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길 전 행자부장관은 내년 총선에서 부산 지역구에 출마해 대권 교두보를 마련할 것이라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김 전 장관과의 인터뷰는 8월 24일 치러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얘기로 시작됐다. 김 전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국민회의 공천 신청’ 논란으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 전 장관은 다음 날 있을 주민투표에 관해 “개표 요건인 투표율 33.3%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애들 밥그릇을 가지고 투표에 부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무리수이고 이해가 안된다. 오 시장이 너무 망가졌다. 실패할 경우 주민투표 예산 180억여 원의 혈세는 누가 책임질 것이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과론이지만 김 전 장관의 예상대로 24일 치러진 주민투표는 25.7%의 투표율에 그쳐 투표함을 열지도 못하고 무산됐다.
김 전 장관은 이어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거는 것도 이해가 안된다. 정책 투표를 신임투표로 몰고가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킨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특히 부결시에는 서울시민에게 약속한 대로 곧바로 사퇴해야 할 것이다. 사퇴 시기를 놓고 편법을 부리거나 정략적 선택을 할 경우 더 큰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김 전 장관은 자신의 회고록 내용 중 ‘오 시장이 과거 DJ 정권 때 국민회의(당시 여당) 공천을 부탁했다’는 논란에 대해서도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민회의 공천 논란에 대해 오 시장 측이 전면 부인하면서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자 김 전 장관 측도 법적 맞대응 방침을 밝힌 상태다.
그는 “오 시장이 보도자료를 통해 사실이 아니라며 해명을 요구했다. 대응하기 구차스러워 그냥 두려고 했었는데 법적으로 대응한다니 답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진실은 작은 두 손으로 가릴 수 없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지는 모르나 당시 청와대 출입기록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고, 그가 찾아와서 면담할 당시 상황을 지켜보았던 청와대 직원들이 증인이 되어줄 것이며, 1999년 4월 30일자 <동아일보> 등의 보도 내용에서 오 시장의 국민회의 공천신청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민투표 및 오 시장과의 갈등 얘기로 한껏 목소리를 높였던 김 전 장관은 기자가 대선 문제로 화두를 바꾸자 더욱 진지한 자세로 인터뷰에 응했다.
‘출판기념회를 대선 출정식으로 이해해도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전 장관은 “공식적인 대권 출마선언은 아니지만 사실상 대권행보를 걷고 있는 만큼 그렇게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절친이었던 노 전 대통령과 나는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헌정사에 유례없는 정치행보를 걸었다고 자부한다. 정권 탈환이 가장 중요한 만큼 국민과 여론의 뜻을 받드는 대권행보를 걸을 것이다. 내가 내년 대선 때 국민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부자에게 명예를, 빈자에게 존엄을’이다. 부자는 명예를 얻고 빈자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더불어 함께 잘사는 공존의 사회를 실현하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자신의 대권 경쟁력에 대한 답변에서는 강한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그는 “나는 입법부와 행정부, 정당과 청와대를 두루 경험한 유일한 후보다. 다양하고 풍부한 정치경력과 국정 경험이 가장 큰 경쟁력이 될 것으로 자부한다. 또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해 스포츠 외교를 통한 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기업 CEO 출신이지만 나는 시장상인과 구멍가게를 운영한 중소기업인 출신으로 서민중산층을 대변할 수 있는 적임자이기도 하다. 지역주의와 맞서 수차례 낙선하고 실패한 것 또한 좋은 경험이 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경선 및 야권 단일화 문제와 관련한 질문에는 복잡한 심기가 묻어 있었다. 민주당 경선에 대해서는 “현 상황에서 민주당 경선은 중부권 대표주자인 손학규 대표와 호남의 대표주자인 정동영 의원, 그리고 PK 대표주자인 김정길의 삼파전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두 사람은 대선주자로서 약점과 한계를 안고 있는 만큼 민주당원들과 국민들은 PK 대표주자이면서 단 한번도 민주당을 떠난 적이 없는 김정길을 선택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친노주자로 분류되고 있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김두관 경남지사,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은 모두 강점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세 사람은 노무현 정신과 신념을 계승할 수 있는 적임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DJ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이념과 철학을 승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며 친노주자들과의 차별화를 역설했다.
‘김 장관은 DJ맨인가 아니면 노무현의 사람인가’라는 질문에는 “나는 ‘친노’지만 엄격히 따지면 DJ 사람”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가장 어려웠을 때 친구이자 동지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혜택을 본 것이 하나도 없다. 임명직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선출직인 대한체육회장과 올림픽위원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시절에는 장관(행자부)도 하고 청와대 민정수석도 했다. 그러니 엄격히 따지면 노 전 대통령은 절친이자 동지였고, DJ맨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라고 답했다.
