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대선을 10여일 앞둔 시점 조선의 성군에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을 고찰한다. 성종은 제가의 원리에 충실하여 사랑하는 아내를 희생하여 정치적 모범을 추구했다. 성종은 언론을 존중하여 비판의 목소리를 달게 수용하였고 극단적 정치적 갈등보다 신구 정치세력의 조화를 추구함으로써 조선 왕조의 근간을 닦았다. 주연이 아닌 조연의 리더십의 가치를 성종을 통해 조명한다.
조선 왕실의 여성 지식인이자 정치가 인수대비의 아들, 최초로 사약을 받고 죽은 왕비 폐비윤씨의 남편, 폭군의 아이콘 연산군의 아버지라는 강력한 주변인물들 때문일까. 성종은 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주연보다 조연으로 기억되곤 한다.
성종의 묘호 '성(成)'은 나라를 잘 이룬 왕에게 붙여지는 자이다. 혼란한 시기에 성종은 유교의 나라 조선의 기틀을 바로 세우고자 했다. 왕위 계승 3순위에서 하루아침에 왕이 된 소년 왕은 어떻게 유학군주로 성장해나갔을까.
조선에서 효성 깊은 청년들은 손가락이 없기도 했다.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 허벅지 살을 베어내는 할고는 자신의 살과 피를 위중한 환자에게 먹여 낫게 하려는 조선시대 인육치료법이었다.
단지, 할고는 특히 성종대를 기점으로 유행했다. 성종 시기에 무시무시한 치료법 단지, 할고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 이유를 알아본다.
예종 승하 당일 왕의 조카였던 서열 3순위 잘산군의 즉위식이 치러졌다. 세자 교육 없이 왕이 된 소년의 고군분투 제왕학 수련이 눈물겹다. 할머니의 수렴청정 기간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요즘 고3과 같은 학습량을 감당하며 군주로 거듭나고자 했던 성종. 그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알아본다.
7년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친정을 시작한 성종. 부인 윤씨의 투기와 비행으로 곤란한 상황을 겪는다. 결국 성종은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전을 폐출시킨 후 3년 뒤엔 사약까지 내린다. 남편이 아니라 왕으로서 유교화 교과의 동반자로 간주했던 부인에게 사약을 내리기까지 어떤 고뇌를 느꼈을까.
경연은 조선시대 국정 의사 결정을 하는 토론의 장이었다. 성종과 그의 롤모델이었던 세종의 경연 스타일을 비교하며 두 성군의 토론 리더십 스타일을 비교한다.
성종은 "아니 되옵니다"라는 비판도 달게 받으며 언로를 활짝 열겠노라 선언했다. 시도는 좋았지만 훈구와 사림의 대결은 극심했다. 언론의 지엽적이고 극단적인 비판조차 경청했던 성종. 그는 세상을 뜨기 전까지 '마치 두 마리의 호랑이(언관과 대신들)가 싸우는 것 같다'며 자탄했다.
이 같은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성종이 언론을 존중하며 추구했던 유교적 왕도정치의 실체를 살펴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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