후보군이 없어 청와대의 영입인사와 나-원 최고위원의 ‘경선’도 예상된다.
야권에서는 무상급식 주민투표 투표율에 고무돼 거의 승리한 것처럼 들떠 있다. 하지만 조국 교수는 이에 대해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진보개혁진영이 쉽게 이길 거라고? 꿈깨라! 오세훈을 불신임하는 것과 새로운 시장을 뽑는 것은 다른 문제. 최고의 후보와 정책에 기초한 단결이 있을 때만 승리할 것이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방심한 야권이 보수층의 재결집을 불러 또다시 서울시장을 내줄 수도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야권 후보군은 한명숙 전 총리가 1순위이지만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재판 중이어서, 제2의 이광재 사태가 나올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10월 재보궐 선거 전까지 두 개의 공판이 남아있지만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선거전에는 뛰어들 수 있다. 하지만 그 뒤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이 내려질 경우 시장직을 잃을 수도 있는 게 약점으로 지적된다. 이외에 박영선 의원과 추미애 전 의원 등 여성후보가 약진하는 게 특징이다. 외부인사 영입 논의도 무성하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조국 서울대 교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