김 전 장관은 자신의 별명이 ‘왕바보’가 된 것에 대해서는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노 전 대통령이 이후 확실한 당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고향인 부산에서 출마해 낙선하자 국민들이 붙여준 별명이 ‘바보 노무현’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 ‘바보 노무현’을 결국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왕바보’는 노 전 대통령보다 더 바보 같은 사람이 김정길이라고 해서 붙여준 별명이다. 노 전 대통령은 중간에 종로로 지역구를 옮겨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지만 나는 20년 넘게 단 한번도 부산을 떠나지 않았고, ‘민주당’이란 간판도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떨어질 것을 각오하면서도 지역주의와 맞서 싸웠다고 해서 붙여준 별명이다”고 설명했다.
야권 단일화 문제에 대해선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한 후보와 친노후보 등 다른 야권 후보 간의 단일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 이사장이 추진하고 있는 야권 통합이 성사되면 내년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내년 총선 때 부산 지역구 출마를 결심한 김 전 장관은 범야권이 힘을 합치면 PK에서 최소한 15석 이상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부산 지역구에 출마할 생각이다. 당에서 비례대표를 준다고 해도 나는 거절하고 지역구에 출마할 것이다. 문재인과 김두관을 일컫는 ‘2KM’과 협력하면 부산에서 10석, 경남에서 5석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나는 2010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해 45%대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얻었다. 이는 노 전 대통령도 거두지 못했던 성과이고 부산 민심이 바뀌고 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나 한 사람만이 부산에서 당선하는 것이 아니라 PK에서 민주당 바람을 일으켜 확고한 대선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김 전 장관이 당찬 포부와 정치 비전을 제시하면서 물밑 대권행보를 걷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여전히 낮은 인지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그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인지도에서 밀리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취약점이다. 노무현 정부 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정치일선에서 스스로 떠났고, 당 지도부에 포함되지 않은 ‘원외’라는 현실적인 한계가 인지도를 떨어뜨린 것 같다. 대선 관련 각종 여론조사 과정에서 기존 잠룡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인지도 저하의 요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많다. 요즘의 사회적 분위기는 한순간이다. 인지도와 지지율은 순식간에 올라갈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다. 국민들이 ‘정치인 김정길’이 살아온 그동안의 정치적 행적과 능력에 대해 알게 되면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고, 저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실제로 얼마 전 모 여론조사 기관에서 실시한 지지율 조사에서는 민주당 후보 중에서 손 대표 다음으로 내가 지지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총선이 인지도와 지지율을 제고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과연 ‘포스트 노무현’을 기치로 대망론에 시동을 건 김 전 장관이 민주당 경선과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상수가 될지 아니면 변수에 머물게 될지 그의 대권행보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희망’ 붙잡을까 ‘운명’ 선택할까
▲ 문재인 이사장 |
하지만 두 사람이 걸어온 정치역정은 사뭇 다르다. 문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만 근무한 전형적인 ‘노무현맨’으로 통한다. 반면 김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과는 친구이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나 정부가 아닌 체육계에 몸 담았다. 그는 오히려 DJ정부 때 초대 행자부 장관과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다. 정치권 인사들은 물론 김 전 장관 스스로 ‘노무현맨’이 아닌 ‘DJ맨’임을 자처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의 절친이면서도 서로 다른 정치 행로를 걸어온 두 사람이 내년 총선과 대선이 다가오면서 본인들의 의지와는 달리 미묘한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문 이사장은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 조사에서 차기 야권 대선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본인은 한 번도 대선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손학규 대표와 지지율 1, 2위를 다투며 야권 대선지형을 뒤흔드는 핵뇌관으로 부상한 상황이다. 반면 김 전 장관은 지난 6월 12일 광주에서 출판기념회를 통해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김 전 장관은 지난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 텃밭인 부산시장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44.6%라는 경이적인 득표율을 기록해 정치권을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두 사람은 본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PK 맹주 자리와 차기 대선 과정에서 양보할 수 없는 경쟁 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공동의 적’인 한나라당과 싸워야 하는 내년 총선 때는 전략적 제휴로 동지적 관계를 맺은 뒤 대선정국이 본격화되면 경쟁적 관계로 바뀌게 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6월 비슷한 시기에 <문재인의 운명>과 <김정길의 희망>을 각각 출간했다. 두 사람이 야권 차기주자로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자서전 발간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절친이자 동지였던 문 이사장과 김 전 장관 사이에 PK 맹주와 대권을 놓고 미묘한 전운이 감돌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PK 민심과 국민들은 ‘문재인의 운명’을 선택할까, 아니면 ‘김정길의 희망’을 붙잡게 될까 내년 대선정국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철